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제철 사람

  • 신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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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7-07 15:05  |  수정 2026-07-08 09:12  |  발행일 2026-07-08
신보라 소설가

신보라 소설가

수박 향이 나기 시작하면 여름이 왔다는 것을 안다. 굳이 달력을 확인하지 않는다. 식탁 위에 올라오는 음식은 계절을 가장 먼저 알고 있으니까.


우리는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다. 그 시기에 가장 알맞은 햇빛을 받고, 가장 적당한 비를 맞으며 자란 것들이니까. 억지로 계절을 앞당겨 키운 것보다 향이 진하고 맛이 깊다. 그래서 사람들은 해마다 같은 계절이 오면 같은 음식을 기다린다. 기다림 끝에 만나는 맛이다.


우리도 그럴까.


모든 사람에게는 제철이 있다. 너무 일찍 꺼내 쓴 삶은 아직 덜 익은 과일처럼 떫다. 반대로 너무 오래 묵힌 삶은 향을 잃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소설가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잘 익는 순간을 기다리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익는 것은 없다. 제철을 맞기 전까지 나무의 가지를 치고, 줄기를 기둥에 묶고, 벌레를 잡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수확의 계절이 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노고의 시간들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삶은 달콤하게 익게 될 것이다.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일을 좋아한다. 봄에는 두릅과 냉이를, 여름에는 수박과 복숭아를, 가을에는 단감과 배를, 겨울에는 감자와 귤을 만난다. 계절은 늘 같은 자리에 돌아오지만, 그 맛은 해마다 조금씩 다르지 않은가.


우리는 같은 사랑을 하고, 같은 이별을 하고, 같은 슬픔을 느껴도 올해의 우리는 지난해의 우리와는 다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각각의 계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는 것.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면 좋은 계절을 보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고 싶대도 좋은 계절을 보내야 한다. 많이 보고, 많이 걷고, 많이 기다리는 일. 그리고 깊은 숨을 들이켜 냄새를 맡는 일. 내게 있어 어쩌면 그것이 가장 오래가는 좋은 문장을 만드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문학 역시 제철이 있다는 것. 스무 살에 읽었던 어떤 문장은 서른이 넘어 문득 마음을 파고들기도 하고, 오래전 읽었던 책은 펼칠 때마다 전혀 다른 순간들을 보여준다. 책은 변하지 않는다. 계절이 그 틈을 통과하는 것이다.


나는 어느 제철 사람인가. 나는 어느 계절에 가장 알맞게 익는 사람인가.


올여름 수박을 한입 베어물 때, 그 달콤함과 시원함을 오래 기억해 두었으면 좋겠다. 언젠가 그 맛이 소설의 문장으로, 삶으로, 다른 사람으로 다시 익어 우리 앞에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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