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영 논설위원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pop 데몬 헌터스'(케데헌)가 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새롭게 주목받는 공공조형물이 있다. 지난 2015년 세종시 정부제2청사 앞에 설치됐던 조형물 '흥겨운 우리가락'이다. 이 작품은 갓을 쓴 남성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춤추는 장면을 형상화했다. 전통춤 '한량무'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운명은 기구했다. 남성의 웃는 얼굴이 '기괴하다' '섬뜩하다' 등의 민원이 접수돼 몇달 후 인근 소방청 청사로 옮겨졌다. 조형물이 이전한 곳에서도 '저승사자 같은데 재난 대응 건물 옆에 두는 게 맞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조형물 제작비가 약 1억5천만 원으로 알려지면서 혈세 낭비 논란까지 일었다. 결국, 지난 2019년 철거돼 2청사 지하주차장에 임시 보관돼 있다.
케데헌 열풍으로 일각에서 이 작품을 재설치하자는 요구가 일고 있다. 케데헌 속 캐릭터인 '사자보이즈'와 조형물의 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다. 국민신문고에는 재설치 해달라는 민원도 접수됐다. 정부청사관리본부 측은 재설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부정적 여론 때문에 철거된 만큼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누적 시청 수 2억6천600만회를 기록하며 역대 넷플릭스 콘텐츠 1위에 올라선 케데헌의 위력이 조형물을 바라보는 시민의 시선까지 변화시켰다는 것이 놀랍다. 천덕꾸러기였던 조형물이 한순간 한국 문화를 상징하는 예술품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형물에 대한 시선이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사례는 많다.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이 대표적이다. 1889년 건축가 알렉상드르 귀스타브 에펠이 만든 이 철탑은 한때 파리의 애물단지였다. 거대한 건물이 잘 없던 그 시절, 높이 300m의 에펠탑은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일으켰다. "예술 도시 파리의 미관을 망치는 흉물" 이란 비판은 물론 "탑이 무너지면 사람 다 죽는다"는 공포까지 더해져 철거하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하지만 이제는 프랑스를 여행하는 이들 대부분이 찾은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됐다.
대구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달서구의 거대 원시인 조형물인 '이만옹(二萬翁)'이다. 세계적인 광고제작자 이제석씨가 2018년 선사시대 유물이 많은 달서구의 랜드마크로 만들었지만, 초기에는 이색적인 디자인과 큰 규모 때문에 주변 시설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흉물로 여겼다. 달서구청이 적극적으로 나서 이 조형물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갔다. 코로나 사태 때는 마스크 착용 독려를 위해 조형물에 거대한 마스크를 씌우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 모자를 씌우는 등 조형물을 활용한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시민에게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갔다. 같은 조형물이라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시민의 수용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대구경북지역에도 많은 공공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도시 이미지를 살리는 공공조형물은 꼭 필요하다. 잘 만든 공공조형물은 도시의 품격을 보여주며, 도시 이미지를 높이는 귀한 자산이다. 하지만 혈세를 투입해 만든 조형물이 오히려 도시 이미지에 먹칠하며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역사적인 배경이나 장소성, 예술성, 공공의 가치, 품격 등을 배제한 채 무분별하게 건립했기 때문이다. '흥겨운 우리가락' 재설치 요구를 보면 우리 지역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조형물들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도 모르게 됐다. '흥겨운 우리가락'에 대한 논란이 어떻게 펼쳐질지 주목된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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