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재진 작가. 197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해 199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작가세계 신인상 소설부문에도 당선됐다.
베스트셀러 시집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등으로 잘 알려진 김재진 시인.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도전한 계기는.
△김재진 시인·소설가=원래 문학에 뜻이 없었다. 영남대에서 첼로를 전공했다. 학부 시절 음악에 대한 좌절감을 느낄 때였다. 주변에서 김수복(전 단국대 총장), 장옥관(전 계명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등 고등학교 친구들이 먼저 문학을 하고 있었다. 그들과 동성로 전원다방에서 시화전을 열었다가 손님들 커피값이 외상으로 잔뜩 나왔다. 찻값을 갚기 위해 영남대 천마문화상과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동시에 응모했고, 당선됐다.
△김한숙 소설가=당선 시점은 이십대 후반이었다. 가족들의 결혼 압박 등 주변에서 현실적인 것만 강요해 소설가라는 타이틀이 절실했다. 대구 중앙시립도서관에서 거의 살았으니 말이다. 당시 영남일보가 가장 늦게 마감해 직접 들고 뛰어가 오후 6시 마감 직전에 접수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은 저에게 또 다른 인생의 탈출구였다. 지금도 캄캄하고 삭막한 우주에 첫발을 내디딘 닐 암스토롱처럼 느껴진다.
△김살로메 소설가=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아마추어로서 각종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신춘문예에 도전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제가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하던 연도가 2004년도였다. 중앙지 못지않은 최고의 상금을 내건 것을 보고, 좋은 작가를 배출하겠다는 신문사의 의지를 읽었다.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주저하지 않고 응모했다. 영남일보 신춘문예 출신이라는 자부심을 잊지 않고 있다.
△하기정 시인=신춘문예 등단은 습작기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수 있겠구나 하는 촉매 같은 것이다. 신인이라거나 신춘문예라는 말은 여전히 설렌다. 당시 함께 시를 공부한 동기들에게도 영남일보는 도전해보고 싶은 신문사 중 하나였다. 신춘문예 시상식을 마치고 다른 장르 당선자들과 예·본심 심사위원님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데, 당시 예심은 대구에서 활동하는 문인들께서 보셨다. 그래서 더 인상적이었고 문우가 참 도탑다는 생각을 했다.
1996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김한숙 소설가.
김한숙 소설가가 셰익스피어 생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 소설가는 올해 첫 소설집 '눈이 지나간 자리'를 펴냈다.
▶등단 이후 삶이나 창작 환경은 어떻게 바뀌었나.
△김재진=KBS 대구에서 PD로 일하다 서울로 직장을 옮겼다. 돌연 회사를 그만두면서 실업자가 됐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소설을 썼다. 기대와 달리 많이 팔리지 않았다. 다시 방송국에 들어갔다. 울산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책에 미친 도사'로 불리는 한 도매상 후배를 만났다. 시집 원고를 보여주니 "무조건 베스트셀러가 된다" 하더라. 민음사에서 영업부장으로 일하던 그의 친구에게도 원고를 보여줬다. 꼭 본인에게 달라며 신생 출판사를 차렸다. 그렇게 나온 시집이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다. 1997년 나온 시집 중 가장 많이 팔린 시집일 것이다.
△김한숙=작가 지망생일 때는 용기와 패기로 쓰지만, 등단하고 나면 노동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와 전업 작가로 살고 싶다는 욕망에 봉착한다. 유명해지지 않고서는 작가로 살기 힘든 현실이었고 특히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현실이 창작의 발목을 잡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려면 연간 500파운드와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 달 최소 200만원 이상의 수입이 있어야 하는데, 미래가 불안해 소설을 쓸 수가 없었다. 돈을 벌면서 글 쓰는 환경을 만들어갔고, 지금은 안착했다.
△김살로메=창작 환경이 바뀐 것은 없으나 글을 대하는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작가로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자기 확신 같은 것을 스스로에게 주문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다. 아시다시피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예술에 속하는 게 아니라 중노동에 속한다. 체력과 집필 의지가 동시에 발휘되어야 하는데 둘 다 쉬운 일이 아니다. 이 두 문제가 해결된다면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기정=생활이나 삶이 달라진 것은 없지만, 삶을 보는 방식과 인식을 문학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타자를 보는 방식이 문학적일 때의 좋은 점은, 모든 인간이 '이해 불가'에서 '이해 가능'으로 인식의 전이가 가능하다는 것이 문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소설이 구현하는 방식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시가 표현하는 상상의 확장 폭을 더 넓혀야 한다는 신념과 약간의 강박도 느꼈다. 습작기에서 창작기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200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으로 등단한 김살로메 소설가.
포항에서 활동 중인 김살로메 소설가. 최근 신간 소설집 '뜻밖의 카프카'를 펴냈다.
▶문단에 등단하고도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문인들이 많다.
△김재진=나는 문학을 통해 무엇을 얻겠다는 생각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이 아니다. 내 안에 도저히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질문이 있고, 그걸 글로 분출하는 것뿐이다. 신춘문예는 집 밖으로 나가는 문이다. 그 문을 열고 나가면 훨씬 거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그 속에서도 글을 쓰겠다는 확고한 자기 의지가 있어야 한다.
△김한숙=등단하고 2년쯤 지났을 때 서울로 상경했다. 30대 초반에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논술과 명작 읽기를 가르치는 등 프리랜서로 일했다. 출판사 원고 교열 등의 일을 병행하다 보니 20년이 흘러가버렸다. 펜데믹 당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을 바탕으로 '초4에서 중3까지 공부가 평생을 좌우한다' 책을 출간했다. 이후 춘천으로 거처를 옮겨 소설에만 몰두하려고 했지만, 작은도서관에서 '울프의 책상' 글쓰기 수업을 2년 진행하다 보니 첫 소설집이 너무 늦어지게 됐다.
△김살로메=꾸준히 쓰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쓰지 않으면 잊힐 수밖에 없다. 혼자 쓰기 힘들면 그룹을 만들어 숙제로 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열심히 쓰는 데도 발표 지면을 얻지 못해 사라지는 작가들도 있을 것이다. 배출되는 작가들에 비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하기정=글쓰는 사람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외부적으로는 시를 읽어주는 독자가 있으니까 그 힘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고, 내부적으로는 '문학은 포기할 수 없어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 외에는 특별한 원동력이 없다. 그래서 가장 두려운 것 또한, '만약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어떡하지' 하는 것이다.
2010년 영남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으로 등단한 하기정 시인.
하기정 시인이 자신의 시집에 사인을 하고 있다. 하 시인은 올해 첫 산문집 '건너가는 마음'을 펴냈다.
▶지역지 신춘문예 등단은 중앙지 신춘문예 등단에 비해 한계가 있다고들 하는데.
△김재진=중앙지와 지역지를 구분하곤 하는데,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중앙지 당선작과 지역지 당선작의 수준 차이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요즘은 신춘문예가 아닌 경로로도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나온다. 심사위원들의 취향 차이일 뿐이지, 일간지 신춘문예에 당선될 정도면 기본적인 필력이 갖춰져 있다.
△김한숙=한계를 느낀 적은 없다. 작품만 좋으면 된다고 본다. 어디로 등단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는 게 아니라 글을 쓸 조건과 환경이 안 되는 게 문제다. 좋은 작품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창작의 치열성과 성실성이 따라야 한다. 읽고 생각하고 쓰면서 꾸준히 자신의 세계관을 심화 확장할 때 좋은 작품이 나온다.
△김살로메=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아쉬운 상황들을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중앙지 출신 작가들에 비해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적다. 그것을 극복하고자 대부분의 지역지 출신 작가들은 다시 중앙지에 도전하거나 메이저급 출판사의 공모전에 문을 두드린다. 이런 현상에 대해 작가를 탓할 수는 없다. 쓰는 일을 하는 게 작가라지만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작품을 쓴다는 게 얼마나 힘 빠지는 일인가.
△하기정=등단하고 무척 기뻤지만, 기쁨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구별 짓기' 문화가 문단 곳곳에 있다. 소위 중앙문단, 지역문단, 이렇게 둘로 나누어지는 게 현실이었다. 그 사실을 실감한 건, 등단하면 보통 있는 원고 청탁이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이런 한계를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를 방해하니까 말이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김재진=이달 새 산문집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아침도 있단다'를 낸다. 제 나이가 이제 칠순이 넘었다. 어떻게 살아야겠다보다는 무엇을 어떻게 버리고 갈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런 고민들이 담겼다. 저자인 저뿐만 아니라 편집자의 끈기와 집념도 대단한 책이다.
△김한숙=올해 경북 산불로 고향 안동 본가가 전소됐다. 앞으로 자연을 소재로 문명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재난은 결국 인간으로부터 시작됐고 우리는 그 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오히려 현재의 고난이 삶을 직시하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연대하는 서사로 작품의 기본을 설정했다.
△김살로메=사람 사이의 관계망이 역사와 사건을 만날 때 어떻게 펼쳐지는지에 대한 관찰을 즐긴다. 해결 지점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오묘한 사람살이 자체가 소설이기 때문이다. 차기작으론 교양 소설이 포함된, 특별한 경험치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편을 구상하고 있다.
△하기정=시와 동화와 소설 사이, 형식이 없는 작품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각각의 장르가 표현할 수 없는 한계 없이, 독자층을 구분할 수 없는 작품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한다. 주제와 글쓰기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글=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사진=작가 본인 제공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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