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이상한 날씨, 얇아진 지갑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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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04 07:54  |  발행일 2025-08-04
김수영 논설위원

김수영 논설위원

며칠 전 장 보러 갔다가 수박 가격을 보곤 깜짝 놀랐다. 3만 원이 넘었다.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다른 과일 먹으면 됐지, 굳이 수박 먹어야 하나'며 복숭아, 멜론으로 눈을 돌렸다. 하지만 그 가격도 만만찮았다. 과일 가격에 놀라 살까 말까 망설이는 게 왠지 씁쓸했다.


최근 커피숍 등에서 수박 주스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여름철 대표 음료이기도 하지만 폭염에 폭우까지 겹치면서 수박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니 생수박 대체 식품으로 수박 주스를 찾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상기후로 배추 가격이 폭등하면서 마트, 편의점에서 포장김치도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다. 비싼 배추로 힘들여 만들어 먹는 것보다 포장김치가 오히려 더 저렴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김치 담글 배추 사기가 겁나고 무더위를 식혀줄 수박 한 덩이 구매도 쉽지 않다. 이만이 아니다. 닭고기 가격도 오름세다. 찜통더위로 닭 폐사율이 높아지고 여름철 수요 증가가 맞물려 한 달 전보다 10% 이상 뛰었다. 횟감으로 인기 높은 광어와 우럭 가격도 상승세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수산업관측센터에 따르면 지난 6월 광어 도매가격은 전년보다 14.0%, 우럭은 41.8%나 상승했다. 지난해 해수 온도가 오르면서 양식장에서 집단 폐사가 발생한 게 올해도 영향을 미친 데다 올해 무더위가 더욱 빨리 찾아오면서 양식 어종 가격이 크게 뛰었다. 올해는 짧은 장마에다 곧바로 찾아온 무더위로 지난해보다 보름 이른, 지난달 9일 고수온 위기 경보 '경계' 단계가 발령됐다. 고수온이 지속하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양식장 집단 폐사 피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독해진 무더위와 해수 온도 상승은 모두 기후 변화의 영향이란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기후 변화로 먹거리 수급에 비상이 걸리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돌아왔다. 폭염, 가뭄, 홍수 등 이상기후로 농산물 등의 가격이 치솟는 '기후 플레이션'이 물가를 자극한 것이다. 농촌경제연구원 등의 분석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최근까지 고랭지 채소 주산지의 폭염 일수가 증가 추세인데 배추, 무 등의 단위당 수확량이 폭염 일수에 반비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기후가 물가 상승에 10% 정도 기여한다는 분석도 있다. '금배추' '금상추'라는 단어가 여름이면 언론 지면을 장식하고 소비자들은 폭등한 장바구니 물가에 허리가 휜다.


기후 플레이션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직면한 문제다. 기후변화의 경우 자연재해는 물론 병해충 증가, 물 부족 등을 유발해 농작물의 생육 부진에 따른 생산 감소와 품질 저하를 가져온다. 이는 농산물 수급 불균형과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물가가 올라 지갑이 얇아지면 소비도 줄어든다. 결국 경기 위축을 초래할 수 있다. 이상기후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를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기후 위기가 일상화된 시대다. 당장 물가 불안을 잡을 대책도 중요하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종합적인 대응 전략이 시급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상 기후에 대비한 신농법 및 품종 개발 등 농업 분야에서 기후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도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여·야가 기후 위기 문제만큼은 정당을 떠나 협치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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