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춘희 여사가 소헌미술관에 전시된 자신의 무삼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경북 안동의 유서깊은 전통섬유 '무삼'에 삶의 이야기를 수놓아온 김관용 전 경북도지사 부인 김춘희 여사가 오는 15일부터 27일까지 대구 소헌미술관에서 '무삼 위에 피어낸 40년 세월의 흔적展'을 선보인다.
소헌미술관 개관 11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전시에서 김 여사는 반평생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만든 이불, 베개, 베개잇, 상보, 풀주머니 등 30여 점의 무삼 작품을 공개한다. 영남일보는 지난 4일, 전시 준비를 위해 전시장을 찾은 김 여사와 만남을 가지고 무삼 작품을 제작한 계기와 그 바탕에 자리한 전통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김 여사의 설명에 따르면 무삼은 과거 안동지역에서 옷감으로 널리 쓰였던 질기고 거친 삼베의 일종이다. 껍질을 훑어내지 안은 채 삼을 삼고 잿물에 울어내 베를 짠 거친 포를 일컫는다. 특유의 내구성 덕분에 노동자의 옷으로 활용됐으며 항균성까지 지녀 옛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요긴하게 사용됐다. 경북 북부의 유림과 서원에서도 여러 행사에 무삼을 활용한 의복을 활용하는 등 전통문화와도 뗄 수 없는 사이다. 한때는 물물교환 수단으로도 활용될 만큼 귀한 가치를 지녔었지만, 현대화가 거듭되며 사용하는 이가 점점 줄고 있는 문화자산이다.

김춘희 여사의 무삼 작품이 소헌미술관 전시장에 걸려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무삼 위에 피어낸 40년 세월의 흔적展' 팸플릿 이미지.<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김 여사에게 무삼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자, 삶의 고뇌와 흔적을 담아내는 소중한 캔버스다. 작품 곳곳에 십자수로 수놓은 딸기 문양은 김 여사의 무의식에 자리 잡은 희망과 생명력을 상징한다. 딸기 한 알을 수놓는 데만 6시간이 소요될 만큼 고된 작업이다. 손가락 끝마디가 휘어버릴 만큼 힘든 과정이었지만 김 여사는 "이것은 완성의 문제가 아니라 되어가는 과정의 문제"라며 작품에 대한 굳건한 신념을 드러냈다.
무삼에 대한 사랑은 김 여사 평생의 경험 속에서 체득된 것이다. 안동에서 태어난 김 여사는 어린시절부터 어머니가 무삼을 짜는 과정을 보며 모녀의 정을 키웠다. "무삼 홑이불은 여름에 덮으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어요"라고 말한 김 여사는 낡고 해진 침대 커버에서 덜 닳은 부분을 오려내 베개잇과 풀주머니로 만들었던 과거를 회상하며, 무삼에 대한 애착을 감추지 않았다.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무삼 홑이불 덕분에 여름이면 파리를 막고 시원하게 잠을 청하던 어린 소녀의 추억은, 이후 아토피를 앓던 아이들을 위해 침대 커버를 만들어줄 만큼 실용적인 어머니의 사랑으로 이어졌다.

김춘희 여사가 무삼 작품의 제작 과정과 소재 특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김춘희 '애기이불1'

소헌미술관 전시장에 김춘희 여사의 무삼 작품들이 전시 준비를 위해 놓여 있다. <임훈기자 hoony@yeongnam.com>
하지만, 무삼 관련 전통이 사라져가는 점은 김 여사에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김 여사는 "이제 무삼을 짤 줄 아는 장인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안타깝다, 더는 이 귀한 문화가 사라지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며 작품 활동을 통해 향토문화의 한 축이었던 무삼을 알리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를 기획한 소헌미술관 장경선 관장은 "김 여사의 작품에서는 서울 종묘의 건축처럼 '소중한 단순함'과 '조용한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다"고 평했다. 40여년간 꾸준히 이어온 작가의 꾸준함과 성실함이 작품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무삼은 겨울이면 뻣뻣해져 작업을 할 수 없기에 5월부터 9월까지만 작업할 수 있다. 무삼에 대한 오랜 그리움에다 인고의 시간까지 더해졌기에 김 여사의 작품에서는 남다른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끝으로 김춘희 여사는 "이번 전시가 사라져가는 전통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무삼을 잘 모르는 젊은 관람객들이 우리 전통 섬유의 존재를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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