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양무진 석좌교수가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우리 국민들은 평화를 원합니다. 최근 중국 전승절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것도 (남북관계가) 더 악화되기를 바라지 않고 평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 행사에서 언론과 정치권의 높은 관심에 이같이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중국과 북한, 러시아 정상 만남으로 국내 방송사들이 앞다퉈 생중계를 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됐다. 국회는 물론 정부에서도 이에 대한 논평이 이어졌다.
이후 5일 서울 종로구 북한대학원대학교 자신의 연구실에서 만난 양 교수는 사실 정신이 없어 보였다. 북한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한 듯 그에게 해석을 요청하기 위해 전화가 쉴 새 없이 울려댔기 때문이다. 기자들의 "북·중·러 결속이 강화되는 건가요?" "한반도 긴장이 더 높아지는 건 아닌가요?"와 같은 질문들은 향후 남북관계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었다.
각종 언론 매체와 정책 포럼에서 북한 문제 해설자로 활발히 활동하며 정확한 분석으로 신뢰를 쌓아온 양 교수. 최근 정년퇴직으로 총장직에서 물러난 뒤 석좌교수로 '새 출발'에 나선 그에게 지금 이 순간 동북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의미를 짚어보고, 한반도 평화 가능성에 대해 들어봤다.
▲중국 전승절에 북한이 참석한 것을 어떻게 봤나.
"북한이 참석한 것이 이례적이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이 함께 담겨 있다. 중국의 전승절 80주년에 대해서는 한미일 삼각 연대에 대한 북중러 삼각 연대 소위 '견제구'로서의 의미를 봐야 한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정적이다. 양쪽의 삼각연대가 결국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한의 핵 능력을 더욱 고도화시킬 수 있다는 과거 경험이 있지 않나. 윤석열 정부 3년 동안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향후 국제 무대에서 서로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UN 무대나 올림픽, APEC 등이 열려 있으니까. 즉 북한이 다자무대에 데뷔를 했기 때문에 향후 우리의 평화 외교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최근 북한의 외교가 변화됐다고 보나.
"사실 북한이 이번에 처음 다자외교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무대만 다자지, 다자 정상회담은 거의 안 했다. 즉 실질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양자 회담이었다. 결국 북한의 외교 상대국이 좁다는 방증이다. 우리와 비교했을 때 상당한 차이가 있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외교 행사를 주최해야 한다. UN 산하 기구들이 있지않나. 북한이 그런 걸 북한에서 개최한다면 우리에게는 상당히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외교 무대에서 남북한이 경쟁하는 모습이 아니라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5일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양무진 석좌교수가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당분간은 한미일 협력으로 신냉전 구도가 더 강화되지 않을까.
"긴장 관계 강화라는 것은 남북 간 대화가 전혀 없고 더 나아가 남북한이 서로 군사적 맞대응을 하거나 북한이 계속 핵이나 미사일 실험을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재명 정부 들어와서 보면,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달라졌다. 물론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를 계속 주장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핵 미사일이나 탄도미사일 발사를 안 하고 있지 않나. 또 한국의 대북 전단 및 확성기 방송 중단에 대해 북한 또한 소극적이지만 화답을 하고 있다. 이것은 대화의 틀이나 연락 채널도 없는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즉 너무 나쁘게만은 보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물론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대화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현재는 대화도 없고 합의도 없는 상태에서 긴장 완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본 길이 아니다. 이 점에서는 이재명 정부가 나름대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직접적인 대북 정책을 내놓지는 않았지만 큰 틀의 평화 이니셔티브 속에서 움직이고 있고, 그 결과가 한반도 긴장 완화를 이끌고 있는 것 아니겠나."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를 어떻게 보나.
"큰 틀에서 평화-공존-공동-번영의 한반도 구상이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는 3가지 원칙이 있다. 북한 체제 인정과 존중, 흡수통일 배제, 적대 행위 불추진이다. 이는 기존 남북관계 합의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정신이다. 결국 이재명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기존 합의를 복원시키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다."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 대통령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다. 비핵화 3단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중단' '감축' '폐기'다. 이건 굉장히 현실적인 접근법이다. 한미는 비핵화를 주장하고 북한은 핵 군축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핵만 가지고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비핵화, 평화 체제, 북미 수교가 함께 가야 한다.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관련 당사자들의 불신이 많은 상태에서 한꺼번에 할 수 없으니 단계적 이행과 동시 행동의 원칙이 필요하다."

5일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연구실에서 양무진 석좌교수가 영남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정재훈기자 jjhoon@yeongnam.com
▲경주 APEC에서 김정은의 참석 가능성은.
"김정은 위원장이 참석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이재명 정부도 공식적으로 초청하지 않을 것이다. 2019년 문재인 정부의 한-아세안 정상회의 초청 문제에 대한 교훈이 있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가 자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굉장히 화를 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번에도 똑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게다가 현재 이재명 정부가 김정은 위원장에게 줄 수 있는 게 있나. 핵 보유국 인정, 적대적 2개 국가 인정, 헌법 개정,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인가.
"'APEC 계기'라는 단어를 주목하고 싶다. 이후 북미 대화나 남북 대화로 이어진다면 APEC 자체가 관계 개선의 시발점이 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APEC 계기 경주를 방문하니까 시간이 되면 만나고 싶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판단은 김정은 위원장의 몫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거절하더라도 '지금은 8차 당 대회 과제를 마무리하고 9차 당 대회를 준비하느라 시간 내기가 어렵다. 다음 좋은 기회에 만나면 좋겠다'고 할 수 있다. 이것도 계기로 대화가 이뤄진 것이니 우리에게는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우리 정부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북미 간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단순한 바람이 아니라 현실성 있는 예측이다. 트럼프가 계속 러브콜을 보내고 있고, 북한도 북미 정상 간의 개인적 친분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언젠가는 대화를 한다는 상상이 충분기 가능하고, 그 시점은 러-우 전쟁이 끝나는 시기라고 본다."
■양무진 석좌교수 프로필
▲ 1960년 경남 양산 출생 ▲ 경남대 사학과(학사)·행정대학원 북한학과(석사)·대학원 정치외교학과(박사) 졸업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연구원 ▲통일부 4급 비서관 ▲ 남북정상회담 수행원 및 대표 보좌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 ▲북한대학원 대학교 총장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