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전 이사장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이 막바지 뜨거웠던 무렵 '윤석열 폭탄주'와 '김건희 V0(브이 제로) 권력' 실태 기사가 화제가 됐다. '월간중앙'이 윤-김 부부의 탐욕과 폭주, 몰락을 관련자 증언으로 재구성한 특집이었다. 윤의 폭탄주 사랑과 그의 머리 꼭대기에 앉은 김의 일탈은 기왕에 알려진 얘기. 특별한 게 뭐 더 있겠냐 싶었으나 기사에 실린 증언 일부가 상상을 초월한, 가히 '폭탄'적이었다. 당연히 다른 언론이 받아쓰고 퍼 날랐다. 바로 이런 증언들이었다.
"취임 초 VIP가 거의 매일 술 마시느라 귀가하지 않아 경호원들도 심야까지 대기하는 게 일상이었다. 한남동 공관이 완성되기 전 일이다. 일과가 끝나면 대통령은 자택(서초동 아크로비스타)에 가지 않고 대통령실 안에서 술자리를 만들었다. 참석자만 바뀌는 술판이 자정까지 이어졌다. 얼마나 술을 먹었냐면, 소주와 맥주를 가득 실은 1t 화물 탑차가 매주 대통령실로 배달 다녔을 정도였다." - 경호처에 파견 근무했던 한 경찰 간부
"국정운영 전반에 이 사람(김건희) 입김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달 정도로 국정 난맥의 중심이었다. 그런 걸 차단하는 역할을 해야 할 당 의원들이 되레 윤보다 김과 그 측근을 찾아갔다. 거기서 인정받아 출세하고 사욕을 채우려던 간신 모리배들이 득실득실했다. 일부가 윤핵관들에게 '김건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조언했으나, 윤핵관들은 그 얘기를 대통령에게 하는 순간 자기 목이 달아날 그런 상황이었다. 윤의 국정운영 기간 최고 불문율이 그 앞에서 '여사 얘기'를 꺼내는 거였다."- 김성태 국민의힘 전 중앙위 의장
세상에, 대통령이 집무 공간에서 마실 소주·맥주를 가득 채운 화물 탑차가 매주 대통령실로 배달 다녔다고… 자정까지 술판을 벌이고 참석자를 번갈아 바꾸며 저는 버티고 앉아 계속 폭탄주를 마셨다고… 윤은 소주·맥주를 모두 잔에 꽉꽉 채우는 이른바 '텐텐 주'를 즐겼다고 한다. 예닐곱 시간 줄창 그렇게 마셔 대면 흐트러지는 건 당연하고 이튿날 속쓰림, 숙취로 고생하게 된다. 정시 출근은 힘들고 그걸 또 언론에 들키긴 싫어, 가짜 출근 차를 미리 보내는 대국민 속임수를 쓴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앞서 밝혔듯 기사가 난 건 국민의힘 대표 경선이 막바지에 이른, 당원 투표 및 국민 여론조사 하루 전이었다. '남편 대통령은 마냥 폭탄주', '부인은 간신 모리배가 득실득실한 신성불가침 권력'을 누린 얘기가 장안 화제가 된 만큼 경선에도 꽤 영향을 미칠 걸로 보였다. 그런데 웬걸, 아니었다. 계엄 내란 탄핵에 대해 국민께 사죄하고, 당은 윤과 완전히 절연하자는 찬탄파 조경태, 안철수는 맥없이 3, 4위로 무너졌다. 탄핵 반대, '윤 어게인'을 앞세운 장동혁, 김문수만 결선에 올랐다. 거기서도 더 강경하게, 거의 광기(狂氣) 수준으로 '윤 어게인'을 외쳐댄 장이 최종 승자가 됐다. 황당하게도 승인은 극우 유튜버 전한길을 '선생으로 모시며 품고 따른' 거였다.
경선기간 내내 전한길은 국민의힘을 가지고 놀았다. 비상계엄과 법원 난입을 옹호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줄기차게 퍼트려 '윤 어게인' 아이콘이 됐듯 경선판을 쥐고 흔들었다. "대표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십만 명과 함께 입당했다"더니 또 직접 후보 면접을 보겠다고 큰소리쳤다. 말 같잖은 소리라는 국민 눈총도 아랑곳없이 장동혁과 몇 최고위원 후보들이 실제로 그 면접장에 갔다. 기세가 등등해진 그는 "전한길과 윤석열을 품는 자가 당 대표가 될 것"이라고 외치고 다녔다. 지역 대회에서는 찬탄 후보가 연단에 오르면 "배신자" 구호를 선창하며 연설을 방해, 찬탄·반탄 간 싸움이 벌어지는 등 난장판의 주역이 되었다.
장동혁은 그런데도 전을 실제로 품고 따랐다. 전이 윤석열을 예수에 비유했듯 그는 비상계엄을 신의 뜻이라고 맞장구쳤다. TV 토론 때 "당 대표가 돼 보궐선거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한길 중 누구를 하겠느냐?"는 질문에 거침없이 "전한길"로 답했다. 합동연설회에서는 "'윤 어게인'과 '전한길 선생'을 향해 배신자라고 부르는 자들이 곧 배신자"라며 "그분들은 추운 겨울 우리 당을 지키려고 거리로 나섰던 분들인데 이들을 나가라는 게, 바로 그런 자들이야말로 부끄러운 것"이라고 호통쳤다. 그렇게 해서 장이 대표가 되자 전은 즉각 "봐라. 나를 품어야 지자체장이 되고, 국회의원 공천을 받고, 다음 대통령까지 된다"라고 흰소리를 했다. "벌써 인사와 공천 청탁이 쏟아진다"라며 뻐기기도 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기간 당 밖에서는 윤-김 부부의 '20세기형' 매관매직 부정부패 실상이 속속 드러나고 있었다. 이름도 어려운 명품 목걸이와 브로치 시계 가방 등을 뇌물로 받고 장 차관급이나 의원 등 공직을 주었다는 의혹들이 잇달아 불거졌다. 국민은 그때마다 그저 한숨만 쉬었다. 그런데도 당내에서는 오직 '윤 어게인', 파면 구속된 윤을 다시 불러내자는 목소리에만 힘이 실렸다. 윤을 놓고 이젠 탄핵의 강을 건너가 새 출발하자는 얘기는 배신자의 주문으로 낙인찍혔다. 민심과는 동떨어진 가치관, 구호가 당의 슬로건으로 나부끼며 전당대회를 치른 것이었다.
솔직히 계엄이, 내란 행위가 없었더라도 지금 밝혀진 부정부패 매관매직의 일부라도 드러났다면 윤의 대통령직 수행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니 1t 탑차로 폭탄주 재료를 대통령실에 배달해 매일 마셔 댔단 사실만 알려졌어도 당장 물러나란 요구가 빗발쳤을 것이다.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는 격에 맞지 않는, 천박하고 탐욕스러운 행태들이 속속 드러나는데도 그 부부를 다시 불러내 모시자는 세력이 국민의힘을 장악해 목소리를 높여나가는 일은 정말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민심의 바다에 떠 있는 정당이 그 민심과 동떨어진 일을 서슴지 않는 기이한 현상. 바로 그런 국민의힘은 다시 '광인들의 배'를 연상시킨다. (본보 2025년 5월14일 '광인들의 배, 혹은 바보 배') 중세 유럽, 도시와 시민에게서 쫓겨난 광인들이 가득한 배의 갑판. 저만의 세계에 갇힌 그들은 정처도 미래도 불안정하다. 눈앞의 욕망과 쾌락에 몸을 맡길 뿐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그림에선 아귀 같은 형용으로 옹기종기 방주에 앉은 이들이 술과 고기와 성욕을 탐하며 검고 동그랗게 입을 벌린 모습이 처절하게 그려져 있다. 뭔가 외치고 다투는 이들과 풀린 눈을 한 채 빈 술병을 빠는 이, 만돌린을 켜는 이와 칼을 뽑은 이. 그 모습엔 어떤 정형도, 지향도 없다. 영혼은 어디 팔았는지 본능에만 몸을 맡겼을 뿐이다.
그런 광인들의 배가 어디로 갈지 끝내 파선하고 말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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