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통장 발언대] 고령 우곡면 도진리 박돈헌 이장(80)의 새벽 4시가 만든 무릉도원

  • 석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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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12 14:22  |  발행일 2026-04-12
봄마다 분홍빛으로 물드는 고령 도진리 복사꽃길의 비밀
30년 넘게 마을을 일궈온 한 사람의 시간
고령 우곡면 도진리 박돈헌 이장이 마을 만들기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석현철 기자>

고령 우곡면 도진리 박돈헌 이장이 마을 만들기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석현철 기자>

새벽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 경북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 마을 어귀에는 이미 하루를 시작한 사람이 있다. 오전 4시. 해가 뜨기도 전, 허리를 굽혀 풀을 뽑고 길을 다듬는 노인의 손길이 분주하다. 올해로 80세가 된 도진리 박돈헌 이장이다.


"보람된 일을 하니까 오히려 더 건강해집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가 지난 30여 년간 마을을 일궈온 시간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도진리는 고려 말 형성된 고령박씨 집성촌이자, 충효와 독립운동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다. 특히 3·1운동 당시 마을 주민들이 집단으로 만세운동에 참여해 대거 옥고를 치른 이력이 전해지며, '마을 전체가 항거했던 공간'이라는 상징성을 지닌다. 지금도 마을 중심 광장은 그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붉은 바닥으로 조성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경관이 아니라 공동체의 기억을 담아낸 상징 공간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박 이장은 1993년, 46세의 나이에 처음 이장을 맡았다. 당시 마을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박돈헌 이장이 옛날 도진리 마을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박돈헌 이장이 옛날 도진리 마을사진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그때 마을부지가 314㎡(95평) 남짓이었어요. 너무 좁고, 정리가 안 돼 있었죠. '이대로는 안 된다' 싶었습니다."


그가 손댄 변화는 단순한 정비가 아니었다. 약 314㎡에 불과했던 마을 공간을 2,600㎡(800평) 이상으로 확장하며 구조 자체를 새롭게 짰다.


그는 '인간 상록수'처럼 마을을 살려보겠다는 마음으로 주민들을 설득했고, 그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의 힘이 하나로 모였다.


도진리 박돈헌 이장이 마을 입구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도진리 박돈헌 이장이 마을 입구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석현철 기자>

이러한 기반 위에서 도진리를 전국적인 사진 명소로 만든 '능수도화길'이 탄생했다. 박 이장은 농림수산식품부 공모사업에 도전했고, 이를 통해 지금의 복사꽃길을 조성했다. 봄이면 흐드러지게 늘어지는 분홍빛 꽃길은 이제 '무릉도원'이라 불리며 전국의 사진가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 결과, 도진리는 2022년 '대한민국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됐다. 꽃이 만개하는 시기에는 하루 수천 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특히 요양시설 어르신들이 편안한 쉼을 얻기 위해 찾는 공간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활짝 만개한 꽃나무 아래에 도진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누르고 있다. <석현철 기자>

활짝 만개한 꽃나무 아래에 도진리를 찾은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 셔트를 누르고 있다. <석현철 기자>

도진리는 어르신들의 봄 나들이 장소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석현철 기자>

도진리는 어르신들의 봄 나들이 장소로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석현철 기자>

이 아름다운 풍경은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니다. 도진리는 고령군의 '치매보듬마을'로 4년 연속 지정·운영되고 있으며, 마을 곳곳의 쌈지공원과 꽃길은 주민들에게 정서적 안정과 치유의 공간이 되고 있다. 경관 조성이 곧 복지로 이어지는 구조를 만들어낸 셈이다.


"꽃은 그냥 심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계속 돌보고, 가꾸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의 말처럼, 도진리의 풍경은 '시간의 결과물'이다.


도진리 유물 전시관, 박 이장은 집성촌이기 때문에 귀한 유물들을 전시관으로 모이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석현철 기자>

도진리 유물 전시관, 박 이장은 집성촌이기 때문에 귀한 유물들을 전시관으로 모이게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석현철 기자>

마을의 역사가 담긴 사진전시관, 박 이장은 명절날 가족 친지들이 오면 이곳을 꼭 찾는다고 한다. 오래된 사진 속에 조상들의 생생한 모습을 찾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석현철 기자>

마을의 역사가 담긴 사진전시관, 박 이장은 명절날 가족 친지들이 오면 이곳을 꼭 찾는다고 한다. 오래된 사진 속에 조상들의 생생한 모습을 찾는 즐거움이 있는 곳이라고 설명한다. <석현철 기자>

박 이장이 특히 공을 들인 공간은 마을 유물관이다. 집성촌이라는 특성을 기반으로, 각 가정에 보관돼 있던 다양한 보물급 문헌들이 한데 모였다.


이 유물관은 단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박 이장의 끊임없는 설득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해져 완성된 공동의 결과물이다.


집집마다 빠짐없이 기증한 장독대로 장 담그기 사업을 통해 마을의 수익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석현철 기자>

집집마다 빠짐없이 기증한 장독대로 장 담그기 사업을 통해 마을의 수익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석현철 기자>

도진리 마을 어르신들이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석현철 기자>

도진리 마을 어르신들이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석현철 기자>

현재 도진리는 마을 공동체 활동 또한 활발하다.


장 담그기 사업을 통해 마을 경제를 이어가고 있으며, 어르신들의 공예 작품 활동을 바탕으로 한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단순한 '관광마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공동체 마을인 셈이다.


"마을은 역사, 현재, 미래가 같이 가야 합니다. 이장은 그걸 이어주는 사람이에요."


박 이장이 말하는 이장의 역할은 단순한 행정 책임자가 아니다. 그는 마을의 시간을 이어가는 사람이다.


박 이장의 하루는 여전히 새벽 4시에 시작된다.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풀을 뽑고, 나무를 살피고, 길을 정돈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까 끝까지 해야죠."


그의 말에는 책임감보다 애정이 먼저 묻어났다.


도진리는 흔히 '자연이 아름다운 마을'로 불린다.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이곳의 풍경은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시간의 결과라는 것을.


314㎡의 작은 공간에서 시작된 변화, 그리고 30년 넘게 이어진 한 사람의 손길.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도진리를 만들었다.


박돈헌 이장이 마을 입구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석현철 기자>

박돈헌 이장이 마을 입구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석현철 기자>

마을을 취재하다 보면 '좋은 정책'보다 더 오래가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그건 결국 사람의 의지와 시간이다.


도진리의 봄은 화려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깊은 것은, 그 꽃을 피워낸 한 사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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