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 회원들이 낙화담 소나무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지난 8일 아침 일찍 지역 문화재 탐방단인 상사화를 따라 나섰다. 상사화는 '상주를 사랑하는 화려한 백수'의 약어다. 교육장과 상주시의원·공무원·대학교수·공공기관 임직원 등으로 구성된 모임이다. 모두 60대 중반이 넘었으니 직함 앞에 '전직'이 붙는다. 그동안 각 분야에서 일하느라 주변을 둘러 볼 여유가 없었던 소위 60·70들이다.
현역에서 물러난 이들은 문화원과 향교 등에서 지역의 역사연구와 문화진흥에 힘쓰고 있다. 활동하는 범위가 겹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종종 만나게 되고 공통의 관심사인 지역 문화재를 답사하고 확인하는 모임이 만들어졌다. 회장은 이맹호 전 상주시의회 부의장이 맡고 문화재 답사 안내자 역할은 김광희 상주문화관광해설사가 담당하게 됐다.
초기에는 일정한 계획 없이 시간 되는대로 주변의 문화재를 찾았으나, 회원이 늘고 문화재·풍수·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합류함에 따라 월 1회 문화재 답사를 원칙으로 세웠다. 또 지역의 문화재를 가능한 한 모두 찾아 보자는 취지에서 상주시 24개 읍·면·동을 지역별로 나눠 탐방하기로 했다.
지난 4월 낙동·중동·사벌면을 답사한 상사화의 이달 방문지는 화동면과 화서면이었다. 상주시내에서 화동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의터재를 넘어야 한다. 신의터재는 백두대간 마루금에 위치하고 있어 낙동강 수계와 금강수계를 가르며 행정경계로는 화동면 어산리에, 법정경계로는 화동면 선교리에 속한다. 신의터는 신의(新義) 고개(峙)라는 의미인데 여기에 고개(재)라는 말이 한 번 더 붙은 것이다. 상주시는 1996년 신의터재라는 표지석을 세웠는데 이후 화동면 산악회와 산림청·지명위원회 등이 '신의티'·'신의터재' 등의 표지석과 설명문을 나름대로 세워 놓았다.
일행은 신의터재를 넘어 화동면 판곡리 낙화담(落花潭)을 방문했다. 낙화담은 김준신의사 제단비가 서 있는 곳의 못이다. 김준신은 판곡리에 살던 시골 선비인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상주읍성을 방어하였으며, 상주 최초의 의병장으로 지역의 여러 전투에 참전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상주 북천(北川)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전사, 상주시 무양동의 충의단에 배향돼 있다.
상사화 회원들이 낙화담 앞에서 소나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낙화담은 판곡리의 안산인 백화산(白華山)이 화성을 띠고 있어 이 화기를 중화시키기 위해 조성한 못이라고 전해진다. 낙화담이라는 이름은 왜적들이 의병장 김준신의 일족을 학살하려 하자 부녀자들이 연못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낙화담 중앙에는 작은 섬이 있으며 그 가운데에 경북도 기념물인 수령 500여 년의 소나무가 서 있다. 수고 8m에 흉고 둘레 230cm의 이 소나무는 생육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축 늘어진 수관이 자신이 서 있는 섬을 덮고도 남음이 있다.
상사화 회원들이 태봉산에서 김광희 해설사로부터 연산군 원자 금돌이 태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김광희 해설사로부터 김준신의사와 낙화담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이웃에 있는 도안서원을 보고 화서면 상현리 태봉산에 있는 연산군 원자 금돌이(金乭伊) 태실을 답사했다. 연산군의 큰아들인 그가 태어났을 당시에는 전국의 관상감이 나서서 명당을 찾아 태실 자리로 삼았을 것이나 연산군이 축출된 후 방치됐다가 근년 들어 전주이씨 문중에서 태실과 태실비를 정비하였으며, 상주시는 이 주변을 공원화했다.
상사화 일행은 이후 지방문화재인 소재 노수신 사당과 묘소, 어만각 등을 답사하고 5월 향토유적지 답사를 마쳤다. 글·사진=이하수기자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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