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김천도역 부지였던 남산·황금동 일대 전경. 박광제 사진작가 제공
경북 김천을 얘기할 때 일찍부터 만개한 '시장경제'를 빼놓을 수 없고, 김천이 시장경제를 꽃피우기까지를 얘기하자면 조선조에 있었던 김천도역(金泉道驛)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김천도역은 경상·충청·전라도를 연결하는 도로·통신·물류 등의 국가기간망을 관장한 기관으로서, '국토내륙물류산업의 적지'로서 잠재된 김천의 DNA가 한껏 발현되게 하는 등 조선후기 김천이 전국 5대 시장 반열에 오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교통·상업도시 김천'의 향토사가 쓰이게 한 김천도역의 흔적은 몇 기의 비석과 몇 점의 문헌으로만 전해질 뿐이다. 김천 원도심 4개 동에 걸쳐 있을 정도로 넓었던 김천도역 부지를 채웠을 건물과 수많았을 유적은 신기루처럼 사라졌고, 그런 국가기관이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도 많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지역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 복원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의 배경이다.
조선은 세종조 때 전국을 44역도, 538속역 체계로 개편하면서 김천도를 신설했다. 이때 설치된 김천도역은 인근 구미·성주 지역과 멀게는 대구·고령 지역의 역까지 속역 17곳을 관할했다. 그 후 세조 때는 거창·함양·합천 지역의 역까지 포함해 21개 속역을, 19세기 말까지는 20개 속역을 거느리는 등 초대형 교통행정기관이자, 물류거점으로 기능했다. 김천도역 설치에는 영남과 기호지방(충청·경기도)을 잇는 길목이라는 지리적 이점에다, 낙동강과 연결되는 감천을 이용한 수운(水運) 기반까지 갖춘 김천의 입지적 여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병조(兵曹:현 국방부)에 속했던 김천도역은 긴급한 상황에서는 군사적 기능까지 하는 준군사시설이었다. 핵심 기능은 △조세 물자 및 공물 보관·운송(지방에서 징수된 공물을 서울로 이송하는 육로 운송의 중간지점으로서, 물류 거점 기능) △역로(驛路) 관리 △공무수행 지원(암행어사 등 국가에서 파견하는 관리들 업무지원 및 죄인 압송) △국가통신망 관리 및 군사정보 수집 전달(왕명 및 국가공문서(파발) 전달, 국방 관련 정보 등을 긴급 보고, 봉수대 유지관리, 무기 및 전시대비 물자 관리) 등 방대한 영역에 걸쳐 있다.
아울러 역둔전(驛屯田)을 경작하거나, 방앗간, 화물 운송 등의 사업을 통해 운영 경비 일부를 충당했다고 한다. 1804년 4월, 모친상을 당해 사임한 김낙일 김천도역 찰방(역장)이 작성한 해유중기(解由重記·사무를 인계할 때 전하는 문서나 장부)에 따르면 당시 역리 등 소속 인원만 1천450명에 이를 정도의 대형 기관이었다.
김천도역 목장이었던 김천초등학교 교정에는 이임(離任)한 찰방(역장)의 업적을 담은 '선정비' 4기가 서 있다. 박광제 사진작가 제공
김천도역이 김천의 시장기능 활성화에 기여한 결정적인 역할은 '국가기간 교통인프라 집중에 따른 물류·인적 네트워크의 폭발적 증가 효과'에서 찾을 수 있다. 김천도역은 △사통팔달 교통망 제공(도로망이 완비되면서 보부상과 상인들이 가장 안전하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유통로가 확보됐음) △상업 인프라 형성(공무수행자·여행객·상인을 위한 숙박 및 물류 시설인 원(院), 객주, 여각이 들어섰고, 이 시설들은 물품보관, 위탁판매, 금융거래 등의 거점으로 발전했음) △물류집산지 형성과 김천장 성장(남해안에서 낙동강을 통해 감천으로 들어온 수산물과 소금, 영남내륙의 농산물, 충청·경기의 공산품이 집중 거래됐고, 이 같은 물류 직접 효과가 김천장이 전국 5대 장시에 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음) 등의 효과를 안겨준 것이다.
이처럼 김천도역이 제공한 '교통·물류 인프라'는 민간의 상업활동과 결합하면서 김천이 조선후기 영남내륙의 대표적인 물류·상업의 거점도시로 성장하는 기반이 됐다는 것이다. '김천'이라는 지명도 처음엔 역명으로만 사용되다가 지명으로 굳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김천도역은 향토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다.
이러했던 김천도역은 1895년(고종32) 창설된 우정총국이 근대화된 통신·우편업무를 시행하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러나 김천도역이 뿌린 씨앗은 경부선 김천역~경부고속도로~KTX 김천구미역 등의 새로운 교통망 구축으로 피어나며 '교통도시 김천'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현재김천은 김천~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와 중부내륙철도 김천~문경 구간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다시 한번 한반도 내륙 십자(+)형 교통망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과거 영남과 기호를 잇던 김천의 '교통·물류 DNA'는 오늘날 광역철도망 확충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거의 없다시피 한 김천도역 유적을 두고 관리상태의 적절성 여부를 논할 수는 없다. 김천시민 곁에 남아 있는 유적은 김천도역 목장이었다는 김천초등학교 교정(4기)과 인근 남산공원(1기)에 흩어져 있는 '찰방선정비' 5기가 전부일 정도다.
송기동 김천문화원 사무국장은 "김천도역 부지는 현재 남산동 대부분과 성내·모암·황금동 일부분 등 원도심 일대에 펼쳐져 있었다"며 "부지 내에는 사무용, 숙박용, 공물창고, 마구간 등 건물 수십 채가 있었고, 역마를 관리하는 목장과 경작지, 수익용으로 운영한 대형 연자방앗간도 있었다"고 했다. 정확한 면적을 알 수는 없지만, 부지나 건물 규모에서 당시 김천 부동의 랜드마크가 아니었던가 한다.
송 국장은 "우정총국 개설과 때를 같이한 갑오개혁 직후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역참 제도가 폐지되고, 방치된 건물 등 시설물은 자연 붕괴되는 등 급격히 쇠락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05년 경부선 개통으로 김천의 신도심이 확장되면서 김천도역 부지는 자연스럽게 학교, 관공서, 주거용지 등으로 활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조명숙 김천시의원이 '영남역지' 등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조선시대 김천역. 1872년엔 다양한 용도의 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나, 우정총국이 창설되고 갑오개혁이 있었던 1895년에 이르러 건물 수효가 크게 줄어든 것을 알 수 있다. 조명숙 김천시의원 제공
이러한 가운데 시민사회 일각에선 김천도역에 내재된 지역 정체성과 문화상품으로서의 가치에 주목하고 있다. 조명숙 김천시의원은 활용방안에 대해 "김천의 교통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이를 축적하는 아카이브(archive·기록보관소) 작업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며 "연구된 자료가 아카이브로 남고, 그것을 전시·교육·홍보·관광 콘텐츠로 활용하는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같은 구조가 구축되면 신축하는 김천역사(驛舍)에 '길과 함께 성장한 김천'을 보여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도 바람직스럽다"며 "조선시대 역참에서 오늘의 철도교통도시에 이르기까지의 김천의 역사(歷史)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여준다면, 김천역은 김천이 어떻게 형성돼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조 의원은 "이를 위해 역사·교통사·고문헌·박물관 전시·아카이브 등 분야별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필요한 자료를 찾고, 신뢰성을 검증하고, 이를 오늘의 언어로 해석하는 일에 대한 전문성은 필수적 요소"라고 강조했다.
신축 김천역사에 과거 김천도역이 수행한 국가통신망 및 물류거점의 역사를 디지털 미디어아트로 구현한다면, 수많은 이용객에게 '교통도시 김천'의 정체성을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반면 송 국장은 "김천도역의 핵심 시설은 황금·남산동에 있었고, 현재 이곳엔 빈집이 많아 공간을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곳을 '교통박물관'으로 조성해 김천이 전통적인 상업과 교통의 도시임을 알리는 등 김천의 정체성을 살린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그는 "김천의 전성기를 열었던 김천도역을 활용한 각종 이벤트를 통해 침체된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남산·황금동 일대는 인구 유출과 고령화 영향으로 빈집 밀집도가 높다. 방치된 빈집은 도심 쇠퇴의 상징이지만, 발상을 전환하면 빈집을 활용해 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김천시의 도시재생사업에 '김천도역 복원 및 아카이브 조성'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작성연대 미상의 김천도 형지안(金泉道形止案)의 일부. 여기에서 '형지안'은 현황보고서라 할 수 있다. 당시 김천도역 및 속역의 인원현황 등이 기록돼 있다. 1998년, 일본의 한 대학에서 '한일 교통사 비교연구'를 하던 조병로 경기대 교수(현 명예교수)가 현지에서 촬영 원본을 어렵사리 구했다. 원본은 오사카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조명숙 김천시의원 제공
반면 김천이 상업도시로 성장한 배경에는 지리적 이점이 우위에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아울러 시장 활성화라는 화려한 성과 뒤에 숨겨진 역민(驛民)들의 희생과 제도적 경직성에 주목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김천의 지리적 이점을 극대화하고, 유통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촉매제'로서의 김천도역 역할은 인정한다.
박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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