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에도 멈추지 않는 훈련’…예천서 국가대표 후보 동계합숙 막바지

  • 장석원
  • |
  • 입력 2026-01-25 17:38  |  발행일 2026-01-25
지난 23일 예천육상실내훈련장에서 국가대표 후보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막바지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지난 23일 예천육상실내훈련장에서 국가대표 후보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막바지 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영하의 한파주의보도 트랙 위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살을 에는 듯한 찬 공기가 훈련장을 감싼 지난 23일 오전, 예천 육상실내훈련장에는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와 함께 하얀 숨결이 번졌다.


출발선 앞에 선 선수들은 고개를 숙여 스타트 자세를 가다듬었고, 트랙 위에는 짧고 날카로운 동작이 반복됐다. 국가대표 후보·청소년·꿈나무 단거리 등 100여 명의 선수들이 예천스타디움과 육상교육훈련센터에서 동계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다. 25일까지 이어지는 합숙훈련이 종반에 접어들었지만 선수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하다.


한파주의보가 내려진 날씨에도 불구, 훈련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파란 트랙 위에서는 허벅지에 저항 밴드를 감은 선수들이 낮은 자세로 첫 발을 떼는 훈련을 이어갔다. 전력 질주 대신, 스타트 반응과 초기 가속 구간을 다듬는 짧은 반복 동작이 중심이다. 몇 미터를 나아가고 멈추는 과정이 수차례 반복됐고, 선수들은 한 발을 디딜 때마다 발끝에 시선을 모았다. 동계훈련이 마무리단계에 접어든 만큼 강도보다 완성도에 초점을 둔 모습이다.


지난 23일 전북 익산 이리공고 최진엽 감독이 원반던지기 김나현 선수의 투척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지난 23일 전북 익산 이리공고 최진엽 감독이 원반던지기 김나현 선수의 투척 훈련을 지도하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지난 23일 예천 육상실내훈련장 트랙 한편에서 포환 선수들이 투척 연습을 하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지난 23일 예천 육상실내훈련장 트랙 한편에서 포환 선수들이 투척 연습을 하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트랙 한편에서는 허들을 일정 간격으로 배치한 민첩성 훈련이 진행됐다. 선수들은 보폭을 조절하며 리듬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지도자들은 박자를 놓치지 말라는 손짓으로 훈련을 이끌었다.


다른 공간에서는 원반과 포환이 바닥에 놓인 채 투척 훈련이 이어졌다. 원 안에 선 선수는 몇 차례 회전 동작을 반복하며 균형을 점검했고, 코치의 시선은 발끝과 회전 각도에 고정돼 있었다.


훈련장을 둘러보는 지도자의 시선도 시간이 흐를수록 세밀해지고 있다. 김경출 국가대표 후보 감독(포항 이동고 교사)은 선수들의 발 디딤과 상체 각도를 직접 짚어가며 동작을 조정했다. 김 감독은 "이번 동계훈련은 기초체력과 코어운동 위주로 진행되고 있다"며 "훈련 강도도 중요하지만, 이 시기에는 부상 없이 훈련을 마무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은 각자 소속팀으로 복귀한다.


지난 23일 예천육상실내훈련장 물리치료실에서 선수들이 재활 트레이너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지난 23일 예천육상실내훈련장 물리치료실에서 선수들이 재활 트레이너로부터 치료를 받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실내훈련장의 한쪽 벽면을 따라서는 회복 장면이 이어졌다. 매트 위에 누운 선수들은 폼롤러로 근육을 풀거나 아이싱을 받으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물리치료실에서는 재활 트레이너들이 스트레칭과 치료를 병행하며 선수들의 컨디션을 점검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 대구체고 우인체 선수는 "예전에는 훈련이 끝나면 외부 병의원을 찾아야 했는데, 지금은 훈련장 안에서 바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예천 육상실내훈련장에서 부산 연제구청 소속 장대높이뛰기 진민섭 선수(왼쪽)가 동료 후배와 저항 장비를 착용하고 스타트 반응과 초기 가속 동작을 정밀하게 다듬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지난 23일 예천 육상실내훈련장에서 부산 연제구청 소속 장대높이뛰기 진민섭 선수(왼쪽)가 동료 후배와 저항 장비를 착용하고 스타트 반응과 초기 가속 동작을 정밀하게 다듬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훈련 후반부, 선수들이 트랙을 따라 단체 러닝에 나섰다.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호흡을 맞추는 모습은, 치열했던 초반 훈련과 달리 올 시즌을 준비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줬다. 국가대표 후보 서예림(100m)은 "훈련량은 줄었지만 동작 하나하나에 더 집중하게 된다"며 "여기에 훈련장과 숙소가 가까워 회복 시간이 충분한 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찬바람 맞으며 아스팔트 뛰던 시절은 옛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육상의 겨울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전용 실내 훈련장이 전무했던 시절, 선수들은 영하의 혹한 속에서도 두꺼운 패딩을 입고 노천 트랙이나 아스팔트 위를 달렸다.


대구육상연맹의 한 임원진은 "예전엔 겨울만 되면 눈을 치워가며 훈련하거나, 마땅한 장소가 없어 학교 강당을 전전해야 했다"며 "기온이 낮아 근육이 굳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힘을 쓰다 보니 햄스트링이나 발목 부상을 입는 유망주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회상했다.


지도자의 경험과 감(感)에만 의존하던 '재래식 훈련'도 한계가 명확했다. 과학적 분석 장비는커녕 부상 시 즉각적인 처치를 받을 물리치료 시설조차 없어, 선수들은 통증을 참고 뛰다 선수 생명을 단축하기도 했다.'과학', '데이터' 는 야구, 축구를 비롯한 대부분의 스포츠 종목에 핵심으로 떠올랐지만 국내 육상에선 남의 나라 얘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예천의 인프라는 이런 '육상 잔혹사'를 끊어냈다. 365일 상온이 유지되는 실내 트랙은 근육 수축을 막아 부상 위험을 획기적으로 낮췄고, 훈련장 바로 옆 물리치료실은 부상의 전조를 잡아내는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


부산 연제구청 소속 장대높이뛰기 국가대표 진민섭 선수는 "과거엔 환경적 제약 때문에 겨울 훈련의 흐름이 끊기기 일쑤였지만, 이곳에선 오직 기록 단축에만 몰입할 수 있는 '몰입의 환경'이 조성돼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예천을 동계훈련지로 찾고 있는 최진엽 익산 이리공고 감독은 "눈이나 비, 바람이 불어도 실내에서 훈련 흐름이 끊기지 않는 점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초창기에는 한 달 계획으로 왔지만, 최근에는 두 달간 훈련할 만큼 환경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지난 6일 대한육상연맹 국가대표 후보·청소년·꿈나무 단거리 선수단 106명이 예천육상실내훈련장에서 동계합숙 훈련에 앞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지난 6일 대한육상연맹 국가대표 후보·청소년·꿈나무 단거리 선수단 106명이 예천육상실내훈련장에서 동계합숙 훈련에 앞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장석원기자 history@yeongnam.com

◆ 인구 5만 예천, 육상인 5만 품다…스포츠 마케팅 효과 '톡톡'


예천군이 육상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명확하다. 인구 5만 명의 소도시가 생존하기 위해 '스포츠 산업'을 선택한 것이다. 예천은 2023년 육상교육훈련센터를 개관하며 훈련·교육·숙박·재활이 한곳에서 이뤄지는 '원스톱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는 아시아에서도 보기 드문 인프라다.


그 결과는 수치로 나타난다. 연간 800여 개 팀, 연인원 5만 명 이상의 육상인이 예천을 찾는다. 이들이 지역 식당과 숙박업소에서 소비하는 직접 경제 효과만 연간 100억 원에 달한다.


이정대 대구육상연맹 전무는 "하계·동계 훈련 때 육상 선수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놀랐다. 엘리트들이 대관 없이 예약만 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더욱 좋다"고 말했다.


최인해 대한육상연맹 부회장은 "예천 육상 시설은 단순한 지방 체육시설을 넘어 한국 육상의 새로운 심장부"라며 "아시아 육상의 허브로 성장할 충분한 기반을 갖췄다"고 자신했다.



기자 이미지

장석원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와 다양한 영상·사진 등 제보 부탁드립니다.
기사 전체보기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

영남일보TV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