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설 체육팀장
반신욕기를 사려고 온라인 검색창을 두드리던 중 흥미로운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2026 북중미 월드컵 태극전사들이 미국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 훈련장에서 이동식 욕조에 몸을 담그고 40℃ 열탕 목욕을 하는 풍경. '대구의 아들' 배준호와 잉글랜드 버밍엄 시티FC의 백승호 선수가 한낮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열탕에 몸을 담근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21세기 월드컵 무대를 앞두고 웬 '지옥훈련'인가 싶어 헛웃음이 났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조별 리그가 펼쳐지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와 몬테레이는 고온 환경으로 악명이 높다. 특히 분지 지형인 몬테레이는 한낮 평균 기온이 36℃에 육박한다. 낮에는 타들어 가는 더위로 숨이 턱 막힌다. 해가 져도 공기가 뜨겁고 끈적하다. 선수들의 열탕욕은 일종의 열 적응 훈련인 셈이다. 운동 직후 올라간 체온을 열탕 속에서 유지하면 무더위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게 대표팀 수석 주치의의 설명이다.
같은 시각, 이웃 나라 일본 축구대표팀 훈련장에는 낯선 장면이 펼쳐졌다. 일본축구협회가 U-19(19세 이하) 대표팀 유망주들을 성인 국대들의 훈련 파트너로 대동하기로 한 것. 2028 LA올림픽과 2030 월드컵 출전을 꿈꾸는 기대주들에게 월드컵 현장 분위기와 세계 최고 수준의 축구 경기를 직접 경험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100년 구상'을 추진중인 일본 축구의 특별한 조기교육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2050년 월드컵 개최와 우승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18 러시아월드컵부터 유망주 대표팀을 월드컵 사전 캠프에 훈련 파트너로 파견했다. 독일 FC바이에른 뮌헨에서 뛰는 이토 히로키. 일본의 국가대표 수비수인 그도 유스팀 출신으로 월드컵 현장을 미리 경험했다.
물론, 열탕욕은 철저하게 의학·과학적 데이터에 기반한 현지 적응 전술이다. 맹목적인 정신 훈련이겠는가. 멕시코의 어마어마한 더위 속에서 단 1승이라도 따내기 위한 스태프들의 눈물겨운 임기응변이자 최선의 처방이다. 하지만 일회성 처방의 유효 기간은 이번 대회 최종전 휘슬이 울릴 때까지다.
일본은 어떤가. 축협이 유망주들에게 쏟아붓는 시간과 돈은 이번 대회 성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당장의 16강, 8강이라는 달콤한 열매 대신 4년 뒤, 8년 뒤 한창 전성기를 맞이할 미래 세대에게 '월드컵의 공기'라는 보이지 않는 자산을 미리 주입하는 것이다. 대한민국과 일본 축구의 격차, 바로 이 지점에서 벌어지고 있다.
눈앞의 성과에만 매몰된 한국 축구의 눈먼 사각지대는 비단 선수 육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한국 축구 심판은 이번 월드컵 대회에 한 명도 배정되지 않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김영주 주심이 그라운드를 밟은 후 전멸 상태다. 전세계 48개국에서 심판 170명이 선발됐지만, 이 명단에서 한국만 쏙 빠졌다.
축협에 등록된 우리나라 심판 인원은 무려 8천745명. 하지만 이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심판 지도자 양성 체계는 전무하다. 놀랍다. 현장의 땀방울을 단기 성적으로만 소모하는 대한민국 축구 행정의 또다른 민낯이다.
한국 축구에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100년을 내다보는 냉철한 시스템이다. 투혼의 유효기간은 짧고, 시스템의 생명은 길다. 이제는 한국 축구도 뜨거운 맹목에서 벗어나 차가운 미래를 설계해야 할 때다. '포스트 정몽규 시대'를 지탱할 시스템 구축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효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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