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대구 북구 관음동의 한 아파트 주민 A(여·45)씨는 최근들어 집에만 가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부쩍 화장실 환풍구를 통해 담배 냄새가 들어오는 일이 잦아지면서다. 냄새를 막기 위해 화장실 문을 닫아둬도, 열기만 하면 매캐한 냄새가 뿜어져 나온다고 했다.
A씨는 "화장실이 딸린 안방을 아이 방으로 바꿔주었는데 불시에 닥치는 담배 냄새 때문에 다시 방을 바꿔야 하나 싶다. 화장실 배관을 통해 들어오는 담배 냄새가 위·아래·옆집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아야 가서 말이라도 할 텐데 답답하기만 한 심정"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동주택 금연구역(금연아파트)'도 다르지 않다. 세대 내부로 파고드는 담배연기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되면서다. 지난해 대구 동구청으로부터 '공동주택 금연구역'으로 공식 지정된 동구 효목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층간흡연 문제로 입주민들이 고충을 겪고 있다.
이 아파트 입주민 B(여·38)씨는 "분명 금연아파트로 지정됐지만 화장실에서 담배 냄새가 나서 깜짝 놀랐다. 엘리베이터에 '화장실 내 전자담배 사용을 자제해달라'는 메모가 붙은 것을 보고 단지 전체가 겪는 고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아파트 층간흡연이 단순 불쾌감을 넘어 '생존권'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아파트 층간소음에 이어 새로운 갈등의 뇌관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단순 악취 아냐 "간접흡연은 1급 발암물질"
<이미지=생성형 AI>
층간흡연이 심각한 갈등을 빚는 이유는 다른 집에서 넘어온 연기를 마시는 '간접흡연'이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어서다.
질병관리청과 국제암연구소(IARC)의 공식 보고서에 따르면 간접흡연은 명백한 '암 유발 물질(발암물질)'로 분류된다. 간접흡연은 비흡연자의 폐암 발병 원인 중 하나다. 미국 공중보건위생국 보고서에 따르면 비흡연자가 흡연자와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폐암 위험이 20~30%가량 높아지며, 미국에서는 최소 한 해 3천 명이 간접흡연에 의한 폐암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외에도 유방암, 비강암, 비인두암 등의 발병 위험을 크게 높인다.
전문가들은 간접흡연이 오히려 직접흡연보다 유해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수성보건소 금연클리닉 황신혜 금연상담사는 "흡연자가 들이마시는 연기는 담배 필터를 한 번 거치지만, 타들어가는 담배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른바 '생담배 연기'는 유해물질이 전혀 걸러지지 않은 상태"라며 "생담배 연기에는 미세입자가 많아 폐 깊숙이 침투하기 때문에 간접흡연자에게 훨씬 더 유해하며, 연소 과정에서 나온 유해물질이 고스란히 몸에 들어가 각종 호흡기 질환과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층간흡연이 가장 우려되는 것은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이다. 간접흡연에 노출된 어린이는 백혈병, 림프종, 뇌종양의 발병 위험도가 크게 높아진다. 게다가 연기를 직접 들이마시지 않더라도 유해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황 상담사는 "니코틴 등 담배의 유해성분은 단순히 물로 씻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실내에 소량 잔류하게 된다"며 "이러한 유해물질이 남아있는 공간을 아이들이 활동하게 되면, 그 성분들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돼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민원 폭발하는데 제도는 '뒷짐'
<인터그래픽=생성형 AI>
간접흡연은 건강권과 직결돼 있지만 현행 제도는 폭증하는 갈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및 국토교통부가 집계한 '연도별 공동주택 간접흡연 민원 사실조사 수행현황'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20~2024년) 누적된 간접흡연 민원은 총 19만2천610건에 달한다. 2020년 2만6천19건이었던 민원은 2024년 6만2천980건으로 불과 4년 만에 약 2.4배(142%) 폭증했다. 하루 평균 약 105가구가 층간흡연으로 인한 고통을 신고한 셈이다. 반면 이를 중재해야 할 행정력은 오히려 퇴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접수된 민원에 대해 관리사무소 등이 실제 현장에 나가는 '사실조사 착수율'은 2020년 98.5%에 달했으나, 2024년에는 54.5%로 반토막이 났다.
대구지역 지자체와 입주민들도 자구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약 16만 세대가 아파트에 거주하며 대구 최대 공동주택 밀집 지역으로 꼽히는 달서구는 지난해 조례 제정을 통해 아파트 자치조직에 대한 갈등 예방 교육과 간접흡연 방지 생활수칙 마련 등 구체적인 지원 근거를 세웠다. 다른 지자체들도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금연아파트의 공용구역 내 흡연 시 5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 제도적 사각지대 해소 시급
대구 동구의 한 아파트 정문 입구에 부착된 금연아파트 표지판. 김지혜기자
그러나 공동주택 금연구역 지정이 금연 환경 조성 차원에만 그치면서 실효성 있는 법적 규제 장치 마련과 제도적 사각지대 해소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 국민건강증진법상 금연아파트로 지정되더라도 규제 구역이 '계단, 복도, 엘리베이터, 지하주차장' 등 공용구역에만 국한돼 있어서다. 가장 빈번하게 냄새가 유입되는 '화장실 환풍구'나 '베란다' 등 사적인 세대 내부에서의 흡연은 법적으로 단속할 권한이나 과태료 부과 근거가 없는 사각지대인 셈이다.
또 아파트 관리주체가 세대 내 흡연을 강제로 제지하거나 과태료를 부과할 권한도 없다. 갈등의 진원지인 '화장실'이나 '베란다' 등 사유지 내에서 벌어지는 흡연을 법적으로 통제할 명확한 장치가 없는 것.
금연아파트로 지정되더라도 실제 과태료 부과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미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달성군의 경우 2017년 관내 첫 공동주택 금연구역 지정 이후 현재까지 25곳을 공동주택 금연구역으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지만 과태료 부과 건수는 전무하다. 대구 동구와 수성구, 달서구 역시 각각 34곳, 36곳, 37곳을 공동주택 금연구역으로 지정하고 있지만 과태료 부과로 이어진 사례는 없다. 대구지역 내 다른 지자체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담당 공무원들은 이 같은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현행 제도의 맹점을 꼬집는다. 현행법상 단속원이 현장을 적발해야만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달서구보건소 김유정 주임은 "아파트에서도 특히 계단, 1층 필로티에서 흡연을 많이 한다는 신고가 들어온다. 1층 필로티는 지정 금연구역이 아니고 계단이 금연구역으로 해당이 되지만, 현장 적발이 어렵다 보니 과태료 부과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법령상 CCTV나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데다 담배를 손에 들고 있지 않으면 적발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달성군청 건강증진과 오유진 주임은 "민원이 발생해도 지자체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측에 상황을 전달하는 정도다. 아파트가 사적 공간이다 보니, 단속보다는 금연 독려 안내방송이나 안내문 부착을 요청하는 것이 고작"이라고 했다.
여기에 만성적인 단속 인력 부족 문제까지 겹치며 제도는 더욱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오 주임은 "현재 5명의 방문관리인력이 공동주택 외에도 관내에만 9천여 개소에 달하는 금연구역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원칙적으로 연 1회 이상 현장단속을 나가야 하지만, 지정된 곳이 워낙 많아 한 번씩 순회하는 것조차 물리적으로 턱없이 빠듯하다"고 토로했다.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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