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자 원평동 8통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원평동 8통은 고려병원 인근에서 구미종합터미널 안쪽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구도심이다. 박용기기자
"힘든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떻게 그냥 지나갑니까. 무엇이 불편한지 묻고, 도움받을 수 있는 곳에 연결해줘야지요."
지난 3일 구미시 원평동 행정복지센터에서 만난 임미자 원평동 8통장은 자신이 통장 일을 계속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그에게 통장의 일은 쓰레기봉투와 행정안내문을 전달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문 안에 가려진 주민의 사정을 살피고 필요한 복지서비스로 이어주는 일까지가 통장의 몫이다.
원평동 8통은 고려병원 인근에서 구미종합터미널 안쪽으로 이어지는 오래된 구도심이다. 대규모 아파트보다 오래된 주택과 상가, 작은 방이 많고, 홀로 살거나 형편이 어려운 주민도 적지 않다.
이곳에서 약 50년을 산 임 통장은 어느 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아프고 생활이 어려운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쓰레기봉투와 행정안내문을 들고 집집마다 다닐 때면 주민의 표정과 생활 형편을 살피고 불편한 곳은 없는지 한 번 더 묻는다.
얼마 전에는 심장 수술을 앞둔 홀몸 주민이 치료 장치를 몸에 찬 채 생활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수술을 받고 돌아오면 혼자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정리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임 통장은 식사와 청소 등을 지원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알아보고 연결했다.
하지만 정작 도움이 절실한 주민일수록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방 안에서 인기척이 들려도 응답하지 않고, 어려운 사정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주민도 있다.
임 통장은 "요즘은 사람이 방 안에 있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며 "일단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야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동 행정복지센터나 복지기관에도 연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최근 가장 마음을 쏟는 사람은 교통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70대 홀몸 주민이다. 임 통장이 운영했던 숙박업소에서 수년째 생활해온 세입자로, 가까이에서 돌봐줄 가족이 없는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난달 초 사고 소식을 들은 임 통장은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이 주민은 의식을 잃은 채 온몸이 심하게 부어 있었고, 곁에는 필요한 물품을 챙겨줄 보호자도 없었다. 병원에서 환자와의 관계를 묻자 그는 "집주인"이라고 답한 뒤 필요한 물품은 자신이 챙기겠다고 했다.
한 달가량 지난 현재 이 주민은 목소리에 반응하는 듯하지만 말은 하지 못한다고 했다. 임 통장은 병원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필요한 물품을 사비로 마련해 가져간다. 면회 때는 손과 얼굴, 발을 닦아주며 말을 건넨다.
이날도 병원을 다녀온 임 통장은 "'저 알아보겠어요?'라고 물었더니 싱긋 웃는 듯했다"며 "의사소통은 어렵지만 회복되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이어 "아무도 찾아갈 사람이 없는데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해온 임 통장은 복지관과 불교단체 등을 통해 23년 동안 봉사를 이어왔다. 홀로 살던 어르신 한 명과 인연을 맺어 7~8년 동안 돌보며 마지막까지 곁을 지키기도 했다.
통장을 맡은 계기는 "우리 동네를 위해 일해 보라"는 지인의 권유였다.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어 어렵다며 여러 차례 고사했지만 결국 받아들였고, 어느덧 4년째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업무가 벅차 한때 그만둘 생각도 했다. 하지만 동장을 비롯한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이 직접 골목을 돌며 현장을 살피고, 통장들이 알린 쓰레기 문제를 곧바로 처리하면서 동네가 눈에 띄게 깨끗해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다잡았다. 행정복지센터를 나와 8통 지역을 함께 둘러본 임 통장은 "처음에는 일이 많아 힘들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가 달라지는 것을 보니 행정에 더 힘을 보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동네가 깨끗해지니 통장으로서 마음도 뿌듯했다"고 말했다.
이런 태도는 그가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기준인 '성실함'과도 맞닿아 있다. 임 통장은 "저는 누구든 열심히 사는 사람을 좋아한다. 생활력이 강하고 착하게 열심히 살면 다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며 "봉사시간을 따져본 적도 없다. 그냥 해야 할 일이면 했다. 주민들이 '수고한다'고 인사해줄 때 오히려 제가 더 힘을 얻는다"고 했다.
임 통장은 이날도 8통 골목을 걸으며 주민들의 안부를 살폈다. 눈에 들어온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필요한 도움과 이어주는 것, 그는 이 일을 통장의 가장 중요한 일로 받아들였다.
박용기
경북부에서 구미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게 묻고, 진실하게 기록하겠습니다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