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세탁 조직도<경북경찰청 제공>
–허위 법인·상품권 거래 위장… 525억 원 세탁 실체 드러나
지난 2월 경북 안동경찰서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을 피해자라고 소개한 50대 남성은 경찰에 "경제전문가가 안내한 투자에 참여했다가 5억4천700만원을 편취당했다"고 신고했다. 안동경찰은 1차 내사 후 범죄 규모와 구조가 심상치 않음을 확인한 후 곧바로 경북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로 사건을 이첩했다. 경북경찰은 통신기록·계좌흐름·법인자료·거래명세 등을 7개월간 추적한 끝에 해외에 거점을 둔 조직형 주식투자 리딩 사기단 41명을 검거하고 이 중 18명을 구속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사기단은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 사무실을 두고 국내에 허위 법인을 설립했으며, 친·인척 명의를 이용해 자금세탁용 계좌망을 구축했다. 이후 포털사이트 밴드와 메신저 앱을 활용해 '투자전문가' '기관 추천 종목' '내부 정보 제공' 등을 미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증권사 및 금융기관 명칭을 도용하고 가짜 수익률 화면과 자체 제작된 모조 투자 플랫폼을 통해 실제 투자가 이뤄지는 것처럼 조작했다.
사기단은 총책·관리·세탁 등 역할을 분담했으며, 조직폭력배 출신도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텔레그램 비공개 채널을 통해 상명하복식 보고 체계를 유지했고, 조직 내부 단계를 군대식으로 계급화했다. 수법은 매우 조직적이었다. 먼저 '유인책'이 투자자에게 송금을 유도하면 1차 '세탁책'이 개인 계좌로 받아 수표를 발행한 뒤 이를 2차 세탁책 계좌로 무통장 입금했다. 이후 일부 금액을 현금화하고 나머지는 3차 세탁책 계좌로 '물품 대금' 명목으로 송금했다. 마지막 단계에서 다시 현금화한 뒤 중간 관리책에게 전달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특히 서울 강동구 일대에 상품권 판매 법인 세 곳을 허위 설립한 뒤 세금계산서·물품인수증 등을 위조하는 방식으로 정상 매출이 존재하는 것처럼 속였다. 실물 상품권 거래는 전혀 없었고 범죄에 이용된 계좌만 100여 개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현재까지 총 254억원 상당이 세탁을 거쳐 해외 조직에 전달된 사실을 확인하고, 남은 범죄수익 흐름을 추적 중이다. 관련 계좌 동결과 범죄수익 환수 절차도 병행하고 있다.
경찰은 단순 리딩방 사기가 아닌 국제 자금세탁형 금융범죄 모델로 진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정상 투자라면 비대면 메신저 모집, 즉석 단체방 참여, 사설 사이트 접속을 요구하지 않는다"며 "고수익·원금보장·비공개정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피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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