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진 소설가
1464년 2월13일 김일손이 태어났다. 그는 불과 34세이던 1498년 연산군에게 무참히 처형당했다. 그가 죽을 때 고향 시냇물[溪]이 사흘이나 붉게[紫] 변했다. 그 뒤 경북 청도에 자계(紫溪)서원이라는 이름이 태어났다.
송시열은 김일손을 평해 "중국에서도 '동국(東國)의 한유'로 칭송되는 분인데 불행히도 연산군을 만나 처형의 화를 입었다. 그 일을 말할 때면 기가 막히고 목이 메지 않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한유는 '한자'로 우러름 받는 역사의 인물이다. 공구는 공자, 맹가는 맹자, 순황은 순자, 장주는 장자, 묵적은 묵자로 불리지만 한비는 한유에 밀려 '한자' 아닌 '한비자'가 되었다. 퇴고(推敲)도 당나라 시인 가도가 '推'와 '敲'를 놓고 고심하다가 한유의 조언으로 '敲'를 택한 일화에서 생겨났다.
시는 읽지 않고 무오사화 이야기만 하면 '동국의 한유'에 대한 결례이다. 노모 봉양 문제로 귀향하며 쓴 '도한강(渡漢江)'을 읽는다. "말 한 마리 한강을 느릿느릿 건널 때에/ 물결 따라 꽃잎 흐르고 버들은 찡그리네/ 미천한 신하 지금 가면 돌아올 기약 없어라/ 고개 돌려 남산을 보니 봄은 이미 저물었구나"
김일손이 귀경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도 한국문학사에도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왕조시대에는 주거 이전의 자유가 없었다. "모든 국민은 거주·이전의 자유를 가진다"를 헌법에 담고 있는 까닭에 대한'제'국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다.
김일손은 지리산을 유람하며 '두류시(頭流詩)'도 지었다. "푸른 물결 넘실넘실 노 소리 부드럽고/ 옷깃 스치는 맑은 바람 가을처럼 서늘하다/ 고개 돌려 다시 보니 그 모습 참 아름다워라/ 한가한 구름 한 점 흔적도 없이 산을 넘네"
구름이 산을 넘어간다 하니 파주의 자운(紫雲)서원이 떠오른다. 이율곡을 섬기는 곳으로, 자계서원과 글자 하나만 다르다. 그러나 노을 빛을 받은 구름의 붉은 여운과, 핏빛 시냇물의 붉은 잔혹은 전혀 다른 실존이다.
박목월의 "머언 산 청운사/ 낡은 기와집// 산은 자하산/ 봄눈 녹으면// 느릅나무/ 속잎 피어나는 열두 굽이를// 청노루/ 맑은 눈에// 도는/ 구름"에 나오는 자하산(紫霞山)의 은은한 붉은 빛과도 다르다. 자하산은 평안남도에 실제 존재하는 산이지만 박목월은 자작시 해설에서 "상상 속의 산"이라 했다.
자계서원은 '별유천지 비인간'의 상상이 아니라 '인간의 비인간화'를 증언하는 현실 공간이다. 역사(歷史)를 지나간[歷] 기록[史]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 김일손은 "겉으로는 지금 것, 마음으로는 옛 것을 따른다"고 했다. 외금내고(外今內古)의 균형잡힌 인식은 극단이 난무하는 오늘날에도 특히 유효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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