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청송 주왕산 ‘폭포유람’…바위를 타고 깊은 물이 쏟아진다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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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8-07 19:27  |  발행일 2025-08-07
용추협곡. 주방계곡 따라 북동 방향 1㎞구간으로, 응회암 주상절리가 수직으로 갈라져 가파른 골짜기를 빚어 놓았다.

용추협곡. 주방계곡 따라 북동 방향 1㎞구간으로, 응회암 주상절리가 수직으로 갈라져 가파른 골짜기를 빚어 놓았다.

대전사에서 주방천을 따라 간다. 지난 봄 대형 산불로 주왕산 전체 면적의 약 3분의 1이 피해를 입었다. 이 길은 다행히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산불이후 산사태와 생태계 조사 관련 안전점검을 거쳤다고 한다. 길은 넓고 완만하다. 계곡은 천천히 좁아지고, 계류의 바위들은 천천히 커진다. 멀지 않은 능선에 잿빛 바위들이 하나 둘 고개 들기 시작한다. 그 거대한 것들이 소리도 없이 점점 다가온다. 결국 자하교에서 사로잡힌다. 충직하고 주의 깊은 철갑부대에 에워싸인 듯, 추상같은 위압에 폐가 터질 것 같다.


용추폭포, 산의 중심부인 해발 320m 지점에 위치하며 낙차 1-5m 내외의 3단 폭포로 구성되어 있다.

용추폭포, 산의 중심부인 해발 320m 지점에 위치하며 낙차 1-5m 내외의 3단 폭포로 구성되어 있다.

◆ 용추협곡과 용추폭포


왼쪽으로 연꽃을 닮은 연화봉과 병풍바위가 이어진다. 오른쪽으로는 망월대로부터 급수대를 거쳐, 학소대로 연결되는 단애들이 수직의 벽을 이루고 있다. 무리 인듯하나 따로 이고, 서로 비등이 면벽하면서도 기세는 제각각이다. 시루교에 이르면 시루봉이 거석의 신처럼 내려다본다. 그 양쪽으로 거침없는 기세로 시립한 암벽들이 주왕산의 늑골처럼 드러나 있다. 학소교를 지나자 엄청난 단애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길은 단애의 틈을 비집고 나아가고, 우리는 바짝 다가서는 거석들에 붙잡혀 속절없이 끌려 들어간다. 빛은 비집고 나아가지도, 끌려 들어오지도 못하면서 산산 조각난 채 해맑다. 먹먹하다. 쏟아지는 물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주왕산의 가슴우리 한가운데서 폭포가 쏟아진다. 용추(龍湫)폭포다. 폭포는 세계를 쾅쾅 울리며 한 번에 쏟아진다.


자하교에서부터 용추폭포까지, 주방천을 따라 약 1㎞ 계곡을 용추협곡이라 한다. 광해군 때의 문인인 호우 이환은 '발을 포개면서 나아가고 몸을 던지면서 건너뛰어 다리의 힘이 다 빠져나간 뒤'에야 비로소 다다르게 되는 곳이 용추의 입구라 했다. 조선 선조 때 학자 여헌 장현광도 '다리 힘이 건장한 자가 아니면 반드시 넘어지고 만다'라 했고, 18세기 선비 노애 류도원 역시 '다리는 절로 떨리고 머리는 바위가 짓눌러 고개 들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옛 선비들은 이 계곡을 신선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이라 생각했고, 좁은 문을 지나 다다를 수 있는 무릉도원이라 여겼으며, 청학이라 불리는 기이한 새가 산다 하여 청학동이라 불렀다. 여헌은 청학동에 이르러 '바위 뿌리가 각기 사람과 겨우 지척지간에 있는데, 바위 모서리가 곧바로 구름이 다니는 하늘로 솟아 있어 하늘과 해가 참으로 우물 안에서 보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넘어지지 않았지만, 옛 사람의 감상이 지금과 다르지 않다.


주왕산은 가슴 전체가 협곡이다. 산은 해발 721m로 아주 높지는 않은데 협곡은 더욱 까마득히 날서있다. 이 모습의 시작은 약 7천만 년 전인 백악기 공룡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일대에 화산 폭발이 있었다. 무려 아홉 번의 엄청난 폭발이 이어졌고, 무지무지한 양의 화산재가 쌓였으며, 연속적으로 분출한 고온의 화산재는 점차 식으면서 응회암으로 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응회암덩어리가 주왕산이다. 주왕산 응회암은 식으면서 수축되었고, 수축되면서 단단해졌다. 이 과정에서 암석의 체적이 줄고 수직으로 갈라져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졌다. 주상절리가 발달하는 응회암은 절리를 따라 쉽게 낙석이 발생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직의 주상절리가 떨어져 나가 가파른 절벽이 생겼고, 떨어져 나간 벼랑의 조각은 골짜기를 구르며 다양한 모양의 암괴로 쌓였다. 그 골짜기에 물이 흐른다. 물은 바닥을 깎아 골을 깊게 하고, 폭포를 만들고, 바윗덩어리를 쪼개고 뒤흔들어 다양한 지형을 빚었다.


이렇게 용추협곡과 용추폭포가 만들어졌다. 용추협곡은 주왕산 응회암이 치밀하게 엉긴 산 중심 부분에 발달해 있다. 벼랑의 높이는 100m 이상이다. 경사는 거의 수직을 이루고 횡단면은 수직에 가까운 V자형이다. 바닥의 폭은 자하교에서 학소대까지 10-20m 정도였다가 점점 좁아져 용추폭포 부근에서 3-5m 내외가 된다. 폭포의 침식 작용으로 좁아진 것이다. '용추(龍湫)'는 용이 하늘로 승천한 웅덩이란 뜻이다. 한 번에 볼 수는 없지만 폭포는 3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1단과 2단 폭포는 낙차가 1-2m로 소규모다. 폭포 아래에는 포트홀이 발달되어 있는데, 1단의 포트홀은 선녀탕, 2단은 구룡소(九龍沼)라 부른다. 연이어 제 3단 폭포가 떨어진다. 폭은 2m, 낙차는 5m 규모로 용추폭포에서 가장 크다. 용추폭포는 해발 320m 지점에 위치한다. 용추폭포는 주왕산의 심장부에 있는 용의 옛집이다.


절구폭포. 계곡물이 처마처럼 생긴 바위에서 떨어져 절구처럼 생긴 바위에 담겼다가 다시 낮은 바위를 타고 쏟아져 절구폭포다.

절구폭포. 계곡물이 처마처럼 생긴 바위에서 떨어져 절구처럼 생긴 바위에 담겼다가 다시 낮은 바위를 타고 쏟아져 절구폭포다.

절구폭포로 가는 사창골 길. 청량하게 그늘진 200m 정도의 길로 가메봉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계곡을 이루고 있다.

절구폭포로 가는 사창골 길. 청량하게 그늘진 200m 정도의 길로 가메봉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계곡을 이루고 있다.

◆ 절구폭포와 용연폭포


용추폭포를 지나면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숲은 상쾌한 향기를 뿜어내고 발걸음은 사붓사붓해 맑은 공기가 조급증 없이 몸속을 훑는다. 약 1㎞ 정도 오르면 절구폭포로 가는 샛길이 나온다. 가메봉에서 흘러 내려온 물이 계곡을 이루고 있는 사창골이다. 옛날 대전사의 창고가 있었다 하여 사창골로 불리는데, 일제 때는 참나무로 목탄을 생산하던 곳이라 한다. 청량하게 그늘진 길을 200m 정도 들어가 골짜기의 끝에 다다르면 절구폭포가 숨겨진 보물처럼 나타난다. 계곡물이 처마처럼 생긴 바위에서 떨어져 절구처럼 생긴 바위에 담겼다가 다시 낮은 바위를 타고 쏟아져 절구폭포다. 절구폭포는 주왕산에서 유일하게 물에 손 담글 수 있는 폭포다. 수심도 얕다. 자주 절구폭포와 사창골 길을 떠올리게 되는데, 아마 놀람이나 장엄이 아닌 평온 때문 인듯하다.


용연폭포는 주왕산의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2단으로 떨어지며 폭호의 수심은 4m에 이른다.

용연폭포는 주왕산의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2단으로 떨어지며 폭호의 수심은 4m에 이른다.

상부 용연폭포의 하식동. 폭포 아래로 떨어진 물이 소용돌이칠 때 물방울이 튀어 올라 측면에 부딪쳤고, 오래 물방울을 맞은 벽은 어느덧 동그랗게 닳아 굴 모양으로 파였다.

상부 용연폭포의 하식동. 폭포 아래로 떨어진 물이 소용돌이칠 때 물방울이 튀어 올라 측면에 부딪쳤고, 오래 물방울을 맞은 벽은 어느덧 동그랗게 닳아 굴 모양으로 파였다.

사창골 초입으로 되돌아 나와 주 등산로를 따라 조금 더 가면 해발 약 400m 지점에 용연(龍淵)폭포가 있다. 용이 살았다고 하고, 폭포의 깊은 곳은 바다와 통해 있다고도 전해진다. 폭포는 2단으로 떨어진다. 주왕산의 폭포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데, 첫 인상은 오히려 청초하다. 끊임없이 준동하는 폭호는 언뜻 얕아 보이지만 수심이 4m라 한다. 갑자기 절벽처럼 떨어지는 가뭇없는 깊이다. 상부 폭포로 올라가면 움찔 놀란다. 양쪽 단애 면에 공 맞은 반죽처럼 움푹 파인 하식동이 있다. 폭포 아래로 물이 떨어지고, 떨어진 물이 소용돌이치고, 소용돌이치며 튀어 오른 물방울이 측면에 부딪혔다. 오래, 오래 물방울을 맞은 벽은 어느덧 동그랗게 닳아 굴 모양으로 파였다. 폭포 면에서 가장 먼 하식동이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폭포가 차츰 후퇴하면서 두 번째, 세 번째 하식동이 만들어졌다. 백악기 공룡이나 화산폭발보다 물방울이 만들어낸 저 둥글고 매끈한 하식동이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용추, 절구, 용연폭포는 1930년대부터 80여 년간 1, 2, 3 폭포로 불렸다. 명칭에 '용(龍)'자를 쓰지 못하도록 일제가 강제로 변경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름을 되찾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주왕산은 국립공원이자 국가유산인 명승이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글·사진=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여행정보


55번 중앙고속도로 안동방향으로 가다 안동분기점에서 30번 서산영덕고속도로 영덕방향으로 간다. 청송IC로 나가 31번국도 청송, 포항방향으로 간다. 송생교차로에서 주왕산국립공원 방향으로 우회전해 914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주왕산삼거리에서 좌회전해 가다 상의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주차비는 소형기준 주중 4천원, 주말 5천원이다. 대전사에서 용추폭포까지 2㎞구간은 휠체어와 유모차로 이동이 가능한 무장애탐방로이며 맨발걷기를 위한 세족장도 있다. 대전사에서 용연폭포까지는 3.4㎞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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