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연당. 연못은 국담, 물 가운데는 석가산, 북쪽의 정자는 정원의 중심인 하환정이다. 오른쪽에 250년 수령의 곰솔 한 그루가 줄기를 뒤틀며 연못 쪽으로 드리워져 있다.
눈 닿는 곳마다 공장인데, 어찌 이리도 고요할까. 마을회관 앞 느티나무는 가슴에 금줄을 둘렀다. 비교적 날씬한 줄기가 그리 오래지 않은 연륜을 느끼게 하지만 곧기로는 본 중 으뜸이다. 정자 쉼터에 한 이국의 청년이 잠들어 있어 걸음을 줄여 흔들, 몸 기울여 골목을 들여다본다. 시원시원한 골목에는 연인도 있고,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오르는 아기 코끼리도 있고, 어린왕자와 여우도 있고, 눈도 내리고 낙엽도 지는데, 채색이 선명하여 더욱 적요하다. 아이보리 색 공동 창고 모서리에 '무기연당 가는 길' 안내판이 있다. 작은 논밭을 지나 짧게 이어지는 골목이지만 판석이 깔린 길 끝에 선 삼문이 세상과 동떨어진 위엄을 풍긴다.
무기마을 입구 아이보리 색 공동 창고 모서리에 '무기연당 가는 길' 안내판이 있다. 작은 논밭을 지나 짧게 이어지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곧 이다.
무기리 주씨고가의 솟을삼문. 국담의 충신정려와 아들 감은재의 효자정려가 나란히 걸린 충효쌍정려문이다.
◆ 무기리 주씨고가
삼문 가운데에 두 개의 붉은 정려가 걸려 있다. 하나는 충신 주재성(周宰成)의 정려이고, 또 하나는 효자 주도복(周道復)의 정려다. 주재성은 본관이 상주(尙州)로, 자는 성재(聖哉), 호는 국담(菊潭)이다. 주세붕(周世鵬)의 방손으로, 장례원판결사 주선원(周善元)의 증손이며, 할아버지는 사재감주부 주명헌(周明獻)이고, 아버지는 주각(周珏), 어머니는 광주노씨(光州盧氏)로 호군 노한석(盧漢錫)의 딸이다. 주재성은 영조 4년인 1728년에 일어난 이인좌의 난 때 의병을 일으키고 관군을 도와 난을 평정하는 데 일조하여 충신에 정려되었다. 주도복은 주재성의 아들로 어머니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마시게 하여 연명시킨 효자였다. 충효쌍정려가 걸린 이 집은 상주주씨 종가로 주씨고가라 불린다.
무기마을 골목은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마을은 17세기 중반 주명헌이 터를 잡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마을은 17세기 중반 주명헌이 터를 잡으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작대산(爵大山)에서 흘러온 산줄기를 등지고 칠원천(漆原川)을 앞에 둔 배산임수의 땅이다. 마을 이름을 언제부터 '무기'라고 불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마을 표지석에는 '무우기수(舞雩沂水)에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라 하여 판결사 주선원 공이 무기(舞沂)라고 지명을 지었다고 전해진다'라고 새겨져 있다. 공자의 제자 증점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다'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기수'는 공자가 살던 노나라 도성 남쪽의 작은 강 이름이고, '무우'는 기우제를 지내던 숭고한 터라고 알려져 있다. 그 '무우기수'를 줄여 '무기'라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상주주씨유래보'에는 '산정(山亭)골에서 발원된 계류가 마을 앞을 굽이쳐 흐르는 모양이 춤추는 형상이라고 무기(舞沂)라 이름 하였다고 전해온다'라는 내용이 있다. 지금 마을 앞 칠원천은 콘크리트로 곧게 정비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구불구불 흘렀을 게다.
무기연당의 입구인 한서문. '한서'는 '추운 곳에 머문다'는 뜻이니 즉, 벼슬이나 녹을 탐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겠다는 의미다.
대문을 지나면 마당이다. 정면에 중문이 있고 그 너머는 안채와 사당 영역이다. 주씨 후손의 살림이 정갈히 드러나 있어 안마당은 밟지 못하겠다. 왼쪽에는 사랑채인 감은재(感恩齋)가 있다. 주재성은 난이 평정된 후 분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고, 죽은 지 3년 후인 1746년에 영조로부터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겸경연찬찬관에 증직됐다. 주도복은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재를 짓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오른쪽에는 담장을 쌓고 일각문을 낸 정원 영역이 자리한다. 일각문에는 '한서문(寒棲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한서'는 '추운 곳에 머문다'는 뜻이니 즉, 벼슬이나 녹을 탐하지 않고 초야에 묻혀 살겠다는 의미다. 저 한서의 문 너머가 바로 주씨고가의 정원인 무기연당이다.
물 한가운데에 떠있는 석가산은 사각형이다. 희끗하고 판판한 돌에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 새겨져 있는데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매운 선비의 절개'를 뜻한다.
◆ 무기연당
사각의 연못이다. 석축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큼직한 연못이다. 이 연못은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후 복귀하던 군사들이 만들어 준 못이라 한다. 주재성은 연못의 이름을 '국담'이라 짓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예부터 국화는 군자의 높은 절개와 기품을 상징하였으니 연못의 주인은 스스로 군자의 뜻을 품은 것이겠다. 물 가운데에는 석가산(石假山)이 떠 있다. 처음에는 양심대(養心臺)라 했다. '마음을 기르는 곳'이다. 석가산은 사각형이다. 대개 평평한 돌을 쌓아 산을 올리고 가장자리 따라 괴석을 첩첩이 세운 모습이다. 마치 산을 지키듯 기립한 돌들은 자기가 지닌 견고성을 드러내고 있다. 산에는 나무도 자라고 풀도 자라고 꽃도 피었다. 가만 마주하면 이 세상이 아닌 듯하다. 희끗하고 판판한 돌에 '백세청풍(百世淸風)'이라 새겨져 있다. 이는 '영원토록 변치 않는 매운 선비의 절개'를 뜻하는데 세상을 등지고 절의를 지킨 백이숙제의 정신을 드러낸 것이다.
풍욕루의 경자 편액. 백운동 소수서원 죽계천변의 경자바위와 비슷해 아마도 주세붕의 필적을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연못 북쪽의 두 칸 정자는 하환정(何換亭)이다. 군인들이 떠난 뒤 주재성이 가장 먼저 지은 정자로 무기연당의 중심이다. '하환'은 '어찌 바꿀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고 안 바꾼다는 말이다. 이는 중국 남송 대복고(戴復古)의 시구절인 '삼공의 벼슬인들 이 강산과 바꿀소냐'에서 유래한다. 하환정 현판 옆에 원운 편액이 걸려 있다. '임금님께서 세 번 불렀으나 그것은 내 분수가 아니다/ 만사를 잊고 이곳에 와서 낮잠이나 잠이 족하다.' 원운은 주재성이 쓴 것으로 여겨진다. 실제 그는 관찰사 황선과 암행어사 박문수가 세 번이나 천거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그 옆에 하환정을 바라보며 자리한 정자는 풍욕루다. '바람으로 몸을 씻는 누각'으로 주재성의 4대손인 주상문이 1852년에 세웠다 한다. 마루 위에 커다란 '경(敬)'자가 걸려 있다. 백운동 소수서원 죽계천변의 경자바위(敬字岩)와 비슷해 아마도 주세붕의 필적을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풍욕루 남쪽에는 연못으로 내려서는 탁영석(濯纓石)이 있다. '탁영'은 전국시대 시인인 굴원의 시 '어부사'에 나오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 끈을 씻는다'에서 유래한다. 무기연당에 연은 없으나 물은 맑다.
연못 남쪽의 충효사 등은 20세기의 것이다. 무기연당은 연못을 만든 이후 하나씩 건물이 덧붙여지면서 오늘날까지 200여 년간 7대에 걸쳐 완성된 셈이다. 현재 무기연당은 국가 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옛 문헌에는 한서문 옆에 주재성의 아버지 주각이 어린 시절 심은 은행나무가 있다. 주재성은 아버지의 은행나무를 어루만지며 슬퍼했는데, 1716년 봄에 단을 북돋아 행단이라 하고 자주 서성였다 한다. 지금 은행나무는 없다. 대신 맞은편 자리에 아름드리 곰솔 한 그루가 줄기를 뒤틀며 연못 쪽으로 드리워져 있다. 약 250년 수령의 소나무라 한다. 소나무 곁에서 한서문을 바라보니 문 속에 감은재가 들어차 있다. 아아, 옛 정원은 뜻이 많아 무겁다. 머릿속을 휘저으니 무거운 것인데, 혹 품으면 가벼울 것인가. 하환정 앞 연못 석축에서 갑자기 흰뺨검둥오리가 나타났다. 돌 틈 사이에서 새끼들도 줄줄이 태어난다.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오리는 종종종 걸으며 힐끔힐끔 나를 보고 나는 살금살금 걸으며 흘끔 오리를 본다. 아아, 대복고가 낚싯대 드리운 뜻을, 주재성이 하환이라 한 뜻을 조금 알겠다.
글·사진=류혜숙 전문기자 archigoom@yeongnam.com
>>여행정보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창원, 마산 방향으로 가다 칠서IC에서 내린다. 칠서톨게이트 지나 칠서, 칠원방면으로 우회전, 무릉 사거리에서 창원, 칠원 방면으로 좌회전해 직진한다.칠원입구삼거리에서 12시 방향으로 나가 직진, 칠원 삼거리에서 11시 방향으로 나가 직진, 구산사거리에서 구산, 창원 방향 오른쪽으로 간다. 도로 아랫길로 내려가 굴다리에서 좌회전, 굴다리 통과하자마자 우회전해 칠원천 따라 조금 가면 무기마을 표석과 무기연당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마을 회관 앞에 주차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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