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을 필두로 광역 행정통합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인구 소멸과 일극체제 극복을 위해 자생력을 갖추겠다는 취지는 너무나도 당연하다. 정부 역시 이를 '국가 생존 전략'으로 규정하며 파격적인 재정 지원과 권한 이양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논의가 심화될수록 본질인 '지역 생존'은 뒷전으로 밀리고, 그 자리를 '정치적 셈법'이 채우고 있다.
특히 6·3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추진되는 행정통합은 자칫 "특정 정치인의 선거용 포석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 충분하다. 행정통합은 백년대계(百年大計)여야 함에도 당장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추진 동력이 흔들리거나 방향이 왜곡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대구경북 시도민들은 행정통합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잘 알고 있다. 지난 2020년, 2024년 두 차례의 실패에서 보듯 행정통합은 이해 당사자 간 합의를 이끌어 내기 매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지역민들은 행정통합에는 대부분 찬성한다. 다만 주민 중심의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대구가 생각하는 통합과 경북이 생각하는 통합에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행정통합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까. 이 부분 역시 논란이다. 마치 '완벽한 설계도를 먼저 그리자'는 입장과 '일단 배를 띄우고 항해하며 보수하자'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것 같다. 필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주저 없이 '선(先)통합·후(後)보완'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골든타임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행정통합은 단순히 지도를 합치는 작업이 아니다. 중앙정부로부터 강력한 권한을 이양받고 대형 국책 사업을 유치하는 정치·경제적 모멘텀이다. 모든 세부적인 이해관계를 조정하다 보면 논의는 공전하고, 그 사이 지역의 경쟁력은 증발한다. 중앙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일 때가 최적의 기회인 셈이다. 인구 감소와 경제 침체 속도는 행정 절차보다 빠르다. '완벽'을 기다리다 '소멸'을 먼저 맞게 될 수 있다.
또 현장의 문제는 현장에 있을 때 보인다. 아무리 행정통합에 대한 수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막상 시작하면 예상 못한 변수가 발생한다. 통합 후 발생하는 실제 행정 수요와 주민 불편은 통합 체제를 운영해봐야 정확히 파악된다. 통합 전의 약속은 족쇄지만 통합 후의 보완은 진화가 된다. 현장의 목소리를 즉각 반영해 조례를 개정하고, 제도를 다듬는 것이 가장 현실적 방안이다.
갈등 관리의 전략적 접근도 필요하다. 모든 보상안과 이해관계를 사전에 완벽히 조율하려는 시도는 자칫 '나눠먹기식' 타협으로 변질 수 있다. 이는 통합의 본래 목적인 '효율성'을 저해한다. 큰 틀의 합의가 우선이다. 지역 발전이란 대의명분 아래 먼저 통합한 뒤, 세부적인 지엽말단적 갈등은 통합 지방정부의 강력한 거버넌스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 갈등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골든타임이 짧을수록 완벽함보다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행정통합은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쉼표다. '선(先)통합·후(後)보완' 전략은 결코 무책임한 추진이 아니다. 오히려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골든타임 속에서 지역의 생존 가능성을 하루라도 빨리 확보하려는 가장 현실적이고 책임감 있는 선택이다.
태풍이 코 앞까지 다가왔는데, 완벽한 설계도를 기다리면 집을 지을 수 없다. 기초를 튼튼히 다지고 기둥을 세운 뒤, 살아가며 쓸모에 맞게 고쳐나가는 지혜가 지금 우리에겐 필요하다.
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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