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상승세와 투자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1월 11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경제·주식투자 코너에서 시민들이 투자 관련 서적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자본 증식의 중심은 '노동'이었다. 성실하게 일해서 받은 월급을 꼬박꼬박 저축하면 결혼을 하고 집을 마련하는 등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흐름이 변화하고 있다. 물가와 집값 등이 임금 상승 속도를 이미 앞질렀기 때문이다. '노동'만으로는 안정적인 자산을 늘리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러한 가운데 주식, 가상자산, 금, 부동산 등 투자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투자하지 않으면 일을 해도 가난해진다"는 생각에서다. 이른바 '신(新)근로빈곤' 시대다. 특히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국내증시가 폭등하면서 투자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투자하지 않으면 일을 해도 가난해진다"는 이른바 '신(新)근로빈곤' 시대 인식이 확산하면서 주식·금융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노동 vs 투자 갭
대구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10년 차 회사원 이태준(가명·38)씨는 월 300만원 초·중반의 급여를 받고 있다. 주식, 가상자산, 금 등에 투자는 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주식 투자 하면 패가망신한다"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기 때문이다. 대신 월급을 받으면 한 달 평균 80만~100만원씩 꼬박꼬박 예·적금에 넣는다. 직장생활 10년 동안 모은 돈은 약 1억원 정도다. 그러나 최근에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주변에서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지금이라도 투자를 시작해야 하나 생각 중이다.
이씨는 "돈을 모으는 제일 쉬운 방법이 예·적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따로 투자를 하고 있지는 않다. 은행에서 괜찮은 금리 상품이 나오면 갈아타는 정도다"면서 "하지만 갈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이렇게 돈을 모아서 어느 세월에 결혼을 하고 집을 살 수 있을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주식에 투자하기에는 여전히 불안하다. 부동산 투자를 하고 싶어도 모은 돈이 적다 보니 쉽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같은 대구에 사는 직장인 김가영(가명·여·37)씨도 이씨와 비슷한 임금을 받는다. 하지만 소득을 관리하는 방식은 다르다. 김씨는 2022년부터 주식 투자를 하고 있다. 매달 일정한 금액을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증시 상황을 보며 종목을 골라 매수하는 편이다. 김씨가 투자를 시작한 이유는 월급만으로는 자산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적은 월급이라도 투자로 자산을 불려야 경제적 여유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초기 주식투자로 손실을 본 후 현재는 우량주에만 투자하고 있다. 최근 코스피 호황을 이끌고 있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보유 중이다. 평균 수익률은 170% 정도로 5천만원 정도 수익을 봤다. 주식, 적금 등을 합치면 약 1억7천만원의 자산을 형성했다.
김씨는 "최종 목표는 내 명의 집을 매매하는 것이다. 그러나 월급만으로는 집을 사는 게 너무 어렵다는 것을 느낀 뒤로는 투자를 시작했다"면서 "소액이다 보니 목표까지는 아직 멀지만, 이렇게 조금씩 하다 보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투자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코스피 9,000 기념 타종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노동소득보다 빠른 투자소득
최근 들어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 속도가 노동 소득을 크게 앞질렀다. 임금도 꾸준히 오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12일 국가통계포털(KOSIS) '월평균 임금 및 임금상승률'에 따르면, 최근 5년 대구 지역 상용근로자의 월평균 임금 상승률은 3.9%다. 2025년 월평균 임금은 355만4천390원으로 전년보다 3.1% 증가했다. 2024년은 344만7천916원(3.4%), 2023년은 333만5천313원(4.2%), 2022년은 320만2천101원(3.5%), 2021년은 309만4천139원(5.3%)이다.
매년 꾸준하게 임금이 상승하고 있지만, 물가와 집값 상승을 감안하면 근로 소득만으로는 자산을 크게 늘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투자 시장은 다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코스피가 호황을 맞으며 큰 상승폭을 보이는 중이다.
코스피 올해 첫 거래일(지난 1월2일) 기준 종가는 4,309.63이다. 지난 10일 종가 기준 7,475.94로 73.47%나 상승했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다음 날로 지수를 분석하면 증가폭은 더 늘어난다. 지난해 6월4일 종가 기준 코스피는 2,770.84다. 약 13개월 만에 코스피가 169.81% 상승했다.
증시 상승을 이끈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상승률은 더 높다. 삼성전자는 올해 들어 54.91%, 취임 이후에는 393.08% 상승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 220.01%, 취임 이후에는 902.30% 급등했다.
단순 비교만 해도 차이는 뚜렷하다. 이재명 대통령 취임 이후 100만원을 예·적금에 넣었다면, 원금 100만원에 3% 정도의 이자만 더해진다. 반면 같은 금액을 코스피에 투자했다면 코스피 상승률(169.81%) 기준 평가금액은 약 270만원으로 늘어난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약 2배 이상 차이가 발생한다.
◆ 전문가 "투자에 관심 갖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
전문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보다 투자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허창덕 영남대 교수(사회학과)는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와 금융에 대한 교육이 부족했다. 당시에는 돈의 가치를 중시하기보다는 체면과 명분이 중요했다"면서 "장사나 투자도 부정적으로 보는 문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회·경제적 변화를 겪으면서 '투자'와 '돈'에 대한 인식이 변하기 시작했다. 허 교수는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경제적 가치가 사회 전반에서 훨씬 중요해졌다"면서 "몇 년 전부터는 비트코인, 주식 투자 성공 사례를 이야기하는 게 당연한 문화로 변화했다. 이런 변화는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 살기보다는 자본가로 살아가고자 하는 문화로 자리하게 됐다"고 했다.
자본의 시대에서 노동의 가치가 점차 존받지 못하는 이유도 '인식의 변화'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으로 얻는 소득보다 투자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자산을 늘려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그러다 보니 젊은 세대에서는 노동의 가치에 무게 중심을 두지 않게 된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또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도록 노동환경과 보상이 함께 개선돼야 한다"면서 "노동에서 투자를 통한 자산 증식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다만 '사회적 가치'에 대한 교육은 필수적이라고 했다. 그는 "미국 같은 경우 어렸을 때부터 투자를 비롯한 경제, 금융 공부를 한다. 우리도 이러한 교육시스템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돈만 있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다. 금융 교육과 함께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균형 있게 바라보는 교육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정지윤
영남일보 정지윤 기자입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