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소멸하는 TK 스포츠

  •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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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14 16:27  |  수정 2026-04-14 16:28  |  발행일 2026-04-15
이라크, 포연 뚫고 환호
‘빙상 메카’ 대구는
인프라 안전등급 D
‘우리팀’ 없는 대구
누가 머물겠는가
이효설<체육팀장>

이효설<체육팀장>

일간지 스포츠면에 실린 '40년 만에 터진 환호' 기사를 가슴 뛰며 읽었다. 이라크가 40년 만에 사상 두 번째 월드컵에 진출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바그다드에서 거리 응원하는 팬들의 표효하는 모습이 벅찼다. 이란의 인접국인 이라크는 이번 전쟁으로 100여 명이 사망했다. 포연이 가시지 않는 정세 악화 속에서도 무수한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국기를 흔들며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이라크 정부는 1986년 이후 처음으로 공휴일 선포까지 했다.


90분짜리 축구 경기로 종파를 넘어 온 국민이 하나가 된 그들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스포츠의 힘' 운운하기 전에 한 사람, 한 시민으로서 그들이 정말 부러웠다.


필자의 사실상 고향인 대구의 현실을 되짚어보니 답답해졌다. 지방이 소멸한다며 신세를 한탄하던 대구 사람들은 지방을 지키는 대신 앞다퉈 서울 사람이 되겠다고 떠나고 있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로컬 스포츠도 덩달아 김이 빠졌다. 세계 대회에 출전한 내 고향, 대구의 지명을 단 선수를 응원해본 적이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대구도 한때 잘 나갔다. 1994년 릴레함메르의 김소희, 2006년 토리노의 진선유.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본 빙판 위에서 대구의 딸들은 금빛 함성을 질렀다. 서울, 경기 유망주들이 대구 감독한테 배우겠다며 줄을 섰다.


하지만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 담페초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국가대표 71명 중 대구·경북 소속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빙상 메카'의 몰락이자, 우리 지역 스포츠에 내려진 사망 선고다.


이 비극은 예고편이 적잖았다. 대구 유일의 국제 규격 빙상장은 지붕 구조물이 휘어 안전등급 D판정을 받은 채 방치됐다. 국가대표급 유망주들은 새벽 3시 버스를 타고 타 시·도를 전전하는 '빙상 난민'으로 전락했다. 수성아이스링크에서 대구의 A급 쇼트트랙 선수들이 동호인들과 뒤엉켜 훈련하는 모습은 아찔했다. 그들이 대구에서 짐을 싸는 건 당연한 수순처럼 보였다.


비단, 빙상뿐이겠는가. 야구, 육상 등 지역의 자부심이었던 종목들도 지방소멸의 도미노 앞에 섰다. 학생 수 감소로 체육 명문 학교의 운동부들이 해체하고 있지만, 지자체의 무관심은 상수가 된지 오래다.


얼마 전 김천실내수영장에서 만난 핀수영 국대 선수들은 "대구에 수영장이 없어 서울에서 훈련을 했다"고 아쉬워했고, 대구의 육상 선수들은 육상진흥센터 사용료가 비싸 찬바람 부는 한겨울에도 실외 훈련을 해야만 하는 처지다. 대구·경북이 전국체전에서 과거의 위상을 잃고 하위권 전전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TK 스포츠의 소멸은 경기 성적, 대회 순위의 문제가 아니다. 대구라는 우리 사회의 심장 박동이 멈추는 것이다. 스포츠는 그 어떤 것보다 우리 지역민을 하나로 묶어주며, 가장 강력한 사회적 근육처럼 기능해 우리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문화다.


내 고향의 이름을 단 선수를 응원하고 싶다. 대구라는 자부심을 느끼고 싶다. 이런 문화가 사라진다면 대구는 더욱 활력을 잃을 것이다. 아이들이 뛰놀 운동장이 사라진 도시, 우리를 대신해 싸워줄 '우리 팀'이 없는 도시에 어떤 청년이 머물고 싶겠는가.


정부가 발표하는 지방소멸대책엔 로컬 스포츠를 되살리는 빙상장 건립, 실업팀 창단 얘긴 쏙 빠져있다. '빙상 난민'을 넘어 '지역 스포츠 난민'이 된 우리 아이들에게 이제 대구와 경북이 응답해야 한다. 운동장은 다시 뜨거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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