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미술관에서 마주한 문화유산의 의미

  • 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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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09-12 06:00  |  수정 2025-09-11 17:05  |  발행일 2025-09-11
개관 1주년 대구간송미술관
미술관에서의 짧은 독서
헨리L. 스팀슨과 교토의 인연
문화유산에 대한 경험 중요성
문화의 힘을 돼새긴 하루
임훈 문화팀 차장

임훈 문화팀 차장

지난 3일 기자는 개관 1주년을 맞이한 대구간송미술관을 찾았다. 미술관 주변은 지역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대구간송미술관의 소장 작품을 관람하기 위한 시민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더욱이 이날은 무료 개방일이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인파가 미술관을 드나들고 있었다.


이날 기자는 전인건 대구간송미술관장의 특강 '간송 전형필 선생의 삶과 문화유산'을 듣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는데, 어쩌다보니 강의 시간보다 1시간 빨리 도착한 터였다. 업무도 처리하고 잠시 쉴 곳을 찾아 헤매다, 마침 미술관 1층의 독서공간인 '아카이브 집'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간단한 업무를 처리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카이브 집'의 책장에 꽃힌 미술 및 문화유산 관련 다양한 서적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다 고른 책의 제목은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3: 교토의 역사'였다. 책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지난 3월 가족들과 함께 교토를 방문한 적 있었기에 독서를 통해 기자가 거쳐갔던 명승지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점은 책의 본문 중 일본 유명 대중문학 작가 오사라기 지로의 소설 '귀향'이 언급됐다는 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일본 교토(京都)의 대표 문화유산 중 하나인 청수사(淸水寺) 석양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실제로 산비탈에 조성돼 서쪽을 바라보는 청수사에서는 교토 도심을 한 눈에 담은 채 석양을 볼 수 있다. 이렇듯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에도 살아남은 문화유산들은 피폐한 삶을 살아갔던 일본의 민중들에게 희망을 주었을 것이다.


교토의 문화유산에 대한 책을 잃던 중 자칫하면 우리 모두가 청수사의 석양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뻔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번뜩 떠올랐다. 교토는 히로시마와 더불어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의 핵폭탄 투하 후보 도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핵폭발은 어느 도시, 누구에게나 참혹한 법이지만, 만약 교토에 핵폭탄이 떨어졌다면 일본의 역사에 더 큰 타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당시 교토 핵폭탄 투하에 제동을 건 사람은 미국 전쟁부 장관 헨리 L. 스팀슨으로 알려져 있다. 헨리 L. 스팀슨은 일본과의 전쟁 전 수차례 교토를 방문했으며, 신혼여행마저 교토로 다녀왔다는 설이 있다. 타국의 문화유산과 그 가치에 대해 경험한 한 관료는 핵폭탄 투하라는 전례없는 상황 속에서도 문화유산 상실의 충격을 고려한 것이다.


이렇게 짧지만 밀도 있었던 독서를 마치고 특강이 열리는 미술관 강당으로 향했다. 150석 가량의 좌석이 가득 찬 것도 모자라 간의 의자를 두고 특강을 듣는 관람객까지 등장할 정도로 이날 행사는 만원을 이뤘다.


방금 읽은 책과 단상을 통해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운 터라, 이날 미술관 측이 마련한 문화행사가 다채롭게 느껴졌다. 최근 한국 고유 문화의 코드를 담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애니메이션이 전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끌면서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우리 문화의 더 나은 내일로 이어지는 바탕이 되길 바란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라고 말씀하셨던 백범 김구 선생님이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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