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현 기술보증기금 고객부장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내는 변화는 어느 한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조, 금융, 의료, 교육, 행정 등 모든 영역에 AI가 스며들며 일의 방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기술이 삶을 더욱 편리하게 만들어 주리라 기대하지만, 동시에 "AI가 채운 공간만큼 인간이 비워진 자리는 무엇으로 메울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산업혁명을 떠올려보자. 증기기관과 기계가 인력을 대체하던 시절,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두려움은 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기계공업, 운송, 유통, 도시 서비스업 등 새로운 산업이 등장했고, 산업의 다양성이 사라진 일자리를 흡수하며 사회의 균형이 회복됐다.
그러나 AI 혁명은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 단순 노동에 그치지 않고, 사무, 분석, 번역, 회계, 디자인, 글쓰기 등 두뇌와 창의 영역까지 자동화가 확장되고 있다. 이번에는 손발이 아니라 머리, 판단, 경험, 직관의 일부까지 기계에 넘겨주는 것이다. "새로운 산업이 곧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것"이라는 과거의 낙관은 이제 변화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인공지능 기본법을 비교적 빠르게 제정하여 제도적 틀을 갖추기 시작했다. 기술의 발전 방향과 신뢰의 원칙을 법에 담아내는 것은 중요한 진전이다. 하지만 법이 시행됐다고 해서 AI로 인해 사라지는 자리가 저절로 채워지지 않는다. 어떤 일자리가 사라지고, 누가 새로운 일에 진입할지에 대한 구체적 그림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AI의 특징은 분명하다. 이익은 집중되지만 충격은 분산된다. 인프라와 데이터를 보유한 소수 기업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반면, 자동화의 부담은 중소기업, 자영업자, 지역 노동자에게 고루 전가된다. 기술의 진보는 빠르지만, 교육·전환·사회안전망 구축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 간극이 커질수록 혁신의 성과는 일부의 성공이 아닌 다수의 불안으로 남게 된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만이 아니라,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다리'다. 사라지는 직무에서 새로운 일로 건너갈 수 있도록 평생학습과 재교육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돌봄, 상담, 교육, 문화·관광 기획, 지역 문제 해결 같은 영역에서 인간의 역할을 확장하는 상상력도 중요하다. "AI 때문에 일이 줄어든다"는 인식이 아니라, "AI 덕분에 사람이 할 일의 밀도가 달라진다"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식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전환을 뒷받침할 재원과 제도가 갖추어져야 한다. AI와 데이터가 창출한 초과이익의 일부를 모아 전환 교육·재취업·사회적경제·청년 일자리에 투입하는 'AI 대응기금' 같은 장치가 요구된다. 기술로 인해 기존 일자리를 모두 복구할 수는 없지만, 기술이 만들어낸 부를 통해 새로운 기회와 안전망은 충분히 설계할 수 있다.
AI가 채운 공간에는 줄어든 노동시간과 증가한 기업이익이라는 두 얼굴이 있다. 남겨진 시간을 불안으로 채울 것인지, 아니면 배움·돌봄·관계·사유의 시간으로 전환할지는 사회의 선택에 달렸다. 동시에, AI로 번 이익을 어떻게 공정하게 나누고, 줄어든 노동시간을 모두가 누릴 권리로 만들 것인지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AI는 결국 소수를 위한 도구로 남을 것이다. 줄어든 노동시간을 삶의 여유로 전환하고, AI가 창출한 부를 사회의 기회로 되돌릴 때, 우리는 AI 시대를 두려움이 아닌 가능성의 시대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TK큐]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장애인 이동권은 어디까지 왔나](https://www.yeongnam.com/mnt/file_m/202511/news-m.v1.20251128.d24ad28e5cae4d2788a23ae2d86f4b82_P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