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주년 경찰의 날]기억의 통로와 마음을 잇는 경찰…대구 군위서 ‘법최면’ 개척자 이만우 경감

  • 구경모(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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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20 17:27  |  발행일 2025-10-20
강력계 형사에서 ‘기억을 수사하는 사람’으로
국내 법최면 1세대의 길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트라우마 넘어 진실을 잇는 기억의 통로
“진실은 과학이 밝히지만, 정의는 마음이 완성한다”
20일 오전 대구 군위경찰서에서 만난 이만우(57) 경감. 이 경감은 국내에 넷뿐인 법최면 슈퍼바이저 중 한 명으로, 국낸 법최면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구경모기자

20일 오전 대구 군위경찰서에서 만난 이만우(57) 경감. 이 경감은 국내에 넷뿐인 '법최면 슈퍼바이저' 중 한 명으로, 국낸 법최면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 구경모기자

20일 오전 대구 군위경찰서에서 만난 이만우(57) 경감이 법최면을 시연하고 있다. 구경모기자

20일 오전 대구 군위경찰서에서 만난 이만우(57) 경감이 법최면을 시연하고 있다. 구경모기자

"기억은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상처와 시간이 그것을 깊이 묻어둘 뿐이다."


20일 오전 대구 군위경찰서에서 만난 이만우(57) 경감은 1990년 입직해 올해로 35년 차를 맞은 '베테랑' 경찰이다. 현재 그에게 입혀진 옷은 국내에 단 4명뿐인 '법최면 슈퍼바이저'다. 강력계 형사로서 현장을 누비다 1996년부터 기억을 이어주는' 법최면 수사관'이 돼 막막한 수사에 파란불을 켜주고 있다.


이 경감은 "형사 시절 성폭력 피해자 조사 중 기억을 잃은 피해자를 마주했는데, 위로할 방법이 없었다. 그때 '기억을 되찾게 해줄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법최면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법최면 수사관으로 막 뛰어들었던 당시, 국내에선 최면 수사 기법이 막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만 해도 법최면은 과학수사라기보단 심리치료의 연장선으로 여겨졌다. 기억 증거를 찾아내기보단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돕는 보조 수단 정도로 인식됐다. 이후 체계적인 교육과 연구가 이어지며 오늘날 법최면은 당당히 수사기법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 경감을 비롯한 국내 '법최면 1세대' 수사관들의 집념이 그 기반을 만들었다.


이 경감은 "직접 발로 현장을 뛰어다니며 선배들과 함께 국내 현실에 맞는 '법최면 매뉴얼'을 다듬어 갔다. 피해자의 심리 안정, 기억 왜곡 방지를 위한 질문 기법, 최면 중 관찰 기록 방식 등 지금의 표준 절차들이 대부분 이 시기 만들어졌다"며 "당시엔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주말마다 직접 발품을 팔고 해외 자료를 구해나갔다. 잘못된 접근 하나가 피해자에게 2차 트라우마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며 하나씩 체계를 세워 나간 셈"이라고 회상했다.


그는 법최면을 '불안정한 기억의 통로를 다시 이어주는 작업'으로 정의했다. 그는 "최면은 '있다·없다'를 단정 짓는 게 아니라 기억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수사 방식이다"며 "특히 성폭력 사건이나 학대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일반 진술만으로는 증거 능력이 인정되기 어렵다. 법최면 역시 그 자체로는 증거가 아니지만 진술의 신뢰도를 높이고 수사 방향을 제시하는 '보강 증거'로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경감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한 해외 입양인이 최면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찾아 나선 사례였다. 당시 이 입양인은 최면 수사 과정에서 '나는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잃어버린 아이'라고 밝혔다. 최면 수사가 '사람'을 중심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기억을 회복하는 과정임을 입증한 결과물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부모가 자신을 버려 한국을 원망하던 그가 최면을 통해 무의식 속 기억을 되찾아 이를 바꿔 말했을 때, 이 일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삶을 회복시키는 일임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법최면을 비롯한 심리 기반 수사를 더 발전시켜 후배 수사관들이 이 분야에 관심을 갖길 바란다"며 "진실을 찾아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진실을 통해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경찰의 역할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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