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음식 만들기와 수필 쓰기

  • 전상준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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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0-27 06:00  |  발행일 2025-10-26
전상준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전상준 수필가·대구문인협회 부회장

"참 맛있다." 집사람이 음식을 같이 먹을 때마다 하는 말이다. 이것은 요렇게 먹고 저것은 조렇게 먹어야 한다며 먹는 방법까지 훈수 들며 맛깔나게 먹는다. 나는 '맛있다' 하는 말에 최면이 걸려 따라 먹다가 보면 밥그릇이 빈다.


집사람의 음식 만들기에는 철학이 있다. 우선 재료가 좋아야 한다.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 성의가 없이 만들면 재료가 좋아도 맛이 없다. 자기는 매번 정성을 다한다. 가족을 생각한다. 자신의 노력이 식구의 건강과 관계가 깊다. 성을 내거나 언짢은 기분을 가지면 안 된다. 여기에 먹을 것은 보기도 좋아야 한다나.


나는 수필을 쓴다. 집사람이 식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 듯 독자를 생각하며 글을 쓰는지 의심스럽다.


아내가 멀리 출타했다. 내가 직접 식사를 해결해야 한다. 기본 반찬이 냉장고에 있지만, 라면이 먹고 싶다. 라면 봉지 겉에 조리 방법이 있다. 설명대로 물을 붓고 시간을 재면서 끊인다. 냄새가 참 맛있다. 라면 맛이 냄새와는 달리 내 입에는 별로다. 원인이 어디 있을까. 봉지의 조리 안내를 다시 읽어본다. 과정이 크게 잘못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쓴 수필을 독자가 읽고 공감하지 않는다면 내가 끓인 라면 같다는 생각이다. 수필 쓰기 작법에 따라 소재를 찾아 구성하고 표현하고 퇴고까지 한 수필이 독자에게 아무런 울림을 주지 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하다.


음식을 직접 만들면 마음대로 영양가 있고 깨끗하게 할 수 있다. 재료를 다듬고, 배합하고, 불의 온도를 맞추고, 완성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정성도 함께 익어간다. 내 수필을 읽는 독자가 자기 내면의 깊은 바다를 경험하고, 영혼이 아름답게 익어가고 마음의 치유까지 얻는다면 얼마나 다행일까.


라면 맛이 왜 냄새처럼 맛깔스럽지 못할까. 거기에는 재료 준비에서부터 만드는 과정이 생략됐다. 내 손으로 한 일은 겨우 재료를 익히는 일부분이다. 배가 고프니 음식으로 배를 채워야겠다는 단순 논리만 있을 뿐이다. 만드는 과정과 맛, 영양에 대한 책임까지 업신여긴 결과다. 내 수필 쓰기가 아직 라면 조리하는 수준에 있지나 않은지 반성해본다. 음식 만들기와 수필 쓰기는 성실성과 진정성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서로 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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