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승규 사회2팀장
암 치료 기준이 바뀌고 있다. 예전엔 종양을 얼마나 없애느냐가 핵심이었다. 이제는 그 이후가 더 중요해졌다. 환자가 치료 뒤 어떤 몸으로 일상에 복귀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 생존율만으로 암 진료의 수준을 평가하던 시대는 지났다.
계명대 동산의료원이 비수도권 최초 양성자치료센터를 갖춘 신축 암병원 건립에 착수했다. 계명대 동산병원에 지하 5층·지상 5층 규모로 조성되며, 2029년 첫 진료를 목표로 한다. 최근 열린 설계용역 착수 보고회는 이 구상이 청사진을 넘어 실제 공정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줬다. 지역 암 치료의 새 인프라가 말이 아니라 일정표 위에 오른 셈이다.
이 사업을 고가 의료장비 도입으로만 보면 본질을 놓친다. 양성자치료의 핵심은 더 강한 공격이 아니다. 덜 손상시키는 정밀성이다. 암 조직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정상 조직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특히 소아암, 두경부암, 간암, 폐암처럼 주요 장기와 인접한 암에서는 치료 후 후유증이 환자의 남은 삶을 좌우한다. 앞으로 암 진료의 역량은 종양을 제거한 뒤 무엇을 얼마나 보존했느냐로 판가름 날 것이다.
그래서 동산의료원의 선택은 가볍지 않다. 경영 압박과 인력난, 수도권 쏠림으로 지역 대학병원들이 보수적 운영에 내몰리는 현실에서 막대한 비용과 긴 준비 기간이 필요한 양성자치료센터 추진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다.
물론 최첨단 치료기 한 대가 환자의 발길을 곧장 돌려세우지는 않는다. 의료진의 숙련도, 다학제 협진, 사후 관리 체계가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결국 환자가 선택하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신뢰다.
여기서 성패가 갈린다. '비수도권 최초'라는 수식어는 화려하다. 그러나 간판이 환자를 살리지는 않는다. 생명을 지키는 것은 훈련된 인력이다. 정교한 프로토콜, 신속한 판단, 축적된 임상 데이터가 뒤따라야 한다. 이를 갖추면 대구경북 암 진료의 지형은 달라질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값비싼 상징물 하나로 남을 뿐이다.
이 사업은 한 의료기관의 투자로만 볼 일이 아니다. 제대로 작동하면 대구경북 전체의 중증의료 자산이 된다. 암 환자에게는 수도권행을 대신할 선택지가 생긴다. 지역 의료진에게는 고난도 진료 경험이 축적된다. 연구와 임상이 결합하면 의학물리, 의료영상, 인공지능, 의료기기 산업으로도 파급될 수 있다. 병원 안의 치료실이 지역 첨단의료 생태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양성자치료센터는 장비를 들여놓는 순간 끝나는 사업이 아니다. 전문 인력 양성과 임상 데이터 축적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표준화된 진료 기준도 세워야 한다. 환자가 제때 진단받고, 제때 의뢰되고, 제때 치료받을 수 있는 연계 체계도 필요하다. 그래야 첨단 장비를 보유한 병원을 넘어, 환자가 믿고 찾는 치료 시스템이 될 수 있다.
그 책임을 병원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수도권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현실을 걱정한다면, 지역에서도 수준 높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가 인재 양성, 연구 지원, 보상 체계, 접근성 개선을 함께 설계해야 하는 이유다.
장비는 문을 열 뿐이다. 그 문을 지나 지역 암 진료의 수준을 실제로 끌어올리는 것은 동산의료원의 숙제다. 그러나 그 길을 병원 혼자 걷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도전이 고가 장비의 과시로 끝날지, 대구경북 중증의료의 새 기준이 될지는 이제부터의 실행에 달려 있다.
강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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