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규 사회2팀장
최근 대구에서 벌어진 고위험 임산부 의료기관 미수용 사고는 단순한 이송 혼선이 아니다. 전화 몇 통이 더 오갔더라면 막을 수 있었던 착오도 아니다. 이 사건은 한계선까지 내몰린 지역 필수의료 체계가 어떤 방식으로 붕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의료참사다. 산모는 제때 치료받을 병원을 찾지 못했고, 쌍둥이 중 한 명은 목숨을 잃었다. 다른 한 명은 중대한 뇌손상을 입었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부분은 연락망의 빈틈이 아니라, 정작 환자를 받아낼 수용 역량 자체가 구조적으로 허물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고위험 분만과 신생아 진료는 일반 진료와는 차원이 다르다. 응급 제왕절개가 가능한 수술실, 숙련된 산부인과 전문의, 출생 직후 개입할 신생아 전문의, 신생아집중치료실, 필요하면 산모 중환자실까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고위험 산모를 받는다는 건 병상 하나를 비워두는 일이 아니라, 산과·소아청소년과·마취과·간호 인력·중환자 진료 역량이 결합한 시스템 전체를 즉시 가동하는 일이다. 이런 영역은 애초 병원 경영 논리만으로 버틸 수 없는 공공재다.
그런데 국가는 필수의료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그 위험과 책임은 의료진 개인에게 떠넘겨 왔다. 고위험 분만과 미숙아 진료는 본질적으로 예후의 불확실성이 크고, 예기치 못한 악화 가능성이 상존하는 분야다. 의료진이 최선의 판단과 처치를 다했더라도 결과를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결과가 나쁘면 과실 추정의 시선이 드리워지고, 의료분쟁은 쉽게 형사 절차로 비화한다.
필수의료가 무너지는 것은 수가가 낮아서만도, 노동 강도가 세서만도 아니다. 깊숙한 이면에는 최선을 다하고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도사리고 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한 고난도 판단이 사후적으로 형사 책임의 잣대에 오를 수 있다는 위축감이 현장을 짓누른다. 이런 환경에서 사명감은 자부심이 아니라 자기희생의 강요로 변질된다. 젊은 의사들이 필수의료를 기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는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책임은 끝내 개인 몫으로 남는다.
해법은 명약관화하다. 국가가 말이 아니라 법으로 나서야 한다.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가 없는 필수의료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책임을 제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특히 고위험 분만과 신생아 진료처럼 불가항력적 결과 가능성이 내재된 영역에서는 개인에게 책임을 몰아붙이는 지금의 구조를 방치해선 안 된다. 불가항력적 분만·신생아 의료사고에 대한 국가 책임을 확대하고, 의료분쟁이 곧바로 수사와 처벌의 궤도로 진입하는 관행도 조정·중재 우선 구조로 재설계해야 한다.
물론, 의료진에게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냐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가린다. 누구도 중대한 과실이나 고의까지 감싸자고 말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최선을 다한 필수의료 행위마저 결과 하나로 범죄시하는 풍토다. 불확실성과 긴박성이 본질인 진료 현장에 사후 결과에 대한 책임만 기계적으로 들이대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폭력에 가깝다. 그 공포는 방어진료를 낳고, 기피를 부르고, 결국 의료 현장을 황폐하게 만든다.
이번 대구의 비극은 한 지역의 사고로 끝날 일이 아니다. 필수의료를 국가의 책무라 부르면서도 정작 그 위험을 제도적으로 떠안지 않았던 우리 사회 전체의 민낯이다. 병상과 장비를 말하기 전에, 그 병상과 장비를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의 법적·제도적 안전부터 보장해야 한다. 국가도 필수의료에 대한 책임을 함께 져야 한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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