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진 시조시인·대구문인협회 부회장
봄은 늘 시인을 길 위로 불러낸다. 올해 4월, 대구문인협회 회원 32명은 3박4일간 일본으로 특별한 문학여행을 떠났다. 이름하여 '후지산 벚꽃과 하이쿠 문학기행'. 벚꽃이 만개한 일본의 봄과 가장 짧은 정형시인 하이쿠를 직접 체험하는 뜻깊은 여정이었다.
첫날, 대구공항을 출발한 일행은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도쿄의 하이쿠문학관을 찾았다. 무려 4만5천 권의 하이쿠 시집이 소장된 이곳은 일본 시문학의 깊이를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5·7·5, 단 17자로 우주를 담아내는 하이쿠의 세계는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이쿠의 거장 마츠오 바쇼의 명작, '오래된 연못 / 개구리 뛰어드는 / 퐁당 물소리'('개구리' 전문)을 마주하는 순간, 정적 속에 울리는 물방울 소리마저 한 편의 시가 되었다.
이어 찾은 신주쿠교엔은 봄비 속에서도 눈부셨다. 1천500그루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회원들은 저마다 한 편씩 하이쿠를 지었다. 저녁에는 롯폰기 힐즈 54층 전망대에 올라 도쿄의 야경을 한눈에 담았다.
둘째 날의 백미는 단연 후지산이었다. 아라쿠라산에서 바라본 설산의 위용은 말 그대로 압도적이었다. 봄비가 지나간 뒤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가와구치코 호수와 후지산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졌다. 로프웨이를 타고 올라 만난 풍경 앞에서 모두가 숨을 죽였다. 자연 앞에 선 인간의 언어는 짧아지고, 그래서 더욱 시가 된다.
오층탑으로 향하는 398계단을 오르내리며 일본 전통 가옥과 정원의 정갈한 미학도 엿볼 수 있었다. 이동하는 버스 안은 또 하나의 문학 교실이었다. 회원들은 후지산과 벚꽃을 소재로 즉석에서 하이쿠를 지어 발표했고, 여행이 끝나면 개인당 10편에서 30편의 작품을 묶어 기행 작품집으로 엮을 예정이라는 회장의 설명에 모두의 기대가 커졌다.
셋째 날, 일행은 마침내 일본의 상징 후지산을 직접 밟았다. 봄비로 인해 1합목까지만 허용되었지만, 운해가 자욱한 산기슭에 서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이어 하코네국립공원의 오와쿠다니 계곡에서 유황 연기가 피어오르는 장관을 보고, 검은 달걀 구로다마고(검은 계란)를 맛보는 소소한 즐거움도 누렸다.
마지막 날, 귀국길 차량 안에서는 작은 하이쿠 시상식이 열렸다. 대상, 우수상, 다작상 등 유쾌한 시상이 이어지며 여행의 여운을 더했다. 해외여행의 묘미는 풍경에만 있지 않다. 함께 걷고, 함께 보고, 함께 시를 짓는 시간 속에서 서로의 마음이 한층 가까워진다.
이번 문학기행의 백미는 단연 벚꽃과 후지산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이 남은 것은 자연 앞에서 더욱 맑아진 시심(詩心)이었다. 봄의 일본에서 피어난 하이쿠 한 줄, 그리고 회원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한 편의 문학 여행. 그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아름다운 시적 체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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