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전태일 ⑤] 두 달여 연습·공연에 고작 70만원…열정마저 꺾는 고용불안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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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5-12-24 17:29  |  발행일 2025-12-24
⑤ 뮤지컬 앙상블 배우
주연보다 훨씬 많은 안무 소화
쏟는 시간에 비해 초라한 대가
경상권 예술인들 환경 더 가혹
1~2월 비수기 불안감 더해져
무대 끊길까 아파도 연습 참여
공연 중 다쳐도 산재보험 소외
얼마 전 뮤지컬 앙상블로 첫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는 김희영 배우는 두 달여 간의 연습에 무대에 오른 대가로 손에 쥐게 된 출연료가 70만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얼마 전 뮤지컬 앙상블로 첫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는 김희영 배우는 두 달여 간의 연습에 무대에 오른 대가로 손에 쥐게 된 출연료가 70만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화려한 뮤지컬 무대를 채우는 앙상블 배우들의 현실은 스포트라이트만큼 밝지 않다. 군무와 합창으로 뮤지컬 완성도를 높이는 그들은 다음 무대를 기약할 수 없는 '고용 불안'과 녹록지 않은 현실의 '열악한 페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며 고군분투한다.


◆'연습 페이' 없고 예술 활동만으로 생활 어려워


올해 초 연극뮤지컬과를 졸업한 20대 여배우 김희영(24)씨는 열정 하나로 뮤지컬의 길에 뛰어들었지만, 그의 일상은 박수보다 불안이 앞선다.


김씨는 얼마 전 뮤지컬 앙상블로 첫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대학 졸업 후 뮤지컬 프로 무대에 처음 오른 기쁨이 컸지만 허탈함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이 작품으로 손에 쥐는 출연료는 70만원에 불과했다. 두 달 넘게 공연을 준비하고 무대에 선 대가 치고는 인색하다. 그마저도 공연이 끝난 후에야 지급된다.


뮤지컬 앙상블로 무대에 서는 김희영 배우가 공연에 앞서 연습을 하고 있다. <김희영 배우 제공>

뮤지컬 앙상블로 무대에 서는 김희영 배우가 공연에 앞서 연습을 하고 있다. <김희영 배우 제공>

뮤지컬 배우에게 연습도 노동이지만 노동의 대가인 '연습 페이'는 거의 허락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김씨는 "월급제가 아니라 공연 후 페이가 들어오기 때문에 다른 작품이나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생계가 유지된다"면서 "앙상블은 주연들만큼 무대에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주연보다 더 많은 춤을 소화하고 안무를 맞추는 데 엄청난 시간을 쏟는데 그 대가가 그에 비해 박하기는 하다"고 씁쓸해했다.


뮤지컬 배우를 포함한 예술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통계 수치로도 확인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예술인의 예술창작활동 수입은 연평균 1천55만원에 불과했다. 전체 예술인의 예술 관련 교육활동 수입은 연평균 949만원, 비예술활동을 통한 수입은 연평균 2천13만원이었다. 이는 예술 활동만으로 생활이 불가능한 열악한 현실을 시사한다. 겸업 예술인 비율은 47.5%로 나타났으며, 고용형태는 '일용직/파트타임/시간제'가 36.8%로 가장 높았다. 예술인 경력 단절의 압도적인 1순위 사유도 '수입 부족'(65.5%)이었다.


생계 유지를 위해 한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앙상블 배우 김희영씨. <김희영 배우 제공>

생계 유지를 위해 한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앙상블 배우 김희영씨. <김희영 배우 제공>

경상권 예술인들의 경우 환경이 더 가혹하다. 이들의 예술창작활동 수입은 연평균 710만원에 그쳤다. 한 달에 60만원도 안 되는 수입을 예술창작활동으로 벌어들인다는 말이다. 반면 경상권 예술인의 예술 관련 교육활동 수입은 연평균 1천243만원, 비예술활동을 통한 수입 연평균 2천311만원으로 전국 평균보다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그렇다면 김씨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까. 김씨는 구미에서 열리는 아동극에 출연하며 생활비를 마련하고 있다. 차량은 제공되지만 구미까지 이동해야 하고, 작품이 바뀌면 연습도 해야 한다. 새 작품을 위한 무대 세트 설치도 직접 해야 한다. 하지만 출연료는 고작 회당 3만2천원. 지난 10월만 해도 주말에는 2회 공연을 했는데, 관객이 줄면서 지난달 들어서는 1회 공연으로 줄어 수입에도 덩달아 타격이 생겼다. 김씨는 "이전에 놀이공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시급제여서 좋았는데 회당 출연료만 받다 보니 페이가 낮다. 그래도 어린이 관객들 앞에서 공연하는 게 즐겁고 무대에 올라 뭐든 배우고 이력도 쌓을 수 있어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 예술인 실태조사 중 전체 예술인의 예술활동 개인 수입.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 예술인 실태조사' 중 전체 예술인의 예술활동 개인 수입.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 예술인 실태조사 중 예술활동 경력단절 경험 및 이유.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 예술인 실태조사' 중 예술활동 경력단절 경험 및 이유.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다행히 LH 청년 임대주택에 거주해 월세가 5만원이라는 김씨. 보증금을 최대로 넣어 월세 부담을 극도로 낮췄기에 그나마 버틸 수 있다. 하지만 주거비를 제외하고도 노래 레슨비(월 28만원)와 시간당 5천~1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개인 연습 공간 대여료 등 배우로서 능력을 쌓아가는 데 필요한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다음 작품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불안감이 가장 힘들다는 김씨는 "연습에도 일정 부분 페이가 지급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했다. 이어 "대구의 경우 오디션 체계가 부족하고 인맥을 통해 캐스팅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신인들이 기회를 잡기 쉽지 않다"며 "이런 부분이 보완되고, 지역 예술인을 위한 저렴한 대여료의 연습 공간도 지원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7년 차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이정민씨는 일감의 편중이 배우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7년 차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이정민씨는 일감의 편중이 배우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7년차 베테랑도 일감 편중에 힘겨워


지역 무대에서 7년 차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이정민(30)씨는 경력이 쌓여도 제자리걸음인 출연료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앙상블과 조연급을 넘나들며 무대에 서지만, 오히려 경력이 있는 배우에게는 '이 출연료로 하겠냐'는 선입견 때문에 출연 의뢰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는 숙련된 배우들을 답답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로 지적된다.


수도권에서 뮤지컬 연기과를 졸업한 뒤 녹록지 않은 서울 생활을 접고 대구로 내려온 이씨가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일감의 편중'이다. 그는 "작품이 꾸준하지 못하고 바쁠 때는 몰리고 안 바쁠 때는 일감이 끊기는 극심한 불규칙성 때문에 '과연 이 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계속 이어진다"고 토로했다. 특히 가을에는 가장 많은 작품이 몰리는 반면, 1~2월은 일거리가 없는 비수기로 꼽힌다.


수입이 작품 단위로 지급되는 불규칙적인 구조 탓에, 대다수 배우들은 다작(多作)을 선택하거나 불가피하게 아르바이트로 내몰린다. 이씨 역시 생계 유지를 위해 학교 뮤지컬 강사나 클라이밍 강사를 병행하는 실정이다.


7년 차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이정민씨는 일감의 편중이 배우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7년 차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인 이정민씨는 일감의 편중이 배우로 활동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토로했다. 박주희기자 jh@yeongnam.com

사회 안전망의 취약성은 배우들을 짓누르는 또 다른 무게다. 프리랜서 신분인 배우들은 4대 보험 적용이 쉽지 않으며, 몸을 쓰는 직업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공연 중 발생한 업무상 상해에 대해 산재보험 혜택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아 대다수가 보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예술인 사회보험 가입률은 '건강보험' 98.2%, '공적연금' 59.5%, '고용보험' 29.2%, '산재보험' 23.5%로 집계됐다. 예술인 고용보험에 대한 인지도도 낮았으며, 업무 중 상해를 경험한 예술인의 85.2%가 치료비를 본인이 부담(보상을 받지 못함)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씨는 "계약서를 쓸 때 페이와 업무상 상해에 따른 후속 처리 등 노동 환경에 대한 명확한 명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항상 다음 무대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몸이 아파도 연습을 하러 가는 배우가 있고, 캐스팅 제의를 거절하지 못하다가 번아웃이 오는 경우도 있다. 또 남자 배우에 비해 여자 배우들이 더 많기도 해 지역에서 여배우로 설 자리를 찾는 것은 남자 배우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에 오를 때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생업으로 하면서 좋아하는 일을 취미의 영역에 두는 이들도 있잖아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니까 행복하죠. 무대에 올라 활동하는 게 좋으니까 그래도 계속해야죠."


꿈을 좇는 열정과 냉혹한 생계의 무게 사이, 뮤지컬 앙상블 배우의 고단한 줄타기는 오늘도 계속된다.


뮤지컬 독립군 아리랑 무대에 오른 이정민 배우. 무대에 함께 오른 앙상블 배우들의 처우는 노동의 대가에 비해 열악하기만 하다. <이정민 배우 제공>

뮤지컬 '독립군 아리랑' 무대에 오른 이정민 배우. 무대에 함께 오른 앙상블 배우들의 처우는 노동의 대가에 비해 열악하기만 하다. <이정민 배우 제공>


[전문가 제언]

"'연습 페이' 명문화하고 사회 안정망 확충해야"

이동수 대명공연예술단체연합회장

이동수 대명공연예술단체연합회장

전문가들은 지역 예술계의 열악한 노동 환경의 핵심 원인으로 '표준계약서의 형식화'와 '연습 노동의 가치 부정'을 꼽는다.


뮤지컬 제작 관행상 출연료에 연습 페이가 포함된 것으로 간주하지만, 사실상 공연 회차당 페이로 계산하면 수개월의 연습기간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무보수 노동' 기간이 된다. 실제로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예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계약 체결시 겪은 '부당한 경험'(복수 응답) 1·2위는 '불공정한 계약조건이나 계약조건과 다른 활동 강요'(63%)와 '적정한 수익배분의 거부·지연·제한'(38.3%)이었다.


이동수 대명공연예술단체연합회장은 "현재 지역 뮤지컬 현장은 표준계약서 도입에도 불구하고 제작비 부족으로 인해 앙상블 배우들에게 지급해야 할 최소한의 '연습 페이'조차 실종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지방 공연시장은 작품 편수 자체가 적은 데다 지자체의 지원금마저 10년째 제자리걸음이라 무대·음향 등 하드웨어 비용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게 현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습 페이를 주고 싶어도 줄 수 없는 구조 속에 배우들이 생계를 위해 알바하다 다쳐오는 모습을 볼 때면 선배로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뮤지컬을 비롯한 공연계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지원 규모 현실화가 예술 생태계 선순환을 위한 최우선 과제라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건물을 짓는 하드웨어 조성 위주의 문화 행정에서 벗어나, 창작자의 인건비가 보장될 수 있도록 지원금 단가를 상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관객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마중물 정책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회장은 "순수 예술은 지원금 없이 버티기 힘들지만, 관객 없는 공연은 예술가에게 더 큰 고통"이라며 "과거 '티켓 1+1 지원 정책'처럼 관객들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끄는 실효성 있는 관객 창출 정책이 뒷받침돼야 그나마 자생적인 공연 산업 구조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뮤지컬 배우를 비롯한 예술인이 먹고 자고 만드는 '주거 기반 창작 거점'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는 이미 SH공사를 통해 '배우마을' 등 예술인 전용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며 주거와 창작을 결합했다. 부산 영도구 역시 지난 2018년부터 도시재생 사업과 연계해 예술가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정주하며 창작 활동을 펼치는 '주거형 창작 거점'을 구축해왔다.


임언미 대구문화 편집장은 "타 시도는 이미 예술인 전용 레지던스나 저렴한 임대주택 등 예술인의 민생고 해결을 위한 다양한 지원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서 "대구도 대구예술발전소의 모델을 확장해 저렴한 비용으로 뮤지컬 배우를 비롯한 예술인들이 머물며 창작과 실험을 반복할 수 있는 '주거형 창작 공간'이 절실하다. 이를 통해 예술가들이 이웃 사촌이 돼 자연스럽게 협업하는 환경, 그것이 일회성의 보조금보다 훨씬 강력한 예술적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예술인 복지 전문가들 사이에서 장기적으로는 프랑스의 '엥테르미탕' 모델처럼 공연이 없는 연습 기간이나 대기 기간에도 국가가 최소한의 생활을 보전해 주는 사회 안전망 도입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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