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세상] 가등이 빛나는 밤에-청라언덕

  • 송종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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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10-07 13:54  |  수정 2026-10-07 14:17  |  발행일 2026-10-08
송종규 시인

송종규 시인

'봄의 교향악이 울려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청라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 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때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청라언덕 위 빈 벤치에 앉아 가곡 <동무생각>을 흥얼거린다. 이 노래는 작곡가 박태준의 고교 시절 이야기를 들은 친구 이은상이 훗날 가사를 쓰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박태준의 학교가 개성고교였다는 사실과 그가 짝사랑했던 여학생은 신명여고 학생이었다는 것도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나와 청라언덕은 많이 겹치고 익숙한 곳이다. 이 언덕 위에 세워진 고등학교를 다녔고 학교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교회는 부모님과 함께 오래 다니던 곳이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학교까지 올라가던 그 언덕과 교정의 종소리,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가 지금도 햇살 아래로 불쑥 튀어나오는 듯한데 돌아보면, 오랜 세월이 흘렀다.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꿈을 길렀고 미래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올랐던 시절이었다. 90계단을 오르며 언젠가 그만큼 높이 올라가 나도 별처럼 반짝일 수 있을 거라는 생뚱맞은 꿈을 아직도 간혹 꾸기도 하는 곳이다.


100여 년 전, 서양의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서구식 주택을 짓고 담쟁이덩굴(청라)을 심었는데 그것이 울창하게 자라 건물 벽을 뒤덮으면서 이곳이 청라언덕으로 불렸다고 한다. 선교사들은 이 동산 위에 의료원을 짓고 학교를 세웠다. 그들은 선교활동과 함께 교육과 의료의 선진화에도 힘을 쏟았다. 멀고 낯선 땅에 와서 그들이 쏟은 열정과 땀이 헛되지 않을 만큼 우리는 발전했고 다행히 동산의료원, 제일교회의 옛 건물과 계산성당, 개성학교 등의 문화유산들도 보존되어 있다. 기미년 3.1 운동 당시 학생들이 거사를 위한 집결 장소로 이곳을 택했다는 것 또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금 이곳을 <3.1 만세동산>으로 부르게 된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을지.


나는 사실, 이 길을 습관처럼 오르내리면서 참 무심했던 것. 마침 며칠 전 <청라언덕과 대한민국>이라는 귀한 책을 접하게 되었는데, 청라언덕과 관련된 역사적, 신앙적, 민족사적인 의미가 부여된 섬세한 사료라고 할 수 있었다. 우리가 나고 자란 이 지역의 근현대사이면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 그 시절의 절절한 서사들이 공존하고 있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은 이 길에서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고 이 길을 오르내리며 더러는 사랑을 꿈꾸기도 했다. 마치 박태준처럼,


언덕의 서쪽으로 서문시장, 동쪽으로 진골목이 이어지면서, 민족시인 이상화와 서상돈 고택 등도 보존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심에서, 한 세기 전 그들이 이룬 문학과 서정과 빛나는 정신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매일신문사와 계산성당, 그리고 반짝이는 고층 아파트들. 하나씩 불이 켜지는 도시의 오늘 밤 풍경은, 가곡 <동무생각> 4절 부분의 '소리 없이 내리는 눈발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바라보면서'와 겹쳐진다.


시간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소멸시키기도 한다. 문화와 유산은 왜 보존되어야 하는가. 오늘도, 어딘가, 누군가에 의해서, 역사는 기록되고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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