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하예 정치공동체 폴티 대표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그런데 끝나지 않았다.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투표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은 서울 잠실 투표소에 이어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주변에 모였다. 일부 참가자들은 출입구를 막고 투표함 반출을 감시하며 밤샘 시위를 이어 갔다. 현장에는 '참정권 보장'과 함께 '부정선거'와 '재선거'라고 적힌 손팻말이 등장했다. 선거관리의 잘못을 규명하라는 요구와 선거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이 뒤섞인 것이다.
재선거 시위를 바라보는 입장은 크게 네 유형으로 나뉘는 것 같다. 선관위 불신에 공감해 시위에 마음을 보태는 공감·동참형, 선관위 비판에는 공감하지만 부정선거 주장에 흡수될까 망설이는 혼란·유보형, 시위를 선거 불복이나 진영 동원으로 보는 거부·비판형, 반복되는 거리정치에 지쳐 관심을 끊는 무관심·피로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재선거 시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첫째, 시위에 참여한 사람과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을 구분해야 한다. 올림픽공원에는 투표하지 못한 시민, 선관위의 무능에 분노한 시민, 절차 검증을 요구하는 시민, 선거 결과를 의심하는 시민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참가자 전체를 부정선거론자나 특정 진영의 지지자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 항의할 권리는 존중하되 각각의 주장은 근거와 내용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둘째, 선관위에 책임을 묻는 일과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일은 구분해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시민이 투표하지 못했다면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참정권 침해다. 그러나 선거관리에 중대한 잘못이 있었다는 사실이 곧바로 선거 전체가 조작됐거나 모든 표를 무효로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재선거를 요구하려면 행정 실패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와 법적 판단이 뒷받침돼야 한다.
셋째, 참정권을 선거 당일의 '한 표'에만 가두어서는 안 된다. 참정권 운동은 배제된 시민을 정치 공동체 안으로 포함해 온 과정이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온전한 한 표를 행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경사로나 엘리베이터가 없어 투표소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점자 공보와 수어통역 등 필요한 선거 정보를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참정권은 투표권뿐 아니라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설명을 요구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조직할 권리까지 포함한다. 이번 사태 역시 시민이 정당과 정치인을 통해 요구를 제기하고, 정치적 결사체와 토론의 장을 만들어 가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
6·3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정치는 끝나지 않는다. 허승규 안동시의원은 녹색당 창당 14년 만에 나온 첫 공직선거 당선자다. 경북 안동에서 세 번째 도전 끝에 당선된 허 의원은 "정당을 넘어 공존과 협력의 정치문화를 아래에서부터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보수세가 강한 지역에서 소수정당 후보로 당선됐지만 자신의 승리를 상대를 지우는 일로 해석하지 않았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시민까지 대표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허승규 의원의 당선 소감은 한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 준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곧 선거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서로 다른 시민이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하며 하나의 정치 공동체 안에서 공존하도록 만드는 것 또한 민주주의다. 재선거 시위를 바라보는 당신, 선거 이후 어떤 정치와 민주주의의 장을 함께 만들어 갈 것인지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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