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캠페인 통·나·무 시즌2] <9> 가정주부 권분자 씨 “재벌이 아니어도 ‘1억’ 기부할 수 있어요”

  • 조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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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10 16:37  |  발행일 2025-09-10

대구 아너 252명 중 유일한 가정주부

'이야기 할머니' 활동비 등 꼬박 모아 저축

"유교 경전 공부하며 남 도우 고픈 마음 커져

내 힘으로 번 돈 의미 있게 쓸 수 있어 큰 기쁨"

근검절약해 모은 1억원을 기부한 권분자씨가 유교경전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많이 변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근검절약해 모은 1억원을 기부한 권분자씨가 유교경전을 공부하면서 생각이 많이 변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은퇴 후 유교 경전을 공부하며 남을 위해 의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더라고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기부할 수 있습니다."


지난 9일 오전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실에서 만난 권분자(72)씨. 그는 인터뷰 내내 "대단한 일을 한 게 아니다"며 연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그가 걸어온 삶의 궤적들을 보면 결코 평범하지 않다. 대구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252명 가운데 정치인·사업가가 아닌 '가정주부'로 1억원을 기부한 이는 권씨가 유일해서다.


경북 성주군 용암면에서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권씨는 넉넉하지 않은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참 어렵게 살던 때였다"며 "그래도 아버지로부터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곧은 성품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스물일곱,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에 결혼한 권씨는 남편과 함께 대구로 둥지를 옮겼다. 서구 중리시장에 자리잡고 옷 장사를 시작했다. 권씨와 남편의 첫 경제활동이었다.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저축은 꾸준히 했다. 그 덕택에 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 딸이 4학년이던 1992년 당시 대구 달서구 상인동 한 79㎡(24평)짜리 아파트로 이사할 수 있었다. 이 무렵 남편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 중개소를 열면서 권씨는 자녀 양육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다. 그는 "옷 장사도 그만두고 아이들도 어느 정도 크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발길이 닿은 곳이 주민센터 서예 교실이었다. 그는 서예 선생님의 권유로 한문 수업을 시작했고, 그렇게 유교 경전 삼매경에 빠졌다. 그는 "처음엔 정신 수양 차원에 시작했지만, 공부를 할수록 남도 이롭게 해야 진짜 공부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며 "그때부터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쓰는 게 옳을까 진중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권씨는 소일거리로 2012년부터 예절 지도사 과정을 이수해 지역 초·중·고교에서 인성·예절 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2014년부턴 '아름다운 이야기 할머니' 사업에 참여해 주 3회 어린이집을 찾아 이야기를 들려줬다. 회당 3만~5만원에 불과한 활동비였지만 10여년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았다. 생활 속 절약까지 더해 마침내 1억원을 마련했다.


예절 지도사, 이야기 할머니 활동으로 번 돈 자체를 애초부터 기부할 생각이었다. 남편과 함께 번 돈이 아닌, 오롯이 혼자 번 돈은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었던 것. 기부처를 고민하던 중 딸의 권유로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알게 됐다. 2023년 4월 개인 아너소사이어티에 가입(228호)했다. 자녀와 남편 모두 "좋은 일을 했다"며 힘을 실어줬다.


권씨는 "공자의 '인(仁)' 사상은 곧 사랑과 예(禮)인데,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내가 그걸 직접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이 가장 뿌듯하다"며 "이 좋은 일을 남들에게 억지로 권할 수는 없지만, 더 많은 사람이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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