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동부지역본부 차장
철강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K-스틸법이 지난달 27일 국회를 통과했다. 글로벌 탄소 규제라는 새로운 파고 앞에서 한국 철강이 다시 뛸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는 점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법안의 취지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실효성'이다. 정작 업계가 가장 절실하게 호소하던 산업용 전기료 문제는 빠졌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구멍이 많다. 이쯤 되면 '눈가리고 아웅'이란 말이 떠오른다.
사실 철강 산업은 이미 '풍전등화'의 위기 속을 걸어왔다. 중국의 과잉 생산, 글로벌 수요 둔화, 미국발 고율 관세라는 삼중고가 겹치며 채산성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까지 본격 시행되면서, 탄소가 경쟁력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번 K스틸법은 바로 이러한 구조 변화를 고려해 만들어진 법이다.
법안의 구조를 보면 방향성은 정확하다.
첫째, 수소환원제철 등 저탄소 공정 전환과 R&D를 국가가 전면 지원한다. 이는 탄소중립 시대를 대비한 필수 전략이다. 둘째, 포항을 '저탄소철강특구'로 지정할 수 있어 대규모 설비투자 유치가 가능해진다. 지역 경제와 기업 생태계를 함께 살리는 종합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셋째, 공공조달 우선구매를 통해 지역 철강업체의 판로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넷째, 산업 재편 과정에서 세제·행정 지원을 확대해 고용 충격을 최소화하도록 했다. 다섯째, 전력·용수·수소 등 기반시설을 국가계획에 반영하도록 의무화해 장기 투자의 불확실성을 낮췄다.
문제는 '산업용 전기료'다. 이번 법에서 가장 민감한 조항이자 업계가 절박하게 요구한 내용이었지만, 결국 제외됐다. 전기로 비중이 높은 중견·중소 제강사에게 전력비는 원가의 30~4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CBAM 대응을 위한 저탄소 공정 전환이 이루어질수록 전력 수요는 더 커진다. 그런데 전기료 부담을 완화할 장치는 없다. 이는 마치 이솝우화의 '바람과 태양'에서 바람이 아무리 세게 불어도 외투는 벗겨지지 않는 것과 같다. 전환을 독려하지만, 이를 가능하게 할 에너지 환경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한 것이다.
전기료를 빼고 탄소중립만 강조하는 정책은 결국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될 위험이 크다. 탄소 감축의 속도를 높이다 못해 오히려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럽과 일본 등 주요 생산국은 이미 에너지 집약 산업에 대한 별도 전력정책을 운영하며 비용 부담을 조절하고 있다. 한국만 예외가 되면 국내 철강이 글로벌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전기료 직접 지원이 재정 부담과 형평성 논란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산업 생태계 전체를 놓고 보면 '경중완급(轻重缓急)', 즉 무엇이 급하고 무엇이 무거운지를 가려야 한다. 탄소중립은 중요한 국가 목표지만, 경쟁력 회복이 뒷받침되지 않는 탄소정책은 결국 탁상행정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한국 철강은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에너지 가격 현실, 국제 규범 변화, 글로벌 경쟁 환경을 모두 아우른 종합 전략이 필요하다. K스틸법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전기료 문제라는 핵심 축이 빠진 이상 여전히 '반쪽짜리 법'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시행령과 후속 정책에서 이를 얼마나 보완하느냐가 향후 10년 한국 철강의 경쟁력을 가를 것이다.
김기태 동부지역본부 차장
김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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