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K 정신 찾는다] 류성룡 ‘貞’ 하나로 자기 수양·변화 견지

  • 구경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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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05 08:22  |  수정 2025-11-05 16:24  |  발행일 2025-11-05
<3>류성룡, 수신(修身)이란 불변(不變)으로 만변(萬變)에 응(應)하다
서애 류성룡 초상. 정부표준영정.

서애 류성룡 초상. 정부표준영정.

율곡 이이는 임진왜란 발발 전 조선의 실태를 두고 "나라의 형편이 고칠 수 없는 썩은 집과 같다. 1년을 버틸 양식도 없고 모든 것이 최악의 상황이다"라고 통탄했다. 이런 와중에 류성룡은 조선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꼽히는 임진왜란 7년 중 5년 동안 영의정으로서 국난을 헤쳐갔다. 이순신·권율 같은 인재들을 발탁했고 군제를 개편했으며, 명나라 등과의 협상을 주도하기도 했다. 공을 세운 이는 천민이라도 양반이 될 수 있도록 했고, 각종 세제 개편에 이어 사무역까지 허용하는 등 개혁가이자 행정가였고, 군사전략가이기도 했다.


심지어 명나라 군이 임진강으로 진격할 당시 명군 수만명과 군수물자를 이동할 부교를 발명했다는 평가도 있다. 훗날 미국의 역사학자 헐버트는 금속활자, 한글, 거북선과 더불어 류성룡의 부교를 한국의 4대 발명품으로 손꼽았다. 임진왜란이란 초유의 위기를 맞아 이같은 초인적 능력을 발휘한 류성룡의 힘과 역량의 원천은 무엇일까? 국내 석학들이 모여 류성룡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서애학회에서는 그의 정신세계에 주목하고 있다.


◆주역(周易)으로 대국(大局)의 기미(幾微)를 파악


정승안 동명대 교수는 뛰어난 도학자이자 경세가로서의 류성룡 리더십의 원천으로 '주역'을 꼽는다. 류성룡은 역경을 읽으면서 얻었던 깨달음의 순간과 탐구를 여러 글과 시에 남겨놓았으며, 주역 자체에 대한 연구와 메모는 '독역기의'와 '잡저'라는 책에 남기고 있다.


주역이 유가(儒家)와 선도(仙道)를 연결하는 수련법의 요지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류성룡이 학문과 깨달음을 추구하는 데 있어 주역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류성룡이 기미(幾微)와 조짐(兆朕)의 사회적 현상에 주목하고 이를 미래 예측을 위한 자료로 활용했다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류성룡의 주역에 대한 이해의 폭은 깊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류성룡은 일상에 대한 성찰을 통해 접하게 된 기미와 조짐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전란 발생의 징조를 예지하는 다양한 징후들에 대한 기록들이 그것이다. 더불어 주역점을 현실에 적용한 사례들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실제로 '징비록' 등에서 전란 직전과 직후 천문 현상과 꿈(경복궁 화재)을 불길한 징조로 기록하거나, 가족 안위나 전란의 향방 등을 점쳤다는 기록도 있다. 이는 단순 미신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심리적·전략적 도구로 내면 수련(정좌·호흡)과 결합돼 위기 속에서 판단력과 지속력을 키웠던 것으로 추측된다.


◆수신의 정치가 류성룡


서애학회 초대 회장인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는 기존의 류성룡 연구가 주로 외부로 드러난 사건, 정책, 행적 등에 초점을 맞춘 사회과학적 분석에 그쳤다고 본다. 이러한 연구는 류성룡의 언사, 정책, 전쟁 기록 등 '밖으로 드러난' 사실에 기반하며, 그의 외연(外延)과 표피(表皮)만 다루는 데 머물렀다는 비판이다.


이에 따라 백권호 서울종합과학대학원대학 석좌교수는 류성룡의 심층(深層) 세계를 탐구하기 위해 그가 남긴 시(詩)를 연구했다. 이를 통해 백 교수는 류성룡이 단전호흡과 같은 명상을 수련한 고도의 수련자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백 교수에 따르면 류성룡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참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로 자기 수련을 끌어 올린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실천하는 방법의 하나로 주역을 집중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격물치지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주역 공부를 완성한 것은 1588년경으로 사료된다.


백 교수는 "류성룡의 수신은 단순히 고전에 대한 독서를 기반으로 한 머리로 깊이 생각하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단전호흡을 통한 자기 몸 수련을 대동하고 있다"며 "류성룡은 죽는 날까지 시작(詩作)으로 자기가 수련을 통해 도달한 경지와 경험을 후세에 남기고 있다. 그 의미는 그가 깨달음에 도달한 이후 죽는 날까지 자신이 깨달은 수신의 경지를 완벽하게 유지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즉 류성룡은 임진왜란이란 초유의 국난을 수신이라는 불변의 원칙을 견지하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이라는 사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한 정치인이란 의미다. 이른바 주역에서 말하는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이다. 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변하지 않는 것은 만 번의 변화에 응한다'는 뜻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수천만 번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 변화에 기꺼이 응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곧을 정(貞) 하나를 마음에 품다


주역 계사전에서는 '吉凶者, 貞勝者也; 天地之道, 貞觀者也; 日月之道, 貞明者也. 天下之動, 貞夫一者也'(길흉자, 정승자야; 천지지도, 정관자야; 일월지도, 정명자야. 천하지동, 정부일자야: 길흉은 곧음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고, 천지의 도는 곧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며, 일월의 도는 곧음으로 밝힐 수 있는 것이니, 천하의 움직임은 저 곧음 하나다.)라고 했다. 정함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류성룡은 자신의 일생을 바쳐 곧을 정(貞) 하나를 마음에 품은 정치인이 나라의 흥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권력의 사유화 등으로 한 명의 대통령이 시해되고, 네 명의 전직 대통령이 수감되었으며, 두 명의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되는 등 부정부패가 끊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정치권에 경종을 울리는 대목이자, 영남일보가 작금에 류성룡을 소환한 이유다.


◆헌국사회 위기는 지도자들의 철학 부재


정치인의 자기 수양은 현대 리더십 이론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바로 '진성 리더십(authentic leadership)'과 '영성 리더십(spiritual leadership)' 이론이다.


진성 리더십은 리더의 내면적 진정성을 조직에 투영하는 리더십이다. 이는 '자아인식' '관계투명성' '균형 잡힌 정보 처리' '내면화된 도덕적 신념'을 포함한다. 특히 자아인식은 △자기 규제 △자기지식 △자긍심 △자아개념의 명료성으로 구성되며, 내면화된 도덕적 신념은 자기 내면의 도덕 기준을 통합한 자기 규제로 정의된다.


영성 리더십은 인간을 신체, 정신, 감정, 영혼으로 구성된 존재로 보고, △자아인식 △자기규제 △자기동기부여 △사회적 인식 △타인 연결 지원 그리고 '의식의 영성' '마음(mind)의 영성' '관계(connectedness)의 영성'으로 리더십이 구성된다고 봤다.


백 교수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가치관의 혼란과 사회도덕의 붕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며 "이는 국가와 사회 지도자급 인사들의 도덕 및 철학 부재와 그에 따른 절제와 배려 문화의 훼손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본성을 어질게 수련해 국난의 위기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멸사봉공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류성룡의 수신이야말로 국민적 역량을 결집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정신문화 인프라 구축의 한 가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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