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용의 교실에서 찾는 교육…성찰의 감수성

  • 신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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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8-27 18:40  |  수정 2026-08-28 09:31  |  발행일 2026-08-28
성찰의 감수성
신규용 대구 사월초 교사

신규용 대구 사월초 교사

교사로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면 교실이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도 참 다양한 아이들을 만납니다. 요구하는 것도, 말투도, 반응하는 방식도, 상상하는 것도 모두 다릅니다. 그래서 교사들은 늘 고민합니다. '우리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 다양성을 일괄적으로 똑같이 만들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창의성 교육이나 사고력 교육은 대부분 이 다양성을 긍정하고 자유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회에서 타인과 공존하며 살아가려면 도덕이나 규칙 등으로 개인의 자유가 통제되는 상황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 교육의 목표인 '바람직한 민주시민'은 바로 이 자율과 통제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조율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교사들은 우리 사회가 합의한 지식과 상식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고, 생활지도를 통해 학생을 훈육하기도 합니다. 지난 글에서 말했던 우리 마음 안에서 통제와 조율을 돕는 '마음의 저울'을 작동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상식적인 행동을 하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성찰하는 '반성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사고의 방향이 '자신'을 향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틀린 것은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점검하고 나의 결핍을 마주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피곤하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기에 이 피곤한 과정을 기꺼이 시작하도록 내면을 깨워주는 감각이 바로 '성찰의 감수성'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성찰의 감수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그 빈자리를 차지한 것은 오직 나의 손해에만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익의 감수성'입니다. 내가 불이익을 받았다고 느끼는 순간, 자신을 돌아보는 대신 "저 사람이 나쁜 거야", "저 사람이 잘못된 거야"라며 분노의 화살을 쉽게 외부로 돌려버립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는 이 시대의 씁쓸한 농담은, 자신을 향해야 할 성찰의 힘은 사라지고 타인을 향한 혐오와 분노가 확산되는 우리 사회의 상황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사회의 이런 문제들이 아이들에게로 전파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성찰하는 것을 거부할까요? 거리의 사상가로 유명한 우치다 타츠루 선생은 자신의 구조주의 입문서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 서문에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이다"라며 이 상황을 설명할 단초가 되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흔히 사람들이, 특히 아이들이 게을러서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적 시각에서 보면, 사람들이 반성적 사고를 피하는 것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안전하고 완벽해 보이는 자아'에 흠집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입니다. 나의 무지와 한계를 인정하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난 다 알아", "저 사람이 이상한 거야"라며 자신은 인식하지 못한 채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이런 상황을 교육을 통해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교육은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아이들의 타고난 성향 자체를 바꿀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들에게 성찰할 수 있는 '안전한 경험'을 끊임없이 제공하는 것뿐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빨간색 색연필을 쥐고 모든 것을 수정하려고 하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와 눈을 맞추고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그렇게 해서 아이들과 진지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어른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빈곤 가정 아이들을 10년간 추적해 정리한 강지나 선생님은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에서 잠시 엇나가던 아이들을 결국 바른길로 구원한 것은 대단한 기술이나 처방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아이 스스로의 성찰하는 힘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힘의 기반에는 아이들이 나쁜 길로 빠지더라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주며 '관계의 끈'을 놓지 않던 부모, 복지사, 교사 같은 어른들이 있었습니다. 내면의 성찰을 끝까지 놓지 않은 아이들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올바른 길로 돌아왔습니다.


성찰의 주체는 스스로일 수밖에 없습니다. 환경, 빈부격차, 전쟁, 이념 갈등, 세대 갈등, 차별, 혐오 같은 수많은 사회문제 앞에서 껍질을 깨고 변화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결국 아이 자신입니다. 때문에 교육은 그런 아이들에 대한 기다림입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일어납니다. 아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도 그 자리에 있어 주는 어른, 실수하고 결핍을 드러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말을 걸어주는 어른의 노력 속에서 성찰의 감수성은 자라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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