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상덕 국립경주박물관이 특별전에 전시되고 있는 6점의 신라 금관마다의 독특한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지난 11일 오전 8시 30분. 경주시 국립경주박물관 정문 앞에는 추운 날씨에도 수십명의 인파가 긴 줄을 서 있다. 이들은 전 세계에 단 6점 뿐인 '신라금관'을 관람하려는 사람들이다. 9시 30분부터 관람이 시작되지만 미리 입장권을 받으려고 기다리는 것이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금관 특별전'은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와 국립경주박물관 개관 80주년을 기념해 신라의 우수한 문화 유산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시작됐다. 하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반응이 나타났다. 신라금관의 아름다움이 입소문을 타며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애당초 일반인 공개는 12월 14일 종료 예정이었지만 폭발적 인기에 내년 2월 22일까지 72일간 추가 연장됐다.
교동 금관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황남대총 북분 금관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고고학자들도 꿈꿨던 특별전
올해 관람객 600만명을 돌파한 국립중앙박물관 만큼 핫한 곳이 바로 국립경주박물관이다. 지난 2월 17일 국립경주박물관장으로 임명된 윤상덕 관장은 매일 매일이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는 "요즘처럼 국립경주박물관이 세계인의 사랑을 받은 적이 있나 싶다"며 "내국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람객 비중도 크게 늘었다"고 했다. 이어 "신라금관을 보고 탄성을 지르는 것은 기본, 인생샷을 찍었다고 기뻐는 분들도 쉽게 볼 수 있다"고 놀라워 했다. 이를 반영하듯 경주박물관의 관람객도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경주박물관 관람객 수는 127만 명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11월 기준 173만 여명으로 37%가 급증했다.
경주박물관은 최근 관람객 입장 방식도 변경했다. 윤 관장은 "신라금관 특별전이 일반에 처음 공개된 첫날인 지난 11월 2일 수천 명의 관람객이 한꺼번에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며 "관람객 안전을 고려해 다음날(3일)부터 관람방식을 회차별(30분 단위) 150명씩 입장시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현재 경주박물관은 하루 2천550명으로 관람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윤 관장에게 신라금관 특별전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국립박물관 고고학전공 직원들이 꿈꾸는 것 중 하나가 6점의 신라 금관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라며 "그만큼 신라금관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 어렵다. 아마 APEC 정상회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신라금관은 전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귀한 유물이라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 박물관에서 전시 요청이 쇄도한다. 윤 관장은 "신라금관은 다른 박물관 등에서 전시한 후 돌아오면 반듯이 이상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 일정 기간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신라금관은 항상 전시 일정이 꽉 차 있다"고 설명했다.
윤 관장은 신라금관을 매우 특별하게 생각한다. 단순한 황금 장신구가 아니라 고대 왕의 권력과 신성을 드러내는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신라금관에서 나뭇가지 모양의 세움 장식은 천상과 지상을 잇는 신성한 나무를 형상화한다"며 "사슴뿔은 신성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새 모양 장식은 초월적 권능을 상징한다"고 했다. 또 "곱은 옥과 다양한 달개는 생명력과 영원성을, 황금빛은 절대 권력과 부를 나타낸다"며 "이처럼 금관은 신라가 세운 세계관과 정체성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윤 관장은 설명했다.
신라금관을 다른 측면으로 이야기하면 신분 제도를 의미한다. 윤 관장은 "신분에 따른 장신구의 규정이 확실하게 있었던 것 같다"며 "발굴을 해보면 금관을 쓴 사람은 반드시 금으로 장식된 허리띠를 차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동관을 쓴 사람은 은제 허리띠를 차고 있다. 그런 게 틀린 적이 없는 걸로 볼 때 신분 제도를 상징하는 것"이라며 "금관과 은관 뿐만 아니라 금동관도 있는데, 이런 것들이 신라가 고대 국가를 형성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증거"라고 말했다.
금관총 금관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서봉총 금관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신라금관에 스며 있는 천년의 스토리
신라금관은 순금(24K)으로 제작됐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윤 관장은 "강도를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금·은 합금(약 19~21K)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여섯 점의 신라금관은 제각각의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또 발굴 당시의 사연도 다양하다. 교동 금관(5세기, 높이 12.8cm)은 무게 50.4g(20.1K)으로 6점의 금관 중 가장 작으면서도 가장 오래된 신라 금관으로 평가되고 있다. 윤 관장은 "교동 금관은 '도굴품'이란 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며 "1969년 경주 교동에서 도굴된 후 1972년 이를 팔려던 도굴꾼이 체포되며, 세상에 알려졌다"고 말했다.
반면 1973년 발굴된 천마총 금관은 6개 신라금관 중 가장 크고, 화려하다. 무게만 1,262.6g(19.9k)에 달한다. 금관뿐만 아니라 허리띠, 큰 칼, 팔찌, 반지 등 각종 금 장신구가 함께 발굴됐다. 윤 관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 기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한 것도 가장 화려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1973~1975년 발굴된 황남대총 북본 금관은 왕비의 금관이다. 특이한 점은 다른 금관에는 볼 수 없는 굵은 고리로 장식된 화려한 드리개(금관에 부착한 금 장식품) 3쌍 달려 있다. 무게도 1,062g(20.7k)에 달한다. 금관총 금관(20.5k, 무게 692g)은 1921년 가옥공사 중 발견됐다. 여기서도 금관 뿐만 아니라, 금귀걸이, 목걸이, 금제허리띠 등이 출토됐다. 이 외에도 금으로만 만들어진 금령총 금관(19.9k, 무게 356.4g)과 옥과 금으로 치장된 서봉총 금관(19.3k, 무게 803.3g)도 화려함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신라금관은 생전(生前) 왕 재위시절 사용한 것일까, 사후(死後) 만들어진 장례용품일까. 이에 대해 윤 관장은 "학계는 지금도 의견으로 갈린다"고 했다. 그는 "장례용품이란 의견은 금관이 출토될 때 얼굴을 가리고 있는 형태로 발견되기 때문"이라며 "반면에 평상시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행사 등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윤 관장은 개인적 의견을 전제로 왕이 재위시절 사용한 장식품이란 가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는 "신라금관에 은을 첨가해 강도를 높여 똑바로 세우도록 했다"며 "실제 서봉총 금관은 머리에 착용하기 위해 모자 같은 구조물이 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6점의 금관이 어느 왕의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학계의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천마총 금관이 지증왕의 것이란 이야기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다. 다만 금관이 만들어졌던 시기를 마립간(麻立干·신라 전기 왕호)시대라 하는데, 황남대총은 왕의 무덤이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 신라에 유독 황금 문화재가 많은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윤 관장은 "신라의 금속 공예 기술이 굉장히 뛰어났기 때문"이라며 "금관뿐만 아니라 귀걸이, 허리띠 등 화려하고, 다양한 금장신구를 많이 볼 수 있다"고 했다. 또 신라는 외국 문화에 개방적이었다. 그는 "신라 무덤을 발굴하면 서아시아로부터 수입한 물건들도 나온다. 신라는 외국 문화를 흡수해 자기화 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다"고 했다. 실제, 기와의 맨 앞에 있는 신라 와당(新羅瓦當)의 경우 고구려, 백제에서 신라로 전해졌는데 신라는 두 나라의 특징을 융합해 신라만의 스타일로 재탄생 시켰다.
금령총 금관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천마총 금관 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금관 만큼 소중한 신라의 유물들
경주박물관에는 몇 점의 유물이 있을까. 윤 관장은 "약 30여만점"이라고 했다. 그는 "10년 전 13만 점 정도였으니, 10년 간 17만 점 정도가 늘어난 것이고, 지금도 매년 1만 점 이상의 경주 유물이 박물관으로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관장은 경주박물관에는 신라 금관 만큼 아름답고 소중한 보물들이 많다고 했다. 그 중 3가지를 알려달라고 했더니, '성덕대왕 신종(에밀레종)'과 천년의 미소로 알려진 '얼굴무늬 수막새'(인면문 수막새), 국보 제38호 '고선사지 삼층석탑'을 꼽았다.
그는 "성덕대왕 신종은 세 가지 측면에서 뛰어난 문화재"라며 "전 세계 어떤 종에도 없는 표면의 아름다운 문양이 있다"고 했다. 이어 "아름다운 소리이다. 범종의 소리는 부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며 "조선시대 세종실록에는 종을 치면 100리를 간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윤 관장은 "마지막으로 종 표면에 누가, 왜, 언제 만들었는지를 상세히 기록한 1천여 자의 한자가 적혀 있다"며 "그래서 성덕대왕 신종이 771년 만들어졌다는 것을 후대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선사지에서 옮겨온 석탑도 꼭 봐야할 신라 유물이다. 윤 관장은 "신라는 원래 나무 탑을 만들었으나 돌탑으로 바꾸었다. 고선사지 삼층석탑은 초기 양식의 석탑"이라며 "쌍탑이 있고, 그 다음이 고선사지 석탑이다. 세 석탑이 아주 똑같이 생겼다"고 했다. '얼굴무늬 수막새(보물 제2010호)는 신라 시대 기와 유물로 그 미소는 모나리자에 버금갈 만큼 아름답다고 했다.
신라금관 특별전이 끝나면 6점 중 2점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1점은 청주박물관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 때문에 경주시민들은 최근 신라금관 본향(本鄕)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에 대한 윤 관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6점 모두 경주박물관에 있다면 장점도 있겠지만 신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인지에 대해선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이어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 가장 인기 있는 전시실이 금관실이다. 그 자리에 신라금관이 있다면 그 또한 신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더 많은 관람객들에게 신라의 아름다움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윤 관장은 경주와 신라는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 같은 대학원에서 신라 토기와 무덤 등 신라고고학을 전공했다.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경주박물관에서 학예연구사로 5년간 근무했다. 특히 2013년 신라의 문화와 예술을 주제로, 미국 메트로폴리탄에서 '황금의 나라, 신라(Silla: Korea's Golden Kingdom)' 특별전을 성공시킨 장본인이다. 윤 관장이 그동안 발표한 주요 논문과 보고서 대부분이 신라토기, 계림로 14호묘, 보문동 합장분, 금관총 등 신라 문화에 집중되어 있다.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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