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누군가에게는 풍요의 터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사투의 현장이다. 1979년 원양어선에 몸을 실었던 한 청년이 이제 두 번의 정년을 뒤로하고 평생 정들었던 조타륜을 내려놓는다.
경북 영덕군 최초의 다목적 어업지도선 '누리호'를 이끌어 온 우병철 선장이 최근 퇴임하며 그의 45년 바다 인생도 새로운 항로에 들어섰다.
원양어선 항해사에서 공직자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최초의 지도선 선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삶은 곧 대한민국 현대 해양사와 궤를 같이한다. 강구항의 푸른 물결 위에서 영덕누리호와 함께한 그의 마지막 항해기를 들어보았다.
1979년 베링해 원양어선 항해사로 시작해 해양수산부 지도선 선장을 거쳐 영덕누리호 초대 선장까지 대한민국 해양 수산의 역사를 온몸으로 써 내려온 우병철 선장이 누리호 앞에 서있다.<남두백 기자>
◆제1막: 베링해의 얼음바다를 녹인 청춘의 열정
우 선장과 바다의 인연은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무 살 청년이던 그는 5천 톤급 거대 원양어선에 몸을 싣고 북태평양 베링해로 향했다. 경양호, 태백호 등 당시 국가 경제의 역군이었던 어선들에서 10년 가까이 항해사로 근무하며 극한의 환경을 견뎌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그때는 바다가 곧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한 번 출항하면 최대 6개월, 외부와의 소통은 운반선을 통해 전달되는 철 지난 신문과 하루 30분의 라디오 방송(VOA)이 전부였던 시절이었죠."
당시 베링해는 황금어장이었다. 하루 100톤이 넘는 명태를 처리하는 일이 예사였고 아침에 한 번 그물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어창이 가득 찼다. 그러나 풍요 뒤에는 늘 위험이 도사렸다.
세인트 매튜 섬 인근에서 유빙에 갇히고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이어지는 겨울철 악천후 항해는 일상이었다. 그는 그 극한의 공간에서 바다를 경외하는 법과 선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온몸으로 익혔다.
영덕군 최초의 다목적 어업지도선 영덕누리호 조타실에서 우병철 선장이 지난 7년간의 항해를 회상하고 있다.<남두백 기자>
◆제2막: 바다의 파수꾼, 무궁화호의 선장이 되다
원양의 거친 파도를 뒤로하고 1990년 그는 수산청 공무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무궁화호' 시리즈의 선장을 역임하며 평생을 바다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바쳤다. 불법 조업 단속과 조난 선박 구조, 해상 안전 관리까지 그의 임무는 단순한 행정을 넘어선 사투의 현장 그 자체였다.
"서해에서 중국 어선 단속을 나가면 수십 척이 떼를 지어 저항하곤 했습니다. 날카로운 파이프로 무장한 그들과 대치할 때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죠. 때로는 위험했지만 우리 바다의 자원을 지키고 어민들의 터전을 보호한다는 사명감이 저를 버티게 했습니다."
그의 기억 속 바다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고장 난 어선을 예인하고 풍랑 속에서 표류하는 배들을 구했다. 특히 2012년 울릉도 인근 해상에서 풍랑주의보를 뚫고 원유 1만 2천 톤을 실은 대형 유조선을 구조해 해양 참사를 막아낸 사건은 지금도 해양수산 행정의 전설로 회자된다.
"현장이 답이다." 우병철 선장은 재임 기간 내내 어민 보호와 해상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사진은 강구항에 정박 중인 누리호 갑판에서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으로 그의 철저한 직업정신을 보여준다.<남두백 기자>
◆제3막: 영덕누리호, 영덕 대게와 어민을 위한 마지막 헌신
2018년 말, 해양수산부에서 정년퇴임한 그에게 또 다른 시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덕군이 처음으로 자체 어업지도선을 도입하며 전문가를 찾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영덕군에만 지도선이 없다는 사실이 늘 안타까웠습니다. 퇴직 후의 허전함보다 내 마지막 경험이 고향 바다와 어민들에게 보탬이 되길 바랐죠." 그렇게 그는 '영덕누리호'의 초대 선장으로 다시 바다에 섰다. 워터제트 추진방식의 56톤급 영덕누리호는 우 선장의 세심한 관리 덕분에 영덕 바다의 수호자로 거듭났다.
특히 그는 영덕의 명물인 대게자원 보호에 남다른 애착을 보였다. "영덕 어민들에게 대게는 삶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불법 통발이나 무분별한 조업으로 어장이 황폐해지는 것을 볼 때면 가슴이 아팠죠. 어민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시기가 대게 조업철인 겨울인데 그때마다 수심 420m의 외해까지 나가 불법 조업을 감시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강구항 인근 해상에서 길이 50m에 달하는 대형 폐기물을 수거했던 일을 재임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는다. 작은 어선들의 프로펠러를 위협하고 대게 그물을 망가뜨리는 장애물을 제거하는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어민 보호의 시작이었다.
비록 기상 악화 등으로 인해 어민들의 기대를 100%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대목에서는 우 선장의 진심 어린 마음이 묻어났다.
우병철 선장이 45년 항적을 뒤로하고 퇴임 후에도 영덕 바다의 안전과 풍요를 기원하겠다는 소회를 밝혔다.<남두백 기자>
◆'청풍거사'로 떠나는 자유의 항로
그러나 바다는 언제나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지난해 여름, 폭우로 떠내려온 부유물이 엔진을 막아 항구 입구에서 기관이 멈췄던 아찔한 순간 방파제로 떠밀려가던 배 위에서 그는 다시 한번 바다의 무서움을 실감했다.
다행히 동료들과 함께 충돌 위기를 넘긴 뒤 그는 비만 오면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천생 선장이었다. 이제 우 선장은 두 번째 정년을 맞았다. 한평생 기상 특보와 태풍 소식에 가슴 졸이며 살았던 그는 이제 스스로를 '청풍거사(淸風居士)'라 부르기로 했다.
"구속 없이 바람처럼 살고 싶습니다. 평생 조직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었죠. 이제는 선비들이 즐기던 문(文)·사(史)·철(哲)을 가까이해 욕심 없이 조용히 삶을 관조하려 합니다. 어획량이 줄어 활기를 잃어가는 바다를 보면 안타깝지만 제가 남긴 항적이 영덕 바다를 지키는 작은 초석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영덕누리호와 함께한 7년 그리고 바다와 함께한 45년. 우병철 선장의 발자취는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대한민국 해양 행정의 살아 있는 역사다.
파도 위에서 수만 시간을 견뎌낸 노(老)선장이 이제 조용히 닻을 내린다. 그러나 그의 항해는 끝난 것이 아니다. 거친 파도 대신 책장을 넘기고 조타기 대신 펜을 잡는 그의 새로운 항해는 이제 막 평온한 바람을 타고 시작되고 있다.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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