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메일] 노인 구강건강, 국가 돌봄의 사각지대를 메워야 할 때

  • 이원혁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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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01 06:20  |  발행일 2025-08-31
이원혁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장

이원혁 국립치의학연구원 대구유치위원장

우리 사회는 이미 초고령사회로 진입했다. 이제 노인의 건강은 곧 국가 복지의 핵심이 되었고, 그 중심에는 의외로 '입안'이 있다. 노인의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가 흡인성 폐렴이라는 사실은, 구강 위생 관리가 단순한 치아 문제를 넘어 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을 말해준다. 그러나 여전히 구강건강은 돌봄 영역에서 사각지대에 머물러 있다. 이제는 그 공백을 국가 제도와 현장이 함께 메워야 한다.


먼저 제도적 변화의 물결이 시작됐다. 2026년 시행될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은 재가노인 대상 방문 구강관리를 명문화했다. 이는 구강관리의 법적 근거가 처음으로 마련된 역사적 전환점이다. 여기에 더해 2024년 12월 개정된 장기요양기관 평가 고시는 시설 평가 지표에 구강관리 항목을 새롭게 추가했다. 앞으로 요양시설은 체계적인 구강관리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평가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된 것이다. 보건복지부도 2025년 4월부터 전국 29개 보건소에서 방문 구강관리 시범사업을 시행하며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평가, 불소도포, 구강운동 등 표준 매뉴얼이 적용되는 이 사업은 2026년 본사업을 위한 시험대다.


하지만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현장에서 누가, 어떻게 이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돌봄 현장에서 구강관리는 대체로 요양보호사나 간호인력의 부가적 업무로 취급돼 왔다. 그러나 전문성이 없는 관리로는 흡인성 폐렴을 예방하거나 틀니 위생을 유지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바로 이 지점을 메우기 위해 대한치과위생사협회는 2023년부터 '노인·장애인 전문치과위생사'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총 35시간 과정으로 이뤄진 이 교육은 현장 실습을 포함해 전문성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2025년 현재 7기까지 수료생을 배출했고, 이들은 요양시설과 재가복지 현장에서 구강관리 중재를 담당하고 있다. 단순히 칫솔질을 돕는 수준이 아니라, 평가, 맞춤형 칫솔질, 틀니관리, 구강운동까지 아우르는 전문적 관리 루틴을 실천하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이러한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다. 지역 치과계와 치과위생사협회는 지난해부터 선제적으로 요양시설과 재가 현장에서 시범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 과정에서 노인전문가 과정을 수료한 치과위생사들의 반복적 개입을 받은 노인들에게서 치면세균막과 설태가 감소하고, 구강 습윤도가 개선되는 성과가 확인되었다. 이 성과는 대구국제 치과종합학술대회(DIDEX)에서 발표되며 학문적으로도 그 효과성이 인정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올해는 국민건강보험공단 대구경북지역본부와 협력하여 구강관리 지원 모델을 구체화했으며, 9월부터는 8주 과정으로 어르신 구강관리 중재와 기관 담당자 교육이 병행될 예정이다. 아울러 대구시치과의사회도 검진 단계에서 직접 참여해 의료–복지 협력 모델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다.


이 모델은 단순한 지역 사업이 아니다. 통합돌봄지원법, 장기요양기관 평가 고시 개정, 보건복지부 시범사업과 맞물려 돌아가는 전국적 선도 사례다. 정책 변화와 현장 실천이 결합한 모델로, 앞으로 국가 단위 확산이 불가피하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 방문 구강관리의 제도화와 수가체계 마련이다. 법적 근거는 생겼지만,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반드시 재정적 보장이 뒤따라야 한다.


둘째, 요양시설 내 구강보건실 설치를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현재는 서울을 시작으로 7곳에 불과하지만, 제도화되면 더 많은 어르신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치과위생사 교육과정에서 노인·장애인 구강관리 교육을 강화하고, 전문인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현장에서 일할 사람이 없다면 법과 제도는 종이 위의 약속에 불과하다.


치과의사와 치과위생사가 손을 잡고, 지역사회와 국가가 함께 나설 때 변화는 현실이 된다. 노인의 구강건강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어르신들의 삶을 지켜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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