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북구 고성동에서 열린 제5회 대구 떡볶이페스티벌. 사흘간 33만명이 찾았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바야흐로 K-푸드의 시대다. 한류 열풍을 타고 한국의 먹거리에도 세계적인 관심이 모인다. 대표적인 것이 떡볶이다. 국민 간식으로 자리 잡은 떡볶이는 이제 글로벌 미식 트렌드의 한 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SNS에 외국인들이 떡볶이를 먹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 등을 담은 콘텐츠들이 공유되며 더욱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다.
지난해 대구 북구 대구iM뱅크PARK 일원에서 열린 '제5회 떡볶이 페스티벌'을 찾은 시민들이 각 떡볶이 판매 부스를 찾아 맛을 보며 축제를 즐기고 있다. <영남일보 DB>
이런 열풍의 진원지를 찾다 보면 대구를 만나게 된다. 지난해 북구 고성동에서 열린 '제5회 대구 떡볶이페스티벌'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알싸한 후추 향과 고소한 튀김 냄새가 진동하는 축제장에는 발 디딜 틈 없는 인파가 몰려들었다. 사흘간 축제장을 찾은 방문객은 무려 33만명. 대구 동구의 전체 인구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떡볶이를 맛보기 위해 전국 각지는 물론 해외에서도 모여들었다.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K-간식이지만 대구는 이야기가 다르다. 독특한 양념은 물론 떡볶이 프랜차이즈 대다수가 이곳에서 시작돼 '원조'를 맛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마니아들은 대구로 '떡볶이 성지순례'를 오기도 한다. 떡볶이가 로컬 관광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구는 어떻게 '떡볶이의 성지'가 된 걸까.
대구 대명동에 위치한 '신당동떡볶이'.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이 특징이다. 각종 사리를 추가할 수 있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궁중 음식에서 국민 간식으로…한국전쟁 이후 대중화
'요즘 떡볶이'를 생각하면 빨간 양념의 떡볶이가 떠오른다. 익숙한 이 매콤달콤한 양념은 언제 등장했을까? 떡볶이 양념은 원래 고추장이나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간장 베이스였다. 조리 방식도 달랐다. 1936년 1월11일 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조선요리 성분 계산표'에는 떡볶이의 성분으로 떡·소고기·버섯·계란 등과 함께 간장과 참기름이 언급됐다. 19세기 말 조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따르면, 떡볶이는 기름에 볶는 게 아니라 양념장과 물을 붓고 은근히 끓이는 찜의 한 종류였다.
떡볶이가 대중화된 건 1950년대 이후. 한국전쟁 이후 궁중 음식에서 서민 음식으로 변모했다. 전쟁이 끝나고 원조물자로 밀가루가 들어왔고, 쌀보다 값싼 밀로 떡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 나온 서울의 '신당동 떡볶이'는 대표적인 빨간 떡볶이다. 1953년 마복림 할머니가 짜장면 면발을 고추장 양념에 실수로 빠트린 것이 계기가 돼 지금의 고추장 떡볶이가 시작됐다.
대구식 떡볶이의 원형 '윤옥연신천할매떡볶이'. 후추향과 자박한 국물이 특징이다. <영남일보 DB>
1968년 새마을 운동의 주요 아젠다로 '장독대 없애기 운동'이 진행된 것도 한몫했다. 도시 미관을 해치고 비위생적이니, 장독대를 없애고 당시 공업화를 통해 시판되기 시작한 된장·고추장·간장을 사 먹자는 캠페인이었다. 주부들이 장 담그는 수고가 덜어지고, 고추장이 대량 공급·확산되면서 학교 인근에 떡볶이 가게와 포장마차가 들어섰다.
◆신천시장 등지에 골목 형성…후추+자박한 국물이 특징
대구와 경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궁전떡볶이'.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대구는 어떨까. 전국구 떡볶이 프랜차이즈의 고향이다. 그만큼 떡볶이 맛집이 많다. 시민들의 충성도도 높다. 배달의민족이 떡볶이 주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주문자 비율이 가장 높은 지역도 대구였다. 서울이 떡볶이의 출발지라면, 대구는 떡볶이를 확산시킨 중심지인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 밀가루가 대구역을 통해 대량 유입된 게 시작이다. 이 시기 인근 동네인 북구 칠성동·고성동·대현동 피난민촌 일대에 자연스럽게 떡볶이 포장마차 골목이 형성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북구에는 지금도 30년 넘는 세월을 지켜온 노포 떡볶이집들이 유독 많이 남아 성업 중이다.
1970년대에는 지금의 대구 3대 떡볶이인 '윤옥연신천할매떡볶이'가 신천시장에 문을 열면서 '대구식 떡볶이'가 시작됐다. 후추와 멸치 육수, 또 국물이 자박한 게 특징이다. 타지에서 고추장과 고춧가루 등 일반적인 방법으로 매운 맛을 내는 것과 달리, 후추를 첨가하는 방식이 지역에선 지금까지 전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물떡볶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요리도 여기서 비롯됐다.
대구 신천시장 '윤옥연신천할매떡볶이'. 대표 메뉴인 2천원짜리 매운 떡볶이다. 튀긴 어묵과 만두가 곁들여지면 맛이 배가된다. <영남일보 DB>
대구에서 음식전문 기자로 활동한 이춘호 칼럼니스트는 "대구의 떡볶이는 한때 '신천'과 '할매'란 두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속설이 떠돌기도 했다"며 "이런 인기 덕분에 할매를 벤치마킹한 숱한 브랜드들이 팽팽한 경쟁구도를 형성하며 원조 논쟁을 부추기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유통 파워가 대구를 '떡볶이 시티'로 변모시켰다"고 진단했다. 간식으로 즐기기 좋다보니 학교 인근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했고, 자극적이고 매운 양념은 분지 지형 특유의 고온다습한 기후와 맞물려 더욱 인기를 끌었다.
◆외지인들 떡볶이 성지순례하러 방문…경제효과 기대감
대구 북구 관음동에 위치한 신전뮤지엄. 세계 유일의 떡볶이 박물관이다.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이 덕에 대구에선 신떡순 신천할매떡볶이, 달떡, 신전떡볶이, 빨봉분식 등 떡볶이 프랜차이즈가 대거 나왔다. 특히 1999년 칠성동에 문을 연 신전떡볶이는 대구만 24개, 전국 800여개의 가맹점을 보유하며 K-대표 떡볶이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엔 일본, 캐나다, 호주, 말레이시아 등 해외 진출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동종업계 최초로 양념 HACCP 인증을 받기도 했다.
북구 관음동에 들어선 세계 최초·유일의 떡볶이 박물관도 정체성을 더한다. 북구에서 탄생한 전국구 프랜차이즈답게 신전떡볶이가 2020년 설립했다. 신전떡볶이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고, 방문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다. 떡볶이를 시식할 수 있는 '신전 밀', 로봇과 함께 나만의 컵떡볶이를 만들 수 있는 '마이 컵 떡볶이 팩토리', 양념가루들을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이노베이션 랩' 등으로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로봇과 함께 나만의 컵떡볶이를 만들 수 있는 신전뮤지엄 내 체험 공간 '마이 컵 떡볶이 팩토리'.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대구에서만 맛볼 수 있는 떡볶이 맛집들도 눈길을 끈다. 윤옥연할매떡볶이, 신천황제떡볶이, 궁전떡볶이, 중앙떡볶이 등 수많은 떡볶이 맛집이 방송을 타며 널리 알려졌지만, 대구 또는 대구 인근에서만 만날 수 있어 전국 떡볶이 마니아들의 발길을 모은다.
1979년 개업, 지금까지 228중앙공원 옆을 고수하고 있는 '중앙떡볶이'. <영남일보 DB>
이를 인식하고 지자체에서도 관광 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대구 북구는 2020년부터 매년 '대구 떡볶이페스티벌'을 열고 있는데, 해마다 역대 최대 흥행 기록을 쓰고 있다. 지난해 축제를 찾은 방문객은 전년(13만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이 중 타지역 방문객이 52%로 절반을 차지했다. 경제효과는 275억원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올해는 이월드와의 공동 마케팅을 통해 축제장 방문이 타 관광지 방문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다만 떡볶이의 세계화 전략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식감과 양념이 비교적 생소한 음식이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춘호 칼럼니스트는 "외국인들은 치아에 달라붙는 떡볶이의 찐득한 식감에 대해 그렇게 호감을 갖고 있지 않다"며 "우리 것이니 무조건 세계적이라 속단하기보다 일식, 중식, 양식, 제3세계 푸드와 융복합될 수 있는 메뉴 마케팅을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전떡볶이의 양념가루들을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신전뮤지엄 내 체험 공간 '이노베이션 랩'. 조현희기자 hyunhee@yeongnam.com
조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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