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탈시설, 개인 공간에 대한 욕망 반영.<게티이미지뱅크>
거주 공간 확보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요구사항이다. 거주지는 가장 안전한 곳이고, 휴식을 취하면서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다. 하지만 시설 입소 장애인에게 거주 공간은 때론 억압의 수단으로 작용한다. 이들이 받는 구조적인 편견 해소와 거주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사회적 과제다. 그 고민은 끊임없이 해야 한다.
지난 27일 동대구역에서 만난 임재원(36)씨가 자신의 탈시설 경험담을 이야기 하고 있다. 김현목 기자
◆삶의 결정권, 자신이 가져야
"시설에선 내가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27일 동대구역에서 만난 임재원(36)씨는 시설에서의 생활을 덤덤하게 전했다. 선천적으로 근육병 장애를 가진 임씨는 9살 때 장애인거주시설에 입소했다가 22살 대학 진학을 계기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현재 지역 자립생활센터에서 일하며 독립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임씨에 따르면 그가 거주했던 시설의 한 방에는 18~20명이 거주했다. 시설이 이전한 뒤 거실과 방 3개로 변경됐지만 개인 공간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임씨는 "누워 있으면 서로 몸이 붙을 정도였다. 개인 공간, TV 시청 등 사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했다.
일상은 철저히 통제됐다고 한다. 식사 시간은 오전 7시, 낮 12시, 오후 5시로 고정됐고 야식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취침 시간도 밤 10시로, 소등은 일괄적으로 이뤄졌다. 외출은 자유롭지 않았다. 최소 일주일 전부터 계획서를 제출하고 이동 경로와 시간도 일일이 보고해야 했다.
임씨가 해당 시설에 들어간 건 교육 때문이었다. 일반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시설 인근 특수학교에 다니기 위해 입소를 결정했다. 하지만 시설 내 여러 학년이 한 공간에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학교에 다니게 된 뒤에도 오전 수업만 진행됐다. 따로 공부를 해야 했지만 사적 공간이 없어 학업에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시설 내 인권침해도 임씨를 힘들게 했다. 그는 "말을 듣지 않으면 밥을 굶기거나 벌을 주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문제를 인지한 후 자신이 직접 신고해 관련 직원을 퇴사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시설 관리 직원들의 따돌림이었다.
시설을 나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나가서 뭘 할 수 있겠냐"며 시설 직원들이 두려움과 편견을 심어주는 경우가 많아서다. 초기엔 '시설에 남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많았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자유였다. 현재 그는 활동지원 서비스를 통해 도움을 받으며 혼자 자취 생활을 한다. 그는 "시설에 있었던 것은 해당 시설이 좋아서가 아니라, 밖에서 살 수 있는 조건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지금은 삶을 제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게 가장 만족스럽다"고 했다.
시설 장애인들의 불만족.<이미지(김현목)=생성형AI>
◆수치로 드러난 시설 장애인들의 욕망 억제
임씨와 같은 사적 거주 공간에 대한 욕구 제한은 구조적 문제와 연결돼 있다. 2022년 발간된 '대구시 탈시설 욕구조사 보고서'를 보면 장애인들의 주거와 삶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지역 장애인 등록수는 2021년말 기준 12만7천282명이고, 이 중 중증은 4만6천676명이다. 장애인거주시설은 51개소, 거주자는 1천381명이다. 보고서에 인용된 조사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입소자 67.9%는 비자발적으로 입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스스로 선택해 입소한 경우는 14.3%에 불과했다.
시설은 장기 거주 공간에 가깝다. 입소 기간을 보면 10~20년 미만(35.8%)이 가장 많았고, 30년 이상도 30.2%에 달했다. 10년 미만은 17.6%에 머물렀다.
생활환경은 집단 거주 형태에 맞춰 짜여 있다. 3~5명이 한 방을 쓰는 경우가 52.4%로 가장 많았고, 6명 이상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도 36.1%에 달했다. 사생활 보호나 독립적인 생활을 보장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설 생활은 단순한 주거 제공을 넘어 일상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식사시간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75.4%였다. '기상·취침 시간을 선택하지 못한다'는 응답도 55.0%다. '외출이 자유롭지 않다'고 응답한 비율도 38.9%였다. 결국 집단 주거시설은 사회로부터 분리되는 공간이라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시설 거주 장애인 중 '탈시설 장애인을 만나고 싶다'는 응답은 59.7%, '자립생활 관련 정보를 원한다'는 응답은 69.8%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장애인의 지역사회 정착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사회적 인식'이 지목됐다. 주민들 시선과 편견(32.6%)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해서다.
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전근배 사무국장은 "자립지원정책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 및 가족 의견이 충분히 수렴 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며 "동거인 유형도 나 혼자서 살고 싶다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오는 등 장애인이 독립적 삶을 추구하는 바람이 확인됐다"고 했다.
장애인 탈시설 가로막는 구조적 카르텔
대구대 조한진 교수(사회복지학과).
대구대 조한진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장애인 탈시설이 어려운 이유는 지역사회 인프라 부족과 이해관계가 맞물린 구조적 장벽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중증이나 발달 장애인의 경우, 지역사회에서 '안전'과 '돌봄'에 대한 우려가 컸다. 조 교수는 "걱정은 충분히 타당하다"면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를 설계해주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시설 종사자 인식과 사회 전반 편견도 탈시설을 막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일부에선 장애인의 지역사회 생활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본다. 장애인을 불편한 존재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조 교수는 "결국 부모, 시설 종사자, 정부, 지역사회가 각자 이유로 현 체계를 유지하려는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한마디로 격리 중심 정책이 유지되는 구조"라며 이를 '암묵적 카르텔'로 표현했다.
비용 구조도 왜곡될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 재정이 여전히 시설 유지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서다. 시설이 저비용으로 운영되면서 상대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인식도 형성돼 있다. 조 교수는 "정책 방향이 탈시설로 충분히 전환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라고 말했다.
이에 시설 중심 예산을 지역사회로 전환하고 장애인 일상을 지원하는 맞춤형 서비스와 지역 자원을 연계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부모의 불안을 줄이기 위한 지속적 지원과 설득도 이뤄져야 한다. 부모 사후를 대비, 재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신탁 제도 활성화도 과제다.
조 교수는 "탈시설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게 핵심"이라며 "지금은 격리에 머물러 있지만 이제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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