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보라 소설가
우리는 한 번쯤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다.
살아가는 동안 필연적으로 크고 작은 상실을 반복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잃고 나면 그 사람이 있었던 순간보다 앞으로 없을 순간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함께 먹지 못할 음식, 가지 못할 장소, 더는 듣고 느낄 수 없는 목소리와 냄새. 상실은 지나간 시간을 빼앗기보다는 오지 않을 시간을 덜컥 보여준다.
그런데 때로 우리는 한 번도 존재한 적 없는 사람을 잃고도 슬퍼한다.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읽고 있고, 보고 있는 가상의 인물이 죽었을 때다.
생각해보면 그건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태어난 적이 없으니 죽은 적도 없다. 장례식도 없고 남겨진 가족도 알 수 없다. 단지 한 작가가 몇 개의 문장으로 만들어낸 사람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꺼이 슬퍼한다.
책을 덮고 잠시 멍하니 있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에게 원망을 품기도 한다. 살려둘 수도 있었잖아. 굳이 죽여야 했을까. 마치 그 사람에게 다른 미래가 존재했던 것처럼.
우리는 소설을 읽는 동안 이상하리만큼 쉽게 허구의 삶에, 허구의 인물에게 마음을 내어준다. 어떤 인물이 외롭다고 하면 닿지 않는 다정한 마음을 건네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건 아마 현실에서는 평생 알 수 없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의 내부를 불과 몇 시간, 며칠 동안 통과한 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허구를 사실이라고 믿는 것이 아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잃어버릴 수 있을까.
무서운 꿈에서 깨어난 뒤 악몽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심장은 한동안 빠르게 뛴다. 오래전 사라진 장소를 생각하며 그리워하고 이미 끝난 일을 떠올리다 다시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우리의 감정은 그것이 실제인지 아닌지를 확인한 뒤에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문학이 바로 그 틈으로 들어온다.
이것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책을 덮으면 그 사람이 눈앞에서 사라질지 몰라도 이상하리만큼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있으니. 어쩌면 허구의 인물이 존재하는 곳은 책 안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누군가가 그 사람을 기억하는 동안, 그는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계속 살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번쯤 누군가를 잃어본 경험이 있다.
그 사람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어쩌면 그 다음의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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