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태백산 호랑이’의 기개…영덕 축산면 신돌석 장군 유적지와 생가

  • 남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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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04 16:23  |  발행일 2026-07-04
한말 최초의 평민 의병장 장산 신돌석의 삶과 숨결이 깃든 구국의 성지
7번 국도변 푸른 고래산 자락에 자리한 사당 ‘충의사’와 복원된 초가 생가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 보면 푸른 동해를 우측에 두고 영덕읍을 지나 축산면 도곡리에 접어들면 일제의 침략에 온몸으로 맞섰던 '태백산 호랑이' 장산(莊山) 신돌석 장군(1878~1908)의 유적지와 생가가 있는 곳이 나온다.


그는 구한말 외세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선 수많은 의병 가운데 신분제의 두터운 벽을 부수고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 인물이다. 대게와 푸른 바다의 고장으로만 익숙했던 경북 영덕의 고요한 산자락에는 장군의 붉은 충혼과 애국 정신이 고스란히 숨 쉬고 있는 신돌석 장군 유적지와 생가를 찾아 걸어보았다.


신돌석 장군 기념관의 입구에 들어서면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장군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당당하고 기백 넘치는 청동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남두백 기자>

신돌석 장군 기념관의 입구에 들어서면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장군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당당하고 기백 넘치는 청동 흉상이 자리하고 있다. <남두백 기자>

■고래산 자락에 울려 퍼지는 호국의 메아리


도곡리 국도변 우측에 넓게 조성된 신돌석 장군 유적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정갈하게 다듬어진 외삼문과 내삼문이 답사객을 맞이한다. 태백산맥의 준령인 고래산 자락의 아늑한 품에 안긴 이곳은 1999년 약 1만 6천 ㎡ 규모로 조성되어 장군의 넋을 기리는 영덕의 대표적인 호국 성지다.


유적지 중심에 위치한 기념관에는 장군의 출생부터 영릉의병진(暎陵義兵陣)의 활약상 그리고 안타까운 순국에 이르는 일대기가 입체적으로 전시되어 있다. 을미사변 이후 19세의 나이로 처음 의병을 일으키고 을사늑약 이후 3천여 명의 의병을 이끌며 동해안과 태백산맥 일대 게릴라전을 승리로 이끈 전략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화승총, 창검류 같은 의병들의 무기와 일제의 잔혹한 처결 문서 등 당시의 만행을 알리는 역사적 사료들을 둘러보며 당시 동해안과 태백산맥을 무대로 신출귀몰했던 전술의 현장을 생생히 그려볼 수 있다.


계단을 올라 외삼문과 내삼문을 통과하면 장군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진 충의사(忠毅祠)를 마주하게 된다. 사당 문을 열면 호랑이 가죽 옷을 입고 호기로운 기상을 뿜어내는 장군의 영정이 시선을 압도한다.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분노해 영해 의병진을 조직했던 청년 신돌석의 매서운 눈빛이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영덕 신돌석 장군 유적지 사당(충의사) 구역에서 내려다본 외삼문(경의문)과 주변 경내의 전경. 사당을 보조하는 부속 건물로 배치된 맞배지붕 양식의 외삼문은 유적지 성역화 공간의 바깥 출입문 역할을 한다. <남두백 기자>

영덕 신돌석 장군 유적지 사당(충의사) 구역에서 내려다본 '외삼문(경의문)'과 주변 경내의 전경. 사당을 보조하는 부속 건물로 배치된 맞배지붕 양식의 외삼문은 유적지 성역화 공간의 바깥 출입문 역할을 한다. <남두백 기자>

장군의 먼 외손인 최영종 도곡2리 이장(62)은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 신돌석 장군님은 마을의 가장 큰 자부심이자 뿌리입니다"라면서 "평민출신이기에 다른 의병장들보다 저평가 되어 있는것이 안타깝지만 이곳 유적지의 모든게 다 의미를 두고 조성됐다"라고 말했다.


사당을 내려오면 넓은 마당 한편에는 장군이 힘을 기르기 위해 들었다는 전설 속 '들돌'을 재현한 돌 들기 체험장이 있다. 남다른 기개와 천하장사급 힘을 가졌던 평민 대장의 인간적인 면모를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다.


꽃다운 나이에 이곳으로 시집온 신일섭씨(89)는 "결혼 후 남편과 시댁 어르신들은 신돌석 장군에 대한 자랑과 자부심이 대단했다"라며"너무 오래전 일이라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한다" 라고 회상했다.


1. 신돌석 장군 유적지 성역화 공간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당인 충의사(忠義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양식으로 지어졌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단청이 기둥과 처마를 수놓고 있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시각적으로 말해준다. <남두백 기자>

1. 신돌석 장군 유적지 성역화 공간의 가장 핵심이 되는 사당인 '충의사(忠義祠)'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양식으로 지어졌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단청이 기둥과 처마를 수놓고 있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시각적으로 말해준다. <남두백 기자>

백문자씨(85)는 "그 당시 신돌석 장군과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우리 동네 평민 출신의 장군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라고 자랑했다.


■ 일제의 만행으로 불탔던 아픔, '복 드는' 복디미마을의 초가 생가


유적지를 나와 마을 안쪽 복디미마을 방향으로 약 1.6㎞를 들어가면 도곡2리 마을회관 앞에 소박하게 자리 잡은 장군의 생가에 닿는다. 이곳은 장군이 1878년 11월 3일 태어나 학문을 닦고 의병의 꿈을 키우던 공간이다. 원래의 생가는 장군의 부친이 1850년경에 지었으나 장군의 무장 투쟁에 보복하기 위해 1940년 일제 관원들이 의도적으로 방화하여 전소하는 아픔을 겪었다.


1. 영덕군 축산면 도곡 2리에 위치한 경상북도 기념물 신돌석장군 생가지(申乭石將軍生家址)의 전경. 1850년경 장군의 부친 신석주가 건립했던 옛 모습대로 복원한 초가 가옥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一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남두백 기자>

1. 영덕군 축산면 도곡 2리에 위치한 '경상북도 기념물 신돌석장군 생가지(申乭石將軍生家址)'의 전경. 1850년경 장군의 부친 신석주가 건립했던 옛 모습대로 복원한 초가 가옥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의 '一자형' 구조를 하고 있다. <남두백 기자>

최 이장은 "오래전부터 복이 드는 마을이란 뜻으로 전해졌고 옛기록에는 예주부사가 부임하면 가장 먼저 복듸미 마을을 방문했다는 기록이 있다"라며 마을 이름을 소개했다.


지금의 모습은 1995년 고증을 거쳐 안채와 사랑채, 창고 등이 정겨운 초가 형태로 복원된 것이다. 낮은 토담과 사리문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평범한 서민의 삶터가 펼쳐진다. 평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유인석 등 양반 유생 의병장들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으면서도 오직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텼던 인간 신돌석의 고독함이 처마 끝에 걸려 있는 듯하다. 그의 부대에는 유생과 관료 출신들도 부장으로 참여했다고 한다.


■"죽어도 죽지 않은 '태백산 호랑이'의 교훈을 품고 걷는 길


신돌석 장군 유적지 경내에 굳건히 서 있는 순국의사 신돌석장군 기념비(유허비)의 모습. 비석 전면에는 장군의 구국 충절을 기리는 문구가 한문으로 깊게 새겨져 있으며 상단은 전통적인 용 문양의 이수(螭首)로 장식되어 평민 의병장의 기개만큼이나 웅장한 느낌을 준다. <남두백 기자>

신돌석 장군 유적지 경내에 굳건히 서 있는 '순국의사 신돌석장군 기념비(유허비)'의 모습. 비석 전면에는 장군의 구국 충절을 기리는 문구가 한문으로 깊게 새겨져 있으며 상단은 전통적인 용 문양의 이수(螭首)로 장식되어 평민 의병장의 기개만큼이나 웅장한 느낌을 준다. <남두백 기자>

1908년 겨울, 일제의 촘촘한 포위망을 피해 영양과 영덕을 넘나들던 장군은 안타깝게도 현상금을 노린 이들의 배신으로 30세의 젊은 나이에 비극적인 순국을 맞이했다. 장군이 떠난 뒤 부인은 가난과 고통 속에서 화전을 일구며 비참한 삶을 살았고 대한민국 정부는 광복 후 17년이 지난 1962년에야 장군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유적지를 현장 관리하는 공무원 고재민씨는 "봄·가을과 방학때면 가족단위의 방문객이 많이 찾는다" 라며 "방문객 대부분이 평민출신 의병장이라는 사실에 놀라워 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인다"라고 말했다.


"시대의 운수가 좋지 않아 참혹하게 죽었으나 후일 하늘에 해가 다시 밝아질 것이니, 그대는 죽어도 죽지 않은 것일세." 그의 죽음을 애도했던 옛 사람들의 말처럼 장군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숭고한 나라 사랑의 정신과 공동체적 가치는 주민들의 일상 속에 현재까지 그대로 뿌리내리고 있다.<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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