무더위보다 무서운 게 고물가다. 몇 년째 이어지는 고물가에 서민은 식비조차 줄여야 할 판국이다. 이런 사정을 아는 걸까. 대구에는 아직도 단돈 몇 천원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식당들이 성업 중이어서 서민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한끼 고민을 덜어 주는 이들 '착한식당'을 찾아 배경과 비결에 대해 들어본다.

대구 중구 반월당역 지하상가에서 짜장면을 1천원에 내놓고 있는 중식당 '산시로'의 이승환 사장.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대구 중구 중식당 '산시로'에서 판매하는 1천원짜리 짜장면.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대구 중구 반월당역 지하상가에 입점한 중식당 '산시로'를 찾은 시각은 24일 오전 10시30분쯤이다. 이곳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입구에는 10여명의 손님이 종업원의 안내에 따라 길게 줄지어 서 있었고, 식사를 마친 손님은 만족한 표정으로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왔다. '짜장면 브런치'도 아니고 상상하지 못한 시간에 마주한 아주 낯선 모습이다. 대기줄은 본격적인 점심시간인 낮 12시를 전후해서는 20~30명으로 불어났다.
이곳은 단돈 1천원으로 짜장면을 즐길 수 있는 '중국집'이다. 지난 23일 대구시가 공개한 평균 짜장면 가격이 6천원인 것과 비교하면 6배나 저렴한 셈이다. 곱배기는 2천원. 친구와 함께 식당을 찾았다는 70대 한 여성은 "요즘 세상에 천원 주고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 있느냐. 소문 듣고 오긴 했지만 사실 긴가민가했다"며 "맛없으면 어쩔 수 없고, 맛있으면 더 좋지 않겠냐. 물가도 많이 오르고 삶이 팍팍한데, 이렇게 깜짝 놀랄 만한 가격에 짜장면을 판매하는 식당이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했다.

지난 23일 오전 대구 중구 반월당역 지하상가 중식당 '산시로'를 찾은 손님들이 1천원짜리 짜장면을 맛보기 위해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산시로가 문을 연 것은 지난 1일로 채 한 달도 안 됐지만, 어느새 하루 500명이 방문하는 '짜장면 성지'가 됐다.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 워낙 많은 손님이 찾는 탓에 오후 1시쯤에는 재료가 떨어져 가게 문을 닫는다. 고작 세 시간 장사에 수백명의 손님을 치르는 셈이다. 식당 주인은 1천원 짜장면을 선보이기 전 '1천원 국밥' '1천원 고기'와 같은 메뉴로 이른바 '천원의 행복'을 조금씩 전파해 온 이승환씨다. 그는 "20년 전부터 1천원 고깃집, 1천원 콩나물국밥 등 다양한 외식업에 종사했는데 모든 고객에게 계절을 타지 않고 가장 인기 많은 메뉴가 짜장면이었다"며 "처음 1천원에 짜장면을 판매한다고 했을 때 다들 '맛있을지' '정말 1천원이 맞는지' 등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하지만 이제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방문해 주고 있다"고 미소 지었다.
이 사장이 이 같은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5년 전부터 앓고 있는 신장질환 때문이다. 그는 "병을 얻으니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고, 정리하는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다"며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 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는다면 가치관이 맞는 누군가에게 이 가게를 물려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봉사한다는 개념으로 시작한 게 아닌데 다들 봉사한다고 생각해 주시는 게 오히려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갑작스레 얻은 병으로 현재 투석까지 하고 있는 이 사장은 손님에게 베풀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일 직접 재료손질을 하며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남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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