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시대공감] 중국의 문화공격 인해전술

  •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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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17 06:00  |  발행일 2025-10-16
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 문화평론가

이번 추석 연휴 때 중국발 '문화도둑' 논란이 터졌다.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 측이 한국팬들에게 추석 인사를 한 것이 문제가 됐다. 중국 매체 '넷이즈'는 "맨체스터 시티는 한국인들에게 중추절 인사를 전하며 문화 도용을 거듭 조장했다"라며 "한국은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를 탐해 왔고, 이번에는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가 그들의 행동을 방조하기까지 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수의 중국 기업이 구단 스폰서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맨체스터 시티의 주요 시장 중 하나다", "중국 팬들은 이번 사태를 보고 등골이 오싹해졌다며 실망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제 국내 스폰서들이 분명한 입장을 밝힐 때가 됐다"라고 했다. 중국 기업들이 맨체스터 시티 후원사라는 점을 들어 압력을 가한 것이다.


요즘 중국 일부 누리꾼들은 동아시아 전통 명절 자체를 독점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올 초엔 설 논란이 있었다. 미국 디즈니랜드 측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Happy lunar new year)'라는 자막과 함께 한복 차림의 미키 마우스와 미니 마우스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올렸는데 중국 일부 누리꾼들이 설을 도둑맞았다며 반발한 것이다.


그들은 설을 '중국설'(Chinese New Year)이라고만 불러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설은 동아시아 태음력 문화권의 보편 명절이니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음력설'(lunar new year)이라는 중립적인 명칭으로 부르자고 하는데, 중국 일부 누리꾼들은 그게 한국의 문화도둑질이라고 강변한다.


2023년엔 영국 대영박물관이 한국 행사를 알리며 'Korean Lunar New Year'라는 표현을 썼는데 중국 누리꾼들이 'Chinese New Year'라고 쓰지 않았다고 공격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Lunar New Year'는 중립적인 표현이고 앞에 'Korean'이 들어간 건 이것이 한국 행사 홍보글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중국 누리꾼들은 공분했고 결국 대영박물관 측은 문제의 게시글을 삭제했다. 심지어 일부 중국인들이 해당 한국 행사장을 찾아가 항의피켓을 들고 서있었다고 한다.


단오 논란이 출발점이었다. 2005년에 한국 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는데 이를 두고 중국 명절 단오의 유네스코 등재를 막았다며 한국이 단오를 강탈했다고 했다. 그때부터 중국 일부 누리꾼과 매체들이 '한국은 문화도둑'이라는 주장을 하기 시작했고 김치, 한복, 삼계탕 등 우리 전통 문화 전반에 걸쳐 확대되고 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억지 주장이고, 오히려 중국 일부 누리꾼들의 행동이 문화강탈이다. 김치, 한복 등은 중국에 있지도 않은 전통인데 한국 것을 인위적으로 가져다 자기들 전통 문화라고 강변하기 때문이다. 명절의 기원은 연구자들이 따져볼 사안인데, 어쨌든 각 나라에서 오랫동안 향유해온 명절은 그 기원과 별개로 각 나라의 전통이 맞다.


문제는 일부 중국 누리꾼이 막대한 경제력과 인구를 앞세워 힘으로 밀어붙인다는 점이다. 스폰서 철회 압박, 불매 압박 등으로 위력시위를 하면 게시물을 삭제한 대영박물관처럼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많은 중국 누리꾼이 인터넷을 '한복은 중국 것, 한국은 문화도둑'이라는 식의 논리로 뒤덮으면 결국 그게 국제적 상식이 돼버릴 수도 있다. 그나마 한류가 중국의 문화공격에 맞서는 형국인데, 그렇게 한류의 세계적 영향력이 커질수록 한국 문화에 대한 중국의 질투심도 커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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