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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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05 11:01  |  발행일 2025-09-05
이재윤 논설위원

이재윤 논설위원

과거


10대에 고아가 된 선친이 오랜 머슴살이에서 벗어나 대구 동산병원 앞에 마련했던 과일가게를 버리다시피 서둘러 시골로 내려간 건 전적으로 일제의 '신사참배' '동방요배' 강요 때문이었다. 자신 삶을 자랑도 설명도 좀처럼 하지 않아 30대였을 해방 전후 시기 성조기와 태극기를 만들어 시골집 지하 창고 사과궤짝에 가득 보관했었다는 사실을 가족들로부터 귀동냥한 건 훨씬 훗날의 일이다. 사과궤짝엔 왜 성조기가 있었을까? 선친이 그렇게 미국을 만났듯 수많은 사람이 각기 운명적 방식으로 미국을 접하던 때였다. 미리견(美利堅)이란 낯선 호칭으로 조선 땅에 조심스레 첫 발을 디딘 때와는 달리 미국과 미국 문화는 해방과 함께 물밀듯 들어왔다. 그때가 한·미관계의 첫 변곡점이다. 제너럴셔먼호(號) 사건 이후 해방까지 80년, 해방 후 오늘날까지 꼭 80년. 지난 80년 미국은 한국에 절대 반지(One Ring)였다.


분명 고마운 나라다. 신(新)교육과 서구 의료기술의 도입, 행정·치안·군 조직의 전수,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권의 자각, 민주주의 도입과 자본주의 정착에는 미국의 기여가 한없이 크다. 선조들의 독립운동은 존경과 감사함으로 높이 칭송할 일이지만, 일제강점기를 끝장낸 건 미국의 대(對)일본전 승리에 힘입은 바 크다. 한국전쟁은 더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때 공산화됐더라면 지금의 자유와 풍요는 어림도 없다. 3만 명이 넘는 미국의 젊은이들은 생면부지의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 때 1인당 국민총소득 67달러에 불과한 최빈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5대 군사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미국의 심은후덕(深恩厚德)은 지대하다.


물론, 일본의 한반도 우월권을 인정한 가쓰라 테프트 밀약, 이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일본의 대한제국 병합, 한반도 분할 및 신탁통치 그리고 분단의 고착화 등 그늘진 역사도 적지 않다. 수치화할 어떠한 근거도 없지만, 미국이 한국 근현대사에 끼친 공·과를 평한다면 7 대 3에서 8 대 2 사이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현재


겉으로 좋지만 바닥엔 이상기류가 흐른다. 두 번째 변곡점인가. 안미경중(安美經中)이나 미중 갈등, 신냉전, 관세 및 국방비 갈등 때문이 아니다. 감정선을 더 깊이 건드렸다. 불법 계엄을 수습하는 우리의 지난한 민주주의 회복 과정을 뜬금없이 '숙청' '혁명' '독재'라 낙인찍었다. 부당한 내정간섭이다. 무엇보다, 사실을 오도한 불의이며 한국민의 주권을 무시하고 특정 정파에 편향된 무도한 압력이다. 어둠의 커넥션 한·미 극우가 움직였다. 이쯤 되면 적보다 친구가 더 위험하다. '외세 의존증'이 다시 도진 것도 참 비루하다.


미래


멀리 있는 강대국보다 가까이 있는 강대국이 더 위험하다. 대륙에 통일 강국이 들어설 때마다 한반도는 외침에 시달렸다. 천안문 망루에 나란히 선 북·중·러. 이들과 맞선 자유 진영의 최전선 한국, 자강 외 답이 없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이 그것이다. "국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싱턴행 기내에서 또 말했다. "그 얘기를 왜 꺼냈는지 어떻게 다 얘기를 하겠나.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생각을 한다."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입을 굳게 다물고 강한 의지로 흔들림 없이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한다. 부국강병. EU는 5년 안에 재무장을 끝낼 준비를 하고 있다. 미국과 '헤어질 결심'을 한 듯하다. 격동의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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