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지역예술대표단체'로 선정된 정길무용단의 김현태(48) 대표는 '대구의 정체성'을 주제로 세 편의 작품을 시리즈로 선보인다. 사진은 1~2일 열리는 시인 이육사를 다룬 1부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 공연 모습. <대구문화예술회관 제공>
"대구에서 태어나 자랐고, 여기서 쭉 춤을 춰왔습니다. 이제는 후배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대구 예술 발전에 조금이나마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2026 지역예술대표단체'로 선정된 정길무용단의 김현태(48) 대표가 인터뷰에서 처음 던진 말이다.
계명대 무용학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이번 사업을 통해 대구문화예술회관과 협업으로 '대구의 정체성'을 담은 세 편의 작품을 시리즈로 선보인다.
그 첫 작품이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육사의 삶과 정신을 녹여낸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로, 1~2일 아양아트센터 아양홀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어두운 감옥서 겪었을 시인의 고통…처절한 독무로 표현"
한 단체서 봉사활동하다 이육사 발자취 발견
"대구형무소서 글 썼던 시인의 고통 반추하길"
대구 시인들 이야기로 확장…무용계 미래도 다뤄
처용무 이수자로서 특유의 호흡법 춤에 반영돼 표현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지역예술대표단체'로 선정된 정길무용단 김현태 대표는 "후배들이 마음껏 춤출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정수민기자
왜 하필 이육사였을까. 김 대표가 그를 주목하게 된 것은 한 단체에서 펼친 봉사활동이 계기가 됐다.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에서 활동하던 어느 날, 시인의 치열했던 삶을 새로운 시각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특히 시인이 대구형무소에서 모진 고문 속에도 글을 썼다는 사실이 김 대표의 가슴을 파고들었고, 이를 무대 위에서 대중에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는 "시인이 왜 그토록 오래 갇혀 있어야 했는지, 무엇이 그를 그토록 치열하게 만들었는지 반추하며 그의 숭고한 정신을 떠올렸다"며 "그의 강인한 의지를 춤이라는 몸짓으로 형상화했다"고 전했다.
이러한 탐색은 대구의 다른 시인들로 확장됐다. 대구의 '현재'를 살아가는 시인들을 들여다보는 '시인은 날개 달린 가벼운 존재'를 거쳐, 지역 무용계의 '미래'를 조망하는 3부 '이어지다'(가제)로 시리즈의 마침표를 찍을 예정이다. 과거,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서사를 완성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난 1일 막을 올린 1부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는 대구의 '과거'를 상징한다. 2024년 초연 이후 세 번째로 무대에 올리는 이번 작품은 총 5장에 걸쳐 이육사의 고뇌와 시(詩) 세계를 펼쳐낸다. 이번 무대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1장 '광야'에서 선보이는 김 대표의 독무다. 그는 "어두운 감옥 안에서 달빛에 의지해 글을 써내려가던 시인의 고독과 울부짖음을 상상했다"며 "초연보다 한층 깊어진 감정선으로 시인의 결연한 의지를 그려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길무용단 김현태 대표는 '큰 강물이 비로소 길(佶)을 열었다' 의 1장 '광야'에서 독무를 선보인다. <대구문예회관 제공>
준비 중인 3부는 스승과 제자가 한 무대에 올라 전통춤 전승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자리로 꾸며진다. 대구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타 지역의 춤사위를 지역 무용수들이 직접 경험하며 예술적 지평을 넓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김 대표는 "우리가 물려받은 전통을 후배들에게 건네고, 그들이 다시 내일로 이어갈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 작업"이라며 "스승에서 나로, 다시 제자로 이어지는 전승의 과정을 무대 위에서 구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처용무'에서 얻은 그만의 호흡법 선보인다
김 대표는 지난 2010년 '백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 '민화'로 제19회 전국무용제에서 대통령상(대상)을 수상하며 대구 무용의 저력을 보여줬다. 그로부터 16년이 흐른 지금, 그는 슬럼프와 성장통을 이겨내고 어느덧 17번째 개인 공연을 앞둔 중견 무용수가 됐다. 그동안 인물을 주제로 다수의 작품을 만들어왔고, 올해 작품의 첫 번째 주인공으로 이육사를 선택했다.
2017년 국가무형문화유산 제39호 처용무 이수자가 된 김 대표는 5년간의 수련 끝에 자신만의 '호흡법'을 얻었다. 그는 "처용무는 궁중 무용 특유의 묵직한 호흡이 핵심"이라며 "주로 뒤꿈치를 사용하는 다른 춤과 달리, 발 전체로 지면을 딛는 처용무만의 '디딤'이 제 춤의 근간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무대에서도 그가 선보일 특유의 단단한 '디딤'을 만날 수 있다.
◆"현 대구 무용계는 경쟁 아닌 상생이 우선"
지역 무용학과 현실 침체…K-컬처 열풍에도 막막
과거 코로나19로 무산됐던 해외 공연 재정비 중
"후배 무용수·제자들, 실패 두려워 말고 도전하길"
김현태 정길무용단 대표 <본인 제공>
10여 년간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그는 최근 대구 무용계를 지켜야겠다는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고백했다. 과거 지역 다른 대학 간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했지만, 무용학과가 통폐합되고 신입생 모집이 중단되는 등 무용계 침체 속에서 '상생이 우선과제'라고 강조했다.
그가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인재 유출'이다. 최근 젊은 무용수들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충분해졌지만 정작 춤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수도권 대학조차 겨우 인원수를 맞추는 상황"이라며 "지역 인재는 서울로, 서울의 인재는 K-컬처 열풍을 타고 해외로 떠나고 있다. 국가적으로는 고무적인 현상이지만, 지역 무용계로 보면 답답한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대구 무용계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김 대표에게는 아직 못다 이룬 숙원이 하나 남아 있다. 바로 정길무용단의 해외 진출이다. 코로나19로 무산됐던 중국의 민속 페스티벌 무대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최근 다시금 국제 무대로의 도약을 위해 힘을 쓰고 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목소리에는 스승과 제자를 향한 애정이 묻어났다. 그의 연구실 벽면을 채우고 있는 제자들의 편지와 사진은 그 증거였다. 과거 슬럼프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해준 스승의 조언을 기억하는 그는 그 사랑을 다시 제자들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다.
"용기가 없었는데, 독하게 마음먹고 도전하니 결국 길이 열리더라고요. 후배들 역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악물고 세상에 부딪혀 봤으면 좋겠습니다."
정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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