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양극화 관련 AI 생성 이미지. 구글 gemini 캡처
최근 대한한국은 극심한 사회 혼란을 겪었다. 두달여 간 윤석열 당시 대통령의 탄핵 찬성과 반대 여부를 두고 주말마다 전국 곳곳에서 집회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 대표적이다. 표면적으론 탄핵 찬반이었지만, 보수와 진보 또는 좌파와 우파로 분열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치 양극화로 인한 피해는 심각하다. 지난해 국무조정실은 연구용역을 통해 대통령 탄핵 등 이념 갈등으로 빚은 사회적 비용이 최근 30여년 간 2천조원에 육박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런 피해는 각 지역으로 갈수록 더 커진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무투표 당선자' 10명 중 8명 이상이 영남과 호남 특정 지역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정당의 텃밭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경쟁자 없이 당선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유권자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풀뿌리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앙정치권이 '특검'이나 '방송법' 등에 매달리다 보니 국회 일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각 지역 현안들이 모두 뒷전으로 밀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영남일보는 항상 '지역 정치'를 진단하고 조언하기 위해 노력했다. 먼저 2019년 신년호에서 '대구경북 정치보고서'를 통해 시·도민의 '정치 정체성'이 '절대적이 아닌 보수'라는 것을 분석했고. 2021년 두번 째 기획에선 '정치에 대한 지역민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했다.
사실상 세번 째인 이번 기획에선 대구경북(TK)의 '정치 양극화'를 진단하고 해법에 대한 방안을 논의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양극화 극복을 위해 현재 상황을 진단하고 이후 비슷한 호남 사례와 함께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양극화 어느 정도인가?
'7대 3' 선거 때마다 대구경북의 정치상황을 잘 나타내주는 단어다. 대구경북에서 선거 시, 지역마다 조금은 다르지만 보수성향 정당 또는 후보자에 대한 득표가 7이라면 나머지 후보들의 합은 3으로 요약된다.

2010년 이후 치러진 주요선거 보수/비보수 득표율 계산 표. *2017년 대선은 주류 보수 정당(자유한국당) 후보 득표율 기준. ** 2022년 대선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득표율 기준. 자체제작
지난 15년간 대구경북 지역에서 치러진 주요 선거의 득표율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같은 현상은 꾸준히 나타난다.
2010년부터 2024년까지 대통령 선거, 지방선거(대구시장, 경북도지사)에서 보수 정당 후보가 얻은 득표율의 추이를 정리한 표를 살펴보면 하나의 명확한 흐름이 드러난다.
2010년대 초반 70% 중반에서 80% 초반에 달했던 보수 정당 득표율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를 기점으로 급격히 하락해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서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 하락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2020년 총선을 기점으로 반등하기 시작한 보수 지지율은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거치며 다시 70%대 후반에서 80%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완벽하게 회복됐다. 즉 TK의 정치 시계는 극심한 외부 충격에 의해 일시적으로 교란될 수 있으나, 이내 강력한 복원력을 발휘하며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 간 것이다.
2010년대 이후 TK 지역의 주요 선거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보수 7 대 비보수 3' 구도 가설은 이 지역의 정치적 특성을 설명하는 데 있어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데이터가 보여주듯 이 비율은 2014년 대구시장 선거에서 강력한 대항마인 '김부겸'의 등장으로 도전을 받았고, 2017-2018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격변기에는 명백히 붕괴됐다.
2017-2018년의 이탈 현상은 이 지역 유권자들의 근본적인 이념적 정체성이 변화한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과 지지했던 정당의 실패에 대한 극심한 실망감에서 비롯된 '리더십에 대한 심판'이었다. 이 시기 이탈한 보수층은 진보 진영으로 흡수되지 않았고, 보수 진영이 새로운 구심점을 찾자 빠른 속도로 복귀했다.
비보수 진영이 얻는 약 30%의 득표율 역시, 확고한 진보 지지층과 함께 상황에 따라 보수 진영에 등을 돌릴 수 있는 유동적인 '항의 투표층'이 결합된 결과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향후에도 TK 지역의 정치 구도는 국가적 차원의 큰 정치적 변동이 없는 한, 이 강력한 '7 대 3 평형점'을 중심으로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TK의 투표 행태 변화가 지역 내부의 이슈보다는 보수 진영의 중앙 정치 무대에서의 부침과 거의 완벽하게 연동된다는 점이다. TK 민심을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국가 단위의 정치적 서사이며, 지역 현안이나 개별 후보의 경쟁력은 부차적인 변수로 작용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 "유권자 표심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상황"
강우진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TK 정치 지형에 대해 "특정 정당이 40년 넘게 독식하는 구조"라며 "유권자 표심을 반영하는 형태보단 이미 독점 구조가 형성돼 유권자의 변화된 표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40년 넘는 시간이 흘러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결국 제대로 된 유권자 표심이 아닌 구조에 잠식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또 "정책과 사람이 아닌 권력에만 붙어버리는 현재 보수의 모습이 지속된다면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정당으로 거듭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특정 정당 독식으로 인한 문제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보수 진영의 전체적인 실력 부족을 꼬집었다. 윤 실장은 "보수와 진보가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해야 발전하는데, TK에선 보수 진영이 독식하는 구조이다 보니 경쟁이 없고 이로 인해 책임감이 부족해 실력은 늘지 않고 전망은 어두운 악순환의 구조가 되풀이 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실장은 또 정치인들과 지역 리더들의 밀접한 관계를 지적했다. 그는 "지역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이나 지역 유지들이 TK 국민의힘 의원들과 너무 밀착돼 있다. 일반 시민들과의 소통은 잘 안 이뤄지다 보니 유권자들의 의견 반영도는 낮아진 상태"라고 했다.
이어 "지역 현안 문제들이 해결 안 되는 것을 '민주당 정권이 도와주지 않아서'라고 치부하면 안 된다. 지역 의제의 경우 TK 전체 이익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특정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 잘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이 외면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선 "일방적으로 우리 지역 힘드니깐 도와 달라 이런 스탠스로만 접근할 게 아니라 이 문제를 해결해야 국가 전체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시선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TK 정치 지형이 호각세로 갈 것으로 내다봤다. 장 교수는 "PK에선 보수 중심 지형의 균열을 보이고 있고, TK에서도 점진적으로 균열이 나타날 것"이라며 "PK에선 민주당 의원들이나 단체장을 배출했고, TK에서도 김부겸 전 총리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례도 있다"고 했다.
이어 "민주당이 TK에서 영역을 넓혀가려면 우선 지역의 정체성을 인정해줘야 한다. 정치는 시장을 공략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상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매력있는 상품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궁극적으로 표를 얻기 위해선 지역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존중하고 인정해줘야 한다. 그리고 TK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산업 유치 등 디테일한 공약들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재훈
서울정치팀장 정재훈입니다. 대통령실과 국회 여당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장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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