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 참을 수 없는 형벌의 가벼움

  • 박종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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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01 09:03  |  발행일 2026-04-01
벚꽂 만발, 봄기운 ‘물씬’
경북산불 1년, 상흔 여전
산불은 중대한 환경 테러
사회적 경각심 높이려면
확실한 처벌이 뒤따라야

'초속 5㎝.'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문득 떠오르는 계절이다. 작품 제목인 '초속 5㎝'는 벚꽃잎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속도를 의미한다. 실제 벚꽃잎은 이보다 훨씬 빠른 속도(초속 1.4m가량)로 낙화하지만 왠지 모르게 수긍하게 된다.


남부지역은 온통 꽃으로 물드는 중이다. 경남 진해는 '군항제'가 한창이고, 대구도 이미 벚꽃 천지다. 경북 북부지역인 안동에도 산수유가 하나둘 꽃을 피우고 있다. 시나브로 봄이 찾아왔다. 형형색색 따뜻한 봄 기운은 역설적이게도 지난해 처참한 상흔을 더욱 도드라지게 한다. 1년이란 시간이 무색하게 화마가 휩쓸고 간 산자락은 시커먼 생살을 드러낸 채로 있다. 그 참연한 비극을 온몸으로 겪은 이재민들도 비좁은 임시거주시설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산에도, 마음에도 봄이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산불은 벼락이나 자연발화가 아닌 사람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등산객이 무심코 버린 담배꽁초, 농산폐기물 소각, 성묘 뒷정리 중 실화 등 어처구니없는 실수가 온산을 집어삼킨다. 특히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에는 대형 산불로 이어진다. 수많은 인력과 장비를 동원해도 무용지물이다. 태풍급 바람이 불티를 사방으로 수십, 수백m씩 날려 버리면 불길을 잡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난해 경북 산불의 경우에도 초속 25m 이상의 바람을 타고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를 입혔다.


이처럼 작은 불씨 하나가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야기한다. 원인은 티끌 같지만 결과는 태산 같다. 문제는 이토록 무거운 결과에 비해 실화자가 짊어지는 책임의 무게는 너무 가볍다는 점이다. 현행 산림보호법에 의하면 고의로 불을 낸 방화범뿐만 아니라 실화자도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화자의 경우 실형을 받은 사례는 사실상 전무하다. 수백, 수천억원의 막대한 피해를 내고도 "실수였다"며 고개 한 번 숙이면 면죄부가 발부된다. 경북 산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떨까. 해외 주요국들은 산불을 단순한 실수가 아닌 '중대한 환경 테러'이자 '공동체 파괴 범죄'로 규정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실화라 하더라도 화재 진압에 투입된 헬기와 인력, 장비 비용은 물론 생태계 복구 비용 전액을 원인 제공자에게 청구한다. 평생을 갚아도 모자라는 '징벌적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다. 호주는 한술 더 뜬다. 산불 피해가 잦은 뉴사우스웨일스주는 과실로 산불을 낸 자에게 최대 21년의 징역형을 적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학자들도 여러 논문을 통해 공통된 결론을 내놓고 있다. 처벌의 확실성과 경제적 타격의 엄중함이 환경 범죄를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기제란 주장이다.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대학 마이클 포어(Michael G. Faure) 교수 역시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선 처벌의 확실성을 극대화하고, 경제적 타격이 환경 훼손으로 얻은 이익을 아득히 초과해야만 실질적인 예방 효과가 발생한다"고 조언한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도심의 골목이 아니라 숲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작은 불씨 하나를 가볍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불을 낸 사람을 가볍게 처벌하는 무른 법 시스템이 초대형 산불을 잉태하는 셈이다. 산불의 대한 경각심은 결코 펄럭이는 '붉은색 깃발'에서 나오지 않는다. 강력한 법과 함께 끝까지 책임을 묻는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타인의 생명과 재산, 미래 세대가 누려야 할 자연을 잿더미로 만든 대가는 그 어떤 핑계로도 상쇄될 수 없음을 뼛속 깊이 느끼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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