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만찬장 변경 파문, 무엇이 문제였나

  • 장성재
  • |
  • 입력 2025-09-22 18:33  |  발행일 2025-09-22
국립경주박물관 무산·라한 호텔 변경…수용 공간 부족과 시설 미비,
국비 80억 투입 한옥 신축 건물 ‘무용지물’…임시 행사장 전락 우려
신라 금관 특별전도 동선 제외 가능성…“경주의 문화적 무대 사라져”
사진은 APEC 문화행사장인 불국사의 가을 단풍 모습. 김택수_불국사단풍, 경주시 제공

사진은 APEC 문화행사장인 불국사의 가을 단풍 모습. 김택수_불국사단풍, 경주시 제공

지난 17일 공정률 95%를 기록한 국립경주박물관 중앙 마당 만찬장 신축 건물.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지난 17일 공정률 95%를 기록한 국립경주박물관 중앙 마당 만찬장 신축 건물. 장성재기자 blowpaper@yeongnam.com

2025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만찬 장소가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라한호텔로 변경(9월22일자 1·3면 보도)된 데 따른 후폭풍이 거세다. 경주시민의 좌절감은 말할 것도 없고 박물관 내 완공을 앞둔 한옥 목조건물의 활용과 특별 행사 진행 등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이 같은 사태를 초래한 원인에 대해서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4·10면에 관련기사


먼저 경주시민은 이번 만찬 장소의 변경에 대해 '경주다움'을 보여줄 무대를 잃었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 하고 있다. 경주의 역사와 추경(秋景)을 전 세계에 선보일 기회를 놓치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다 국비 수십억 원이 들어간 만찬장 신축 건물은 사실상 임시 행사장으로 전락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국가가 세계적 행사를 준비하면서 졸속행정을 펼쳤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APEC준비위는 지난 1월 국립경주박물관 중정을 만찬장으로 확정하고, 2천㎡ 규모의 신축 한옥 목조건물을 지어 각국 정상은 물론 글로벌 기업 CEO 등 최대 500여 명을 수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부지 중앙 좌우에 있던 다보탑·석가탑 복제품 유구를 옮기지 못한 채 설계가 진행되면서 전체 공간이 좁아졌다. 여기다 무대 설치 공간 등이 반영되면서 공정률 절반이 넘는 시점에서 실제 수용 가능 인원이 250명 남짓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전에 충분히 예상 가능한 문제였음에도 뒤늦게 장소 변경을 결정한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지난 17일 정부합동안전점검에서는 전기·소방 시설 안전성 미확보, 조리실·화장실 시설 미흡 등의 지적을 받았다. 정상들이 만찬 도중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박물관 본관까지 40m 이상 이동해야 하고, 조리실은 만찬장에서 약 30m 떨어진 커피숍에 마련해야 했다. 상·하수도 배관을 연결하지 않고 전기만 쓰도록 설계해 기본적인 시설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현장 관계자는 "건물 북서쪽에 상·하수도와 전력 배관이 모두 지나는 공동구가 있어 약간의 공사만으로도 연결이 가능했지만, 애초에 철거를 전제로 설계가 진행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박물관이 준비한 신라금관특별전 진행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10월31일 개막하는 특별전은 신라 금관 6점이 사상 처음 한자리에 모이는 역사적 행사다. 하지만 이번 장소 변경으로 각국 정상의 방문 동선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경주시는 최근 준비위 서면회의에서 만찬장 장소 변경을 재고해 달라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 측이 행사 후 3개월 내 만찬장 건물 철거를 요구했음에도 최소 2년은 전시나 휴게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유지를 설득하기도 했다.


경주시 관계자는 "박물관의 가을 전경과 동부사적지를 배경으로 경주의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송출하는 것이 이번 만찬의 가장 큰 의미였는데, 기회를 잃게 돼 너무 아쉽다"고 토로했다. 경주시의회 이락우 APEC특위 위원장 역시 "가을 경주의 절경을 보여주려 했는데 불과 한 달을 남기고 호텔로 바꾼 것은 경주다움을 지운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기자 이미지

장성재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북지역인기뉴스

영남일보TV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