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부산 기장 월내포구] ‘달뜨는 마을’ 월내의 시간… 방파제 너머 옛 이야기 넘실

  •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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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1-27 21:43  |  수정 2025-11-27 22:04  |  발행일 2025-11-27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는 부산의 동북쪽 끝자락, 고리원전 코앞에 위치한 마을이다. 기장9포 중 월내포로 월내방파제는 낚시꾼들에게 파라다이스로 불린다.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는 부산의 동북쪽 끝자락, 고리원전 코앞에 위치한 마을이다. 기장9포 중 월내포로 월내방파제는 낚시꾼들에게 파라다이스로 불린다.

물량장이 휑하니 넓다. 번듯한 어촌계사무실 건물에 '여기는 월내마을 오일장터'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장날, 너른 물량장은 장터겠다. 흐린 눈으로 가만 보니 2·7일 장이고 어이쿠, 개장이 새벽 4시부터다. 월내장은 딸과 친정엄마가 만나고 사돈 간 정을 쌓는 장이라는 말이 있다. 별나게 높은 해안방파제 아래에 긴긴 캐노피 쉼터가 장날을 기다린다. 어부의 아내이자 엄마의 딸은 덕장 건조대에 멸치를 부려 펼쳐놓고 기지개를 켠다. 새하얀 잔멸치가 소복소복 눈 같다. 볕 좋은 평상 모서리에는 고양이가 누워 자고, 네다섯씩 무리지은 젊은이들이 쉼터에 모여 어슬렁어슬렁 커피를 마신다. 평일 정오 무렵 월내포구의 풍경이다.


옛 포구 자리는 물량장이자 장터다. 해안방파제 아래에 캐노피 쉼터가 넉넉히 길다. 벽에 영화 친구 우리 형 등의 스틸 컷이 걸려있다.

옛 포구 자리는 물량장이자 장터다. 해안방파제 아래에 캐노피 쉼터가 넉넉히 길다. 벽에 영화 '친구' '우리 형' 등의 스틸 컷이 걸려있다.

옹벽 너머 바다 가운데 놓여 있는 사각형 콘크리트 더미는 타이셀 공법이라는 해양신기술이 적용된 회파블록 방파제다. 월파량을 10분의 1이하로 떨어뜨린다.

옹벽 너머 바다 가운데 놓여 있는 사각형 콘크리트 더미는 '타이셀 공법'이라는 해양신기술이 적용된 '회파블록' 방파제다. 월파량을 10분의 1이하로 떨어뜨린다.

덕장의 뽀얀 멸치가 빛과 바람 속에 있다. 월내포구의 특산물은 다시마, 미역, 젓갈, 멸치다. 월내 멸치 후리는 소리가 전해질 만큼 멸치가 으뜸이라 한다.

덕장의 뽀얀 멸치가 빛과 바람 속에 있다. 월내포구의 특산물은 다시마, 미역, 젓갈, 멸치다. '월내 멸치 후리는 소리'가 전해질 만큼 멸치가 으뜸이라 한다.

◆ 월내포구


기장군 장안읍 월내리는 부산의 동북쪽 끝자락, 고리원전 코앞에 위치한 마을이다. '기장9포'라는 말이 있다. 오래전부터 포구 많은 도시 기장을 상징하는 말이다. 현재는 17개의 어항이 있고,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랐지만 실제 19세기 초 읍지에 가을포, 공수포, 무지포, 이을포, 기포, 동백포, 독이포, 월내포, 화사을포, 이렇게 9포가 기록되어 있다. 월내리(月內里)는 월내포(月來浦)였다. 마을 북동쪽 월내천 옆에 언제부터인가 이름 없는 큰 못이 풀숲에 덮여 있었는데, 달이 뜨면 호수에서 달이 솟는듯하여 월호(月湖)라 하다가 고종 때 '달이 동리 안에서 뜬다'고 '월내'라 불렀다고 한다. 또 다르게 '월(月)'은 경주의 옛 이름인 월성처럼 울타리 또는 성(城)을 의미하고, '래(來)'는 서라벌의 라(羅)처럼 마을을 의미해 '성책(城柵)을 가진 마을'이라는 해석도 있다. 동해 남부 포구의 역사를 생각하면 후자에 무게가 실리지만 '달뜨는 마을 월내'가 훨씬 맘에 든다.


예전에는 아주 작은 포구가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건설된 동해남부선이 마을 바로 뒤로 지나가는데, 월내역에 내려 오솔길을 따라가면 장터가 있었고 다시 바다로 난 오솔길 끝에 포구가 있었다고 한다. 장터가 옛 포구 자리다. 방파제에 영화 '친구' '우리 형' 등의 스틸 컷이 걸려있다. 여기서 촬영했다는 자랑이다. 지금 내항은 남방파제와 북방파제로 둘러싸여 있고 큼직하다. 항구 파출소 벽면에 2003년 9월 태풍 매미 때 홍수위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거의 허벅지까지다. 월내포구 앞바다에는 테트라포드가 아주 많고 아주 길다. 하지만 즐비한 테트라포드가 무색하게도 이곳은 2016년까지 태풍과 해일로 물바다가 되곤 했다고 한다. 지금은 제법 안심할 수 있다. 해안 방파제가 별나게 높은 이유도 있지만, 옹벽 너머 바다 가운데 놓여 있는 사각형 콘크리트 더미 덕분이라 한다.


'유주'라는 우리나라 기업이 개발한 저 더미는 '타이셀 공법'이라는 해양신기술이 적용된 '회파블록' 방파제라 한다. 공법은 차치하고, 저 녀석은 파도와 부딪쳤을 때 생기는 에너지를 반대 방향으로 전환시켜 주면서 넘어오는 파도의 양을 10분의 1이하로 떨어뜨린다. 2018년 태풍 콩레이 때 회파블록은 제 능력을 증명했다. 지금은 전국 방방곡곡 해안 40여 곳에서 유주가 만든 방파제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쿠웨이트 등 외국과도 협의 중이고 미국 러시아 등 60여 개국에 특허 출원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높은 방파제에 우뚝 서서 월내포구를 본다. 내항 모서리에 웅크리고 앉아 낚시하는 어르신은 내내 낚싯대를 까딱이시고 어구를 갈무리하는 부부는 손발이 척척이다.


북방파제 너머는 해안선 따라 계단식 축대가 물결친다. 원전이 들어오기 전 월내에서 길천까지 해안선은 전부 모래였다. 게다가 아주 유명한 해수욕장이었다.

북방파제 너머는 해안선 따라 계단식 축대가 물결친다. 원전이 들어오기 전 월내에서 길천까지 해안선은 전부 모래였다. 게다가 아주 유명한 해수욕장이었다.

월내 어린이 공원의 비석군. 왼쪽부터 3기가 보부상 배상기를 기리는 것이다. 그는 월내에서 멸치잡이와 젓갈로 억만금을 벌어들여 정승처럼 썼다.

월내 어린이 공원의 비석군. 왼쪽부터 3기가 보부상 배상기를 기리는 것이다. 그는 월내에서 멸치잡이와 젓갈로 억만금을 벌어들여 정승처럼 썼다.

장안천의 월내철교. 동해선 철도의 단선 교량으로 복선화 때 철거하지 않은 유일한 철교라 한다. 철교 너머로 KTX-이음 열차가 번쩍 쌩하니 지나가버린다.

장안천의 월내철교. 동해선 철도의 단선 교량으로 복선화 때 철거하지 않은 유일한 철교라 한다. 철교 너머로 KTX-이음 열차가 번쩍 쌩하니 지나가버린다.

◆ 모래 많던 바닷가 장안천 하구


북방파제 너머는 해안선 따라 계단식 축대가 물결친다. 낚시꾼도 있고 물멍꾼도 있다. 그 뒤편은 잔디밭이고, 산책로고, 주차장이고, 월내해안길이고, 그리고 길 따라 다양한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마을 북쪽 끝에서 장안천(長安川)이 바다로 흘러든다. 장안천의 옛 이름이 월내천이다. 천 너머 그야말로 고리의 코끝에 딱 붙어있는 마을은 길천리다. 원전이 들어오기 전 월내에서 길천까지 해안선은 전부 모래였다. 게다가 아주 유명한 해수욕장이었다. 장안천 하구도 모래밭으로 막혀 월내와 길천이 연결되었고, 가끔은 모래 위로 갯골이 흐르기도 했다. 월내해수욕장은 고리원전이 들어서면서 폐쇄되었고, 그때 임랑해수욕장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월천교가 월내해안길과 길천길을 연결한다. 월천교가 놓였을 때에도 다리 아래는 모래였다. 지금 장안천 하구는 아주 넓고 매우 깊어 보이고, 동해의 얕은 파도가 다리아래를 무시로 통과해 차르르 차르르 장안천을 흔든다. 천을 따라 거슬러 올라 본다. 길가 작은 오석에 호안도로 일부를 고리원전에서 놓았다고 새겨져 있다. 천은 점점 좁아진다. 해맞이로에서 월내교가 월내와 길천을 연결한다. 그 너머로 월내철교가 보인다. 동해선 철도의 단선 교량으로 1935년 개시, 2019년에 폐쇄된 철교다. 월내철교는 동해선 복선화 때 철거하지 않은 유일한 철교라 한다. 지금은 철교건너 장안천 따라 야구장, 풋살장,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도로가에 소나무 숲이 보인다. 75그루 가량의 어마어마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데 커다란 입석에 '월내 어린이 공원'라 새겨져 있다. 옛날에는 이 앞까지 모래밭이었을까. 공원입구에 4기의 비석이 조르르 서 있다. 그 중 3기가 한 사람 이름이다. 배상기(裵常起). 고관대작도 아니고 유명인사도 아닌 그는 약 백여 년 전 보부상 우두머리였다. 그는 월내에서 멸치잡이와 젓갈로 억만금을 벌어들여 정승처럼 썼다. 빈민을 구제하고 장학 사업에 앞장섰으며 흉년에는 장날마다 시장에 가마솥을 내걸고 굶주린 사람들을 구휼했다. 그의 억만금은 일제 강점기 독립 자금으로도 흘러들어갔다. 그는 1920년 79세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묘소는 기장군 장안읍 용소리 시명산에 있고 지금 '월내 어린이 공원'에는 무료 급식소가 있다고 한다.


공원 주변으로 시가지가 복작복작하다. 초밥집도 있고 태권도 학원, 영어 학원도 눈에 띤다. 월내교 건너 길천리에는 월내초등학교와 유치원도 있다. 원전이 들어서고, 새로운 큰 포구가 생기고, 길이 닦이고, 다양한 식당들이 줄줄이 생겨나고, 원전과 관련된 업종들이 들어오고, 외부인들이 유입되고, 태풍이 오고, 태풍을 막고, 모래밭이 사라지고, 그렇게 수십 년 동안 월내에 달이 뜨고 해가 떴다. 이제 월내리는 장안읍사무소가 있는 좌천리보다 시가지가 더 크다. 월내철교 너머로 복선전철화 된 동해남부선 철도가 슬쩍 보인다. 저 철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가면 꽤나 으리으리한 월내역이 있다. 부산권 전철역 가운데 바다와 가장 가까운 역이다. KTX-이음 열차가 번쩍 쌩하니 지나가버린다. 너무 빨라서 꽁무니만 겨우 잡았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55번 대구부산고속도로 부산방향으로 가다 밀양분기점에서 함양울산고속도로 울산 방향으로 간다. 울주분기점에서 65번 동해고속도로 해운대방향으로 가다 장안IC에서 내려 직진, 동남권방사선의과학 일반산업단지 안으로 약 1.4㎞ 직진하다 임랑 방면으로 우회전, 약 150m 직진 후 좌회전해 직진하면 해맞이로에 오르게 된다. 좌회전(북향)해 약 2㎞정도 가면 월내리다. 장안천 건너기 전에 우회전하면 월내리 해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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